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새해가 밝았다. ‘붉은 말’의 해로 불리는 병오년은 ‘불(丙)’ 같은 에너지가 ‘말(午)’의 추진력이 돼 우리 사회와 경제에 엄청난 속도의 변화를 추동하지 않을까 싶다. 필자는 명리학에 밝은 것은 아니지만, 글로벌 기술 혁신과 사회적 변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2026년 병오년을 계획하는 마음에는 전과 달리 의욕에 앞서는 긴장감이 엄습해 와 호흡을 한번 가다듬게 된다.

세계의 내로라하는 컨설팅 회사들(맥킨지, 보스턴컨설팅그룹, 베인앤컴퍼니, 딜로이트, 액센추어, PWC 등등)의 2026년 혁신 전망을 일별해 보았다. 이들이 제시하는 새해 혁신 트렌드는 공통점이 쉽게 정리될 만큼 이구동성으로 AI(확장)로 시작해 AI(인재·조직·거버넌스·문화·도메인 혁신)로 끝나는, 그야말로 전사적인 AI 운영체계로의 재편이었다. “하도 들어서 귀에 AI 모양의 딱지가 앉을 만큼 새롭지 않다”는 분도 있을 터다.

그러나 대다수는 검색을 매우 빠르고 편리하게 해준 AI, 다양한 기능을 갖춘 편리한 도구로서의 AI를 실감했을 듯하다. 다만, AI 기술 기반 기업들을 제외하고는 이것이 내 일과 삶을 심각하게 바꾸었다는 생각이 아직은 들지 않을 정도의 영향 아니었을까. 그런데 정말 ‘어느 날’일 수 있다. 생성형 AI에서 에이전트형 AI로 진화한 데 이어 다양한 서비스, 전문(도메인) 영역과 결합하면서 조직과 일상을 재설계해야 하는 쓰나미와 같은 변화, 연결된 모든 것을 바꾸는 도미노식 혁신을 추동하는 날 말이다.

■ 글로벌 컨설팅 회사들의 혁신 화두 'AI'

이에 우리 정부도 글로벌 초격차 기술 경쟁 속, 성장하느냐 도태되느냐의 기로에서 성장을 가속할 수단으로 인공지능 대전환과 ‘초혁신경제’ 전략을 세우고 2026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지금도 ‘혁신이라는 러닝머신’ 위에서 잠시 멈추면 주르륵 미끄러질 지경인데 ‘초혁신’으로 가속화 한다 하니, 민간이든 공공이든 그 속도를 맞추려면 체력과도 같은 운영체계는 물론, 머리(거버넌스)부터 발끝(문화)까지 재설계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백문이 불여일각, 백각이 불여일행. 백번 천번 말하고 듣는다 한들 한번 보고, 행하는 것만 하겠는가. 다만, 다른 사람이 행한 걸 보고 하면 늦으리. 구체적인 시뮬레이션이 관건인 이유다. 그래서 나의 일상, 공공서비스를 중심으로 새해의 일들과 접목해 몇 가지를 전개해 보았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신년 업무보고에서 창업자들이 창업 초기부터 (실패 후) 재도전에 이르기까지 겪는 여러 문제(법무, 세무, 특허, 노무 등)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정보와 전문 상담을 한 창구에서 통합해 지원하는 원스톱 지원센터 서비스를 올해 본격적으로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창업 지원사업 신청시 복잡했던 제출 서류들도 가장 기본적인 사업계획서를 제외하면, 공공 마이데이터를 활용, 정부가 필요한 자료는 알아서 자체적으로 끌어다 검토하는 서비스 혁신도 추진될 예정이다. 일당 백을 하고 있는 우리 스타트업 대표들에게는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정부 사업의 해당 실무를 진행하는 기관의 담당자들에게는 부담감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창업자가 신청부터 사업 (협약)기간 동안 필요한 모든 절차와 증빙이 일거에 일소되리라 기대할 텐데 과연 올해 제대로 충족할 수 있을까 회의적인 시각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초기 창업자가 정부의 지원사업을 신청하면, 기존에는 사업자등록증명원, 법인등기부등본, 창업기업확인서, (재도전 기업의 경우) 성실경영 통과확인증 등이 필요하고, 가점을 받기 위한 참고자료(성과실적, 수상증빙, 우수기업 증빙 등), 투자실적 증빙(주주명부, 계약서, 납입 내역) 등이 필요하며, 사업 수행 중에는 (고용에 대한 증빙으로) 4대보험 가입자 명부, (매출 실적에 대해) 부가가치세 표준 증명(국세청), 투자확약서 및 입금증 등을 제출해야 한다. 꼼꼼히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현재 공공 마이데이터 외에 고용노동부, 국세청, 법무부 등 여러 부처의 데이터에 대한 접근이 필요한 영역이 다수 포함돼 있다. 기존 조직의 사일로(칸막이) 문화에 익숙한 공공기관 종사자들에게 ‘이게 금방 되겠어?’라는 회의적 시각이 다수인 이유다.

