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나는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당시 꽤 인기가 많던 ‘B’ 패밀리 레스토랑 대학로 지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손님을 맞고,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는, 상냥함이 필요한 일은 내게 가당치도 않다. 그러나 당시는 그 일이 분명 재미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생애 첫 아르바이트를 ‘대학로’라는 지역에서, 그것도 당시 붐이 일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한다는 것이 내 가슴을 벅차게 했던 것 같다.
1시간 가까이 지하철을 타고 혜화역에 내렸을 때, 코끝에 차가운 겨울 공기가 번지기 시작하면, 마치 제 앞가림을 완벽히 해내며 앞날을 꾸리는 대학생이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스무 살 청춘에게 하루 9시간 동안 음식을 나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당시 시간당 최저시급은 3000원이 되지 않았고 그렇게 받은 월급마저 고작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일에 쓰면서 어른 흉내를 내고 살았다.
B패밀리 레스토랑에는 ‘몬테크리스토’라는 시그니처 메뉴가 있었다. 빵 사이에 햄과 고기, 치즈를 넣고 튀겨서 라즈베리 잼을 발라 먹는 요리였다. 상당히 인기가 많은 메뉴였는데 이 음식을 나를 때마다 풍기던 기름 냄새가 생생하다. 냄새만으로도 포만감이 느껴질 정도로 고소한 향이었다. 빵 사이로 흘러나온 치즈와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남의 요리를 서빙하며 ‘퇴근할 때 포장해가야겠다’는 생각을 꽤 자주 했다.
매장에는 당시 어느 드라마의 OST였던 <응급실> 이라는 노래가 자주 흘러나왔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처음 알게 된 곡이었지만, 고작 12~13곡이 반복 재생되는 매장의 플레이리스트는 하루 종일 음식을 나르는 내게 빠르게 익숙해졌고 <응급실>을 흥얼거리며 손님의 테이블로 몬테크리스토를 가져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요컨대 대학 입학을 앞둔 시기의 나는 굳이 집에서 먼 패밀리 레스토랑을 찾아 아르바이트를 하며, <응급실>을 듣고 남의 음식에 군침을 흘리며 번 돈을 술로 탕진하면서 어른 흉내를 내는 구제불능의 소년이었다.
대학 입학 후 첫 여름방학까지. 6개월 정도 B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곳에서 번 돈은 은행으로 한 푼도 가지 않았다. 그저 술을 먹고 조악한 옷을 사 입으며 내 스무 살은 즐겁게 낭비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패밀리 레스토랑의 인기는 빠르게 식었다. 전국에 퍼져있던 B 레스토랑 체인점은 하나, 둘 폐점됐고, 막 30대로 들어섰을 때는 ‘서울역점’ 하나만 남아있었다. 가끔 용산 근처를 지날 때 서울역점에서 몬테크리스토를 포장 주문해 집으로 들고왔다. 그리고 서울역점이 문을 닫는다는 배너를 내걸었을 때, 내 생애 첫 알바의 기억에도 서서히 셔터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2024년 40살을 목전에 둔 나는 친구들과 일본식 선술집에서 송년회를 가졌다. 한창 신나게 떠들고 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냄새가 났다. 또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익숙하고 반가운 분명 내가 선호하던 고소한 향. 그건 분명 ‘몬테크리스토’의 냄새였다.
이자카야 메뉴에 몬테크리스토가 있을 리 없다. 왜 그 맛있는 냄새가 갑작스럽고도 명확히 풍기는지 당황스러운 찰나, 내 맞은편 친구 놈의 흥얼거림을 듣고 알았다.
“이 바보야~진짜 아니야~”
선술집 BGM으로 <응급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냄새는 오랜 세월 동안 덤불 속에 감춰져 있던 지뢰처럼 기억 속에서 슬며시 폭발한다. 냄새의 뇌관을 건드리면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수많은 영상들이 덤불 속에서 튀어 오른다. 냄새와 기억 중추는 시공을 초월하여 순간 이동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든다. 다른 감각과 달리 냄새는 해석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냄새의 효과는 즉각적이며, 언어나 사고 혹은 번역에 의해 희석되지 않는다. 냄새는 강렬한 이미지와 감정을 자극하기 때문에 압도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보는 것과 듣는 것은 단기적인 기억의 쓰레기더미 속으로 금방 사라져버리지만, 냄새에 관한 기억은 아주 오래가고, 게다가 냄새는 학습과 저장을 격려한다. 때문에 누군가에게 향수를 줄 때, 이는 ‘기억의 액체’를 주는 것이다. 키플링의 지적이 옳다. “냄새는 시각이나 소리보다 더 확실하게 심금을 울린다.”>『감각의 박물학』(2004) / 다이앤 애커먼 / 작가정신
나는 그날의 <응급실>이 귀로 들어와 머릿속 기억을 건드렸고 무의식적으로 그 시절의 냄새까지 소환했다고 확신한다.
인상적인 냄새는 기억 속 어느 한 시절의 풍경을 순식간에 내 앞에 펼쳐놓는다. 삶을 가장 낭비하던 스무 살의 나를, 선명하게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때만큼 생각 없이 살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성숙한 어른이 된 것도 아니다. 그저 씀씀이가 약간 더 커진, 여전히 어른인 척하는 시시한 40살이 됐을 뿐이다.
김선욱 레디투다이브 대표
■출판사에서 10년간 마케팅을 하며 <소행성책방>, <교양만두> 등의 채널을 통해 지식교양 콘텐츠를 만들어왔다. 현재 출판사 '레디투다이브'의 대표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