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의 점유율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국내 거래소들은 수익 구조상 거래 수수료 비중이 높아 경쟁사 이용자를 빼앗을 수밖에 없다. 최근 점유율을 뺏긴 업비트는 수익 다각화를 위해 원화 스테이블코인 등 블록체인 기반 확장을 시도 중이다. 다만 이는 정부의 제도 장벽에 발목이 묶인 형국이다.
국내 거래소 1,2위를 다투는 업비트와 빗썸의 점유율 격차가 올해들어 크게 줄었다. 코인게코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업비트의 점유율은 약 76.0%, 빗썸은 22.1%로 53.9%의 격차를 보였다. 하지만 8월 기준으로는 업비트 66.1%, 빗썸 31.3%로 34.8%까지 좁혀졌다. 특히 지난 9일 국내 상장된 월드코인(WLD)이 급등할 당시 짧은 기간이었지만 빗썸 점유율이 45%를 넘어서는 등 격차는 일시적으로 4.6%까지 줄어들기도 했다.
빗썸이 점유율 격차를 좁힌 비결은 적극적인 신규 코인 상장과 공격 마케팅이다. 올해 106개의 코인을 상장, 업비트(63개)의 그것을 앞질렀다. 마케팅 측면에선 정우성과 전종서를 브랜드 모델로 기용하고, 수수료 무료 이벤트도 진행했다. 상반기 관련비용만 1346억원 가량 들었다. 전년 동기 대비 84.9% 늘어난 수준이다. 이에 업비트도 뒤늦게 LCK 후원사로 나서며 올해 상반기 마케팅 비용으로 전년 동기 대비 67.8% 늘어난 190억원을 집행했다. 다만 빗썸의 물량 공세에는 역부족이었다.
양 거래소의 점유율 경쟁이 치열해진 것은 무엇보다 국내 거래소의 수익 비중이 거래 수수료에 편중됐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 업비트와 빗썸의 거래 수익은 전체 수익의 98%를 차지했다. 이러한 수수료 일변도의 수익 구조는 시장 상황에 따라 수익이 결정돼 안정성이 떨어지는만큼 수익 다각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최대 거래소인 코인베이스의 경우 거래 수수료 비중이 51%에 그친다. 이외에 스테이블코인(22%), 블록체인 리워드(14%) 등 포트폴리오가 다각화돼 있다.
빗썸의 새로운 모델인 배우 정우성과 전종서(왼쪽), 업비트가 후원사로 나선 LCK 페이커 브랜드 이미지(오른쪽). (사진=빗썸,두나무)
업비트 측도 이러한 취약점을 개선하기 위해 소모적인 마케팅 경쟁보다 블록체인 기반의 확장을 통한 글로벌 진출에 집중하고 있다. 업비트 관계자는 "코로나 시기 UX(사용자경험), UI(사용자환경) 교체를 통해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며 빗썸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만큼, 빗썸의 마케팅에 재역전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시장 규모가 제한된 국내 순위 경쟁보다 글로벌 진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오경석 두나무 대표는 이와 관련해 "파생 상품 거래 불가, 내국인만 가입 가능, 법인 거래 시범적 허용 등 사업적 측면에서 불리한 것들이 많다"며 "미국서 가능한 디지털자산 사업은 한국에서도 가능하도록 정책적 지원과 뒷받침이 있어야 글로벌 경쟁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자체 블록체인 '기와(GIWA)'를 공개하며 블록체인 기반 금융 서비스도 추진 중이다. 기와 체인은 오프체인 정보를 온체인에서 검증하는 도장(Dojang)과 블록체인 수수료(Gas Fee)를 이더리움 외 다른 토큰으로 낼 수 있게 해주는 페이마스터 기능을 지원한다. 이는 지난 7월 원화 스테이블코인 관련 MOU를 맺은 네이버페이와의 연동을 염두에 둔 설계로 평가된다.
업비트가 블록체인 금융 서비스 가운데 스테이블코인에 집중하는 이유는 스테이블코인이 금융과 블록체인 기술을 연결하는 관문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오 대표는 지난 9일 'UDC 2025'에서 "과거 단절돼있던 블록체인과 현실 금융을 연결하는 고리로 스테이블코인이 떠올라 약 400조원 규모의 글로벌 시장을 형성했다"며 "업비트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지원한다면, 한국 금융이 글로벌로 진출 가능한 절호의 기회를 잡아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진=두나무)
다만 이러한 확장 시도는 국내 제도 장벽이 걸림돌이다. 특히 아직 제정되지 않은 스테이블코인 법안을 두고 정책권 내에서 상반된 목소리로 법안 논의 과정에서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적극 지지하는 목소리는 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나온다.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8일 한국핀테크산업협회 개최 토론회서 "스테이블코인은 디지털 경제 전환의 핵심으로, 장점을 극대하고 단점은 보완할 제도를 신속히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화의 통화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스테이블코인 발행 필요성도 잇따른다. 24일 진행된 'KBW 2025'서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회피한다면 해외 코인이 시장을 장악해 원화의 가치가 해외서 결정될 것"이라며 "타국 통화에 종속되는 통화주권 약화를 피하기 위해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경고했다. 또한 K-콘텐츠 등 국내 강점 사업과 결합한다면 글로벌 진출을 가속해 더 큰 경제적 기회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발행 주체에 대해선 핀테크 등 비은행권의 발행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 의원은 은행만 발행 주체로 허용할 경우 혁신성과 신속성이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도 통화 주권을 지키기 어렵고, 기존 금융 원칙들이 무력화될 수 있다며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8일(현지시간) 워싱턴 DC 국제통화기금(IMF) 본부에서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와 대담을 나누며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허용한다면 해외에 원화 예금 보유가 가능해져 자본 자유화가 이뤄질 것"이라며 자본 유출을 경계했다.
이병목 한국은행 금융결제국장도 금산분리 원칙이 무너질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이 국장은 지난달 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원화기반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위한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비은행 대기업에게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한다면 독자적 화폐를 발행·유통하는 방법을 열어주는 것"이라며 은행권 중심의 제한적인 발행이 이뤄져야 한다고 봤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둘러싼 논의가 엇갈리는 가운데 내달 금융위원회 주도의 정부안이 나올 예정이다. 다만, 최근 금융위 개편이 혼선을 겪으며 예정된 일정대로 정부안이 제시될지 의문이다. 최종적인 법안 통과 시점에 대해 민병덕 의원은 11월부터 12월 초 사이로 예상했다.
기자간담회 진행하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