■ 우리 정부도 '초혁신 가속화' 선언, 그런데…

그러나, 최근 글로벌 기업들이 다중 AI 에이전트 시스템(MAS, Multi-Agent System)을 활용해 지역과 부서의 사일로를 넘어 파편화된 데이터를 통합하고, 부서 간 신속한 의사결정을 지원하며, 프로세스를 자동화하고, 고객들의 요구 사항까지 신속하게 처리하고 있는 사례를 보면서 ‘아…, 관습과 문화 영향을 받는 사람은 협업이 어렵겠지만 AI 대리자(에이전트)들이 본격적으로 소통하고 처리하면 일거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구나!’ 소리가 절로 나왔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사람이 해왔던 직무(워크 플로우)를 모듈화해 나누고, 거기에 필요한 데이터를 전문화된 AI 에이전트에게 학습시키고, AI와 사람의 역할 분담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미 많은 기업들은 그에 필요한 데이터를 정비하고, 학습과 처리를 위한 슈퍼컴퓨팅 플랫폼 등 인프라 (AI 거품론이 나올 만큼) 투자도 크게 이루어졌다. 민간에 비해 속도가 느리기는 하나, 우리 정부도 각 부처별로 디지털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니 결국 모듈이 속속 만들어지고, 각 부처와 기관들이 AI 에이전트들에게 업무를 위임하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부처를 넘나드는 협업과 통합서비스가 활성화되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다만, 더 크고 중요한 문제가 있다. 우리의 역할과 업무를 모두 재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갖고 있는 데이터를 파악해 모으고, AI가 처리할 수 있게 넘기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나의 일 중 AI 에이전트에게 넘길 일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가’를 판단해야 하고,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인가를 정의(혹은 창출)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내 업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심각히 병행돼야 한다. 물론 앞서 언급했던 글로벌 컨설팅 회사들은 책임 있는 AI를 만들기 위한 사람의 감독과 예외·갈등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 서로의 공감을 바탕으로 한 전략적인 선택과 처리 등은 인간의 몫임을 강조했다. 아울러 속도 빠른 에이전트들이 광범위하게 활동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오케스트레이션(Orchestration, 조율)이다.

이제 우리는 모두가 리더가 되어,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서비스나 성과의 격차를 메우고, 에이전트를 혁신시키거나 새로운 가치를 찾는 일들을 고민할 때다. 특히 모든 부처의 서비스가 모이고, 주민 개개인에게 맞춤형 토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지자체의 경우, 코디네이터이자 지휘자로서의 기능은 존재의 의의를 결정짓는 역할이 될 수도 있다.

■ 업무 재설계 앞단의 고민, '정체성과 본질'

그러나 이런 경험과 정서에 바탕을 둔 일들은 암묵지로만 존재하므로, 나의 존재감과 우리 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어떤 역량의 강화와 전환이 필요한지는 개인과 조직이 함께 고민함이 필요하다. 인사나 기획 부서의 역할 강화와 혁신이 중요한 이유라 생각한다. 아울러 AI가 더 이상 보조적 역할이 아닌, 중요한 실행을 담당할 때 초래될 위험에 대한 예방, 확장과 연결의 규모만큼이나 사고 시 파급력이 클 보안에 대한 긴급성은 우리 사회의 준비도를 추월하고 있다. 웃픈 현실은 이 또한 AI로 막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범죄 발생 전, 예지자들의 예견을 통해 미래의 범죄자를 미리 체포하는 ‘프리크라임’ 의 장면들은 AI로 그 예견자를 대체할 때 영화 아닌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MIT·카타르 연구팀은 이미 2021년에 위성사진, 지도, GPS, 과거 사고 데이터를 학습한 딥러닝으로 ‘향후 몇 달 안에 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은 도로 구간(고해상도 위험지도)’을 미리 예측해 표지판과 차선, 속도제한을 선제적으로 바꾸는 실험을 했다. 2024년 영국의 한 사이버 보험회사는 글로벌 보안 솔루션에서 중대한 취약점이 발견되었을 때, ‘어떤 고객이 취약한 소프트웨어를 쓰는지’ 찾아내 즉시 설정 변경·우회·임시 차단 조치를 안내해 선제적으로 리스크를 제거하기도 했다. 이에 미국의 IT 연구 기업 가트너는 2026년 AI 기반 위협의 심화로 기존 탐지·대응 방식에서 ‘선제적 사이버보안’으로의 중대한 전환 방향을 제시했다. SKT부터 쿠팡까지 한해 내내 크고 작은 보안 사건·사고를 겪은 우리 사회는 기업을 비롯한 모든 부문에 AX(인공지능 전환)를 추진하면서 효율성과 투자수익률만이 아닌, 투명성과 설명 가능성을 같은 비중으로 염두에 두고 구축해야 할 것이다.

급변의 시대 핵심역량 중 하나는 적응력이라 했는데, 초혁신의 시대에는 적응의 속도를 더 높이면 되는 것일까. 최근 우수한 학점을 받은 대학생들이 철학을 부전공으로 택하는 수가 늘고 있다는 기사가 문득 생각났다. 자기의 정체성과 내 업의 본질 등 근본을 성찰하고 내 삶을 재설계하는 시간이 필요한 때는 아닐까.


■ 법학박사로 국회, 청와대, 공공기관을 두루 거치며 교육, 과학기술, 창업 정책을 다뤘다. 교육정책에 매진했을 당시에는 하나의 정책에 얼마나 많은 이해와 갈등이 얽히고설킬 수 있는지 깊이 체득했다. 한국과학창의재단 재직 시절엔 ‘창의교육’과 ‘교육기부’에, 창업진흥원에서는 ‘창업’과 ‘혁신’에 꽂혀 정부정책과 현장 사이에서 동분서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