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부터 가을까지 특히 오픈AI 중심의 대규모 투자 발표가 이뤄진 후 가파르게 상승하던 전세계 테크 주식의 상승이 겨울로 접어들며 주춤한다. 동시에 AI 버블에 대한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

오픈AI를 비롯한 대규모 투자를 발표한 스타트업들이 그 천문학적인 투자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우려, 그리고 스타트업들에 데이터센터를 임대할 오라클 등 네오클라우드 업체들의 재무 건전성에 대한 우려, 마지막으로 그리고 설령 돈이 마련돼 막대한 설비가 완성되더라도, 그 덩치를 감당할 만큼의 매출이 실제로 생겨날 지에 대한 우려가 한 데로 모이고 있다.

필자는 (후회스럽게도) 올해의 AI붐이 주는 투자기회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AI에 대해 특별히 비관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엔비디아가 오픈AI지분을 투자하고, 오픈AI가 오라클에 발주하면 오라클이 다시 엔비디아 GPU를 산다던가, 오픈AI가 AMD에 대규모 칩을 구매하면서, 대가로 AMD는 지분을 거의 공짜로 오픈AI에 준다던가 하는 식의 순환적 자금 출자 구조(이른바 벤더 파이낸싱)는 경험많은 투자자라면 2000년대 초반 IT버블의 공포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아슬아슬한 요소이긴 하다. 돌고도는 저런 복잡한 거래가 실현되기 어렵다는 생각보다는, 저런식으로 서로 맞물려 있으면, 마치 삼국지 적벽대전에서 서서의 연환계에 조조의 배가 모두 불타듯이, 작은 충격이 시스템 전체의 위기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가지 우려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AI버블 우려는 현재로선 시기상조일 가능성이 좀더 높다고 보여진다. 우선 자금조달의 문제는 다소 과장돼 있는 것 같다. 현재 발표된 데이터센터 개발 계획이 모두 확정된 것은 아닐 뿐더러, 기업들의 자금조달 계획도 비교적 탄탄하다. 데이터센터 구축에 들어가는 비용은 GPU를 중심으로 한 컴퓨트(계산) 설비, 칩들에 전력을 공급하고 열을 냉각시키는 인프라, 그리고 부동산이 각각 1/3 정도 씩이다. 이 3가지 영역은 내구연한(감가상각 기간)이 서로 상이하다. 일반적으로 GPU는 5년, 인프라는 15년, 부동산은 30년까지도 간다.

내구연한이 다르기 때문에 자금조달 방법도 상이하다. 순수 에쿼티 투자는 주로 GPU 구매에 집중되고, 내구연한이 긴 인프라와 부동산은 구조화 금융과 담보 대출이 들어간다. 오픈AI가 발표한 투자규모를 오픈AI가 다 매출로 벌어내거나 지분투자로 조달해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AI스타트업, 빅테크, 네오클라우드 등이 나누어 에쿼티를 조달하고 현대의 중충 금융 시스템이 뒷단의 복잡한 구조화 금융 수요를 감당한다. 특히,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전세계에서 가장 재무구조가 우량한 기업들이기 때문에 '돈'의 문제는 현재로선 크게 걱정할게 없어 보인다.

AI수요가 그 많은 공급과 소요되는 비용을 충당할 만큼 충분할 것인가? 현재의 수요보다, 예정된 공급량이 엄청나게 많긴 하다. 그리고 챗GPT와 상담을 주고받거나, 프로필 사진을 그리는 일에는 이제 다들 질리지 않았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AI수요량은 아주 빠른 속도로 늘고, 당분간 더욱더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것 같다.

챗봇은 가장 원시적인 AI모델의 활용 형태다. 질문을 한번 던지면, 그때서야 AI서버가 돌아가며 토큰(AI가 처리하는 정보량의 단위)을 뱉어 낸다. 그리고 다음 질문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하지만, 첨단 기술기업들이 만들려고 하는 AI서비스는 이렇게 간헐적인 문답 방식의 AI가 아니다. AI모델이 마이크, 카메라 등 센서와 연결되어 24시간 늘 인간의 작업을 지켜본다. 이렇게 '지켜보는' 일만으로도 대량의 토큰이 소모된다. 그리고 특정 징후를 발생하면 자동으로 작업을 처리한다. 이 작업은 챗봇처럼 답을 한번 내는게 아니라, 연쇄적인 작업들을 처리하며, 이를 반복해야 한다. 이렇게 상시 모니터링 - 자동적인 연쇄대응을 수행하는 것은 에이전트AI라고 한다. 가동시간, 가동량 자체가 문답형 챗봇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 우리 주변에 이런 에이전트AI를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가 많지는 않다. 이건 기술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현재의 기술만으로도 우리 생활을 유용하게 할 수 있는 에이전트AI들을 아주 많이 만들 수 있다. 체감이 아직 안되는 것은, 우리가 AI를 쓰는게 익숙하지 않고, 결정적으로 데이터센터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데이터센터가 충분히 많아져서 저렴한 가격에 대량의 토큰을 24시간 공급할 수 있게 되면, 우리가 상상하는 그리고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자동화 서비스가 생산과 소비 현장에 들어올 것이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고전경제학 '세이의 법칙'이 에이전트AI에 통용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리스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에이전트AI의 본격 공급에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또 막상 활성화되더라도 소비자, 생산자들이 이를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연환계'의 시스템 리스크도 있다. 하지만, 원래 미래는 완전히 알 수 없고 모든 일에는 리스크가 있다. 에이전트AI의 확산과 이를 위한 대량의 데이터센터 건립은 리스크가 없진 않지만, 현재로선 충분히 베팅해 볼만한 사업은 맞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왜 우려설과 주가 조정이 나타나는 걸까. AI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금융시장의 유동성 문제가 크다. 최근 한국 국채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는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 단기 채권 유동성 문제도 꽤 심각하다.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이나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한 시점인데, 비교적 탄탄한 경제지표들에 자산가격상승/물가압력 걱정으로 통화정책의 고삐를 쉽게 풀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12월 미국에서 금리를 내리면 해결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연말-연초까지 이런 유동성 보릿고개는 지속될 수 있다. 엔진이 멀쩡해도 연료가 모자라면 자동차는 선다. 지금은 그런 상황이다. 하지만, 유동성 문제는 아주 장기화되지는 않는다. 늦어도 해가 바뀌면 해결될 것이다.


강대권 대표는 현재 라이프자산운용을 이끌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 및 동대학원 석사(산업경제학 전공)를 마쳤고, 서울대 가치투자 동아리 '스믹(SMIC)' 출신으로도 유명하다. 가치투자 2세대 스타 펀드매니저인 강 대표는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을 거쳐 유경PSG자산운용에서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역임했다. 당시 국내 운용사 최연소 CIO다. 지난 2016년, 2020년 국내 주식형 운용사 수익률 1위를 기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