AI는 이제 말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듣고 말하는 것을 넘어, 실제로 움직이고 조작하는 ‘피지컬 AI’가 산업 전반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핵심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글로벌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 축으로 삼고, 올해 426억원 규모의 실증사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지원에 나선다. 2030년까지 16조원을 투입하겠다는 정부의 청사진은 이 기술이 단순한 유행이 아닌 필수 전략임을 방증한다.
피지컬 AI는 센서(인지)–AI(판단)–액추에이터(실행)로 이어지는 폐쇄 루프를 통해 물리 세계와 직접 상호작용한다. 과거 공장에서 반복작업만 수행하던 로봇이 이제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도 학습·적응하는 지능형 에이전트로 진화 중이다. 이는 생성형 AI가 텍스트·이미지에 머물렀던 한계를 넘어 제조, 물류, 서비스 등 전 산업에 혁신을 가져올 ‘게임 체인저’로 평가된다.
산업 현장에서는 벌써 피지컬 AI의 효과가 입증되고 있다. 제철과 자동차 생산공정의 자동 제어율은 50% 이상 향상됐고, 에너지 효율 개선을 통해 연간 수십억 원의 비용 절감이 가능해졌다. 독일 씨메스의 3D 비전 로봇은 하루 24시간 숙련 작업자 7명을 대체하면서도 제품 손상률은 90% 이상 줄였다. 이처럼 품질과 안전, 생산성 모두를 잡은 사례는 피지컬 AI의 가치가 기술적 가능성을 넘어 경제적 현실임을 입증한다.
기업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아마존은 루이지애나 물류센터에 피지컬 AI를 도입해 운영비 25%를 줄였고, 여기에 250억 달러 추가 투자를 선언했다. 국내에서는 현대무벡스와 에스피지 같은 기업들이 정부 정책과 맞물려 성장 엔진을 가속화하고 있다. 현대무벡스는 반도체·2차전지 분야에서 AI 기반 스마트 물류 시스템을 수주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고, 에스피지는 K-감속기로 불리는 정밀기어 기술로 일본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에스피지는 기존 로봇의 감속기 오버홀(수리 및 서비스) 사업으로 안정적 수익 기반을 마련했고, 향후 연간 60~80억 원 규모의 매출이 기대된다. 현대무벡스는 수주잔고 4,000억 원 이상을 확보하며 연평균 20% 이상의 고성장을 예고한다. 이들 기업은 단순 제조를 넘어 AI와 로봇 기술을 융합한 ‘토탈 솔루션’ 역량으로 무장해 시장의 수요에 선제 대응 중이다.
글로벌 시장 역시 폭발적으로 팽창 중이다. 2025년 245억 달러 규모였던 피지컬 AI 시장은 2030년 1245억 달러로 5배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이는 연평균 성장률 38% 이상으로, 전체 AI 시장 평균을 압도하는 수치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언급한 “50조 달러 규모의 기회”라는 예측이 허언이 아닌 이유다.
이 같은 성장의 밑바탕에는 기술 진보가 있다. 딥마인드의 ‘제미니 로보틱스’는 인간의 언어를 시각 정보와 결합해 로봇의 물리적 행동으로 전환시켰고, 엔비디아의 ‘GR00T N1’은 인간 반응 속도에 근접하는 0.5초 대응 능력을 갖췄다. 온디바이스 AI 기술을 통해 로봇 자체 연산으로 지연 시간을 0.05초까지 단축하는 성과도 등장했다.
이제 관건은 생태계 구축이다. 기업들은 구독형 서비스(RaaS), 수직계열화, 개방형 플랫폼 등 다양한 전략을 펼치며 하드웨어 공급망 주도권까지 노리고 있다. 전기식 구동계, 고성능 감속기, 모터 확보 경쟁은 새로운 기술 패권 전쟁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국내외 정책도 이를 뒷받침한다.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 AI 특례 제도 도입을 포함한 ‘국가 AI 전략위원회’를 9월 출범시키고 산업 생태계 전반을 조율할 방침이다. 미국과 중국 역시 대규모 AI 육성 정책을 발표하며 기술 개발을 산업 현장까지 연결하고 있다.
결국, 피지컬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의 핵심이다. AI의 ‘두뇌’인 연산 인프라와 ‘손발’인 물리적 실행력이 결합하는 이 기술은, 정책, 기술, 경제성이라는 3박자가 맞물릴 때 시장의 패권을 좌우할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피지컬 AI 시대, 말뿐이 아닌 실천하는 AI가 세계 산업의 질서를 다시 쓰고 있다.
■ 필자인 한용희 그로쓰리서치 연구원은 투자자산운용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SBS Biz, 한국경제TV 등에 출연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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