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쓸모를 연마하며, 언젠가 쓰일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한 유튜브 방송에서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짧지만 묵직한 이 문장은 개인의 삶 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의 본질과도 닿아 있다. 기업 역시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쓸모를 키우며, 그 쓸모가 세상에 빛을 발할 순간을 기다리는 존재다.
오늘날의 경영 환경은 과거보다 훨씬 단기적이다. 주가는 분기 실적에 흔들리고, 투자자는 숫자로 경영을 재단한다. 하지만 기업의 진정한 경쟁력은 ‘지금의 실적’이 아니라 ‘미래의 쓰임’을 준비하는 시간에서 비롯된다. 쓸모를 갈고 닦는 과정은 겉보기에 비효율적이고, 때로는 손해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보이지 않는 시간’이야말로 기업 생존을 결정짓는다. 마치 대나무가 오랜 세월 땅속에서 뿌리를 내리다 어느 날 단숨에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준비의 시간은 결국 폭발적인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개발(R&D), 인재 육성, 조직문화 혁신은 단기 성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기업 체질을 바꾸고, 위기 속에서 돌파구를 만드는 가장 강력한 자산이 된다.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은 조선업 불황기에 LNG 운반선 기술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조선소가 감축과 구조조정으로 생존을 모색할 때, 한화오션은 “에너지의 미래는 다시 바다로 향할 것”이란 믿음으로 기술을 축적했다. 그 결과, 올해 세계 최초로 200번째 LNG 운반선을 인도하며 글로벌 시장의 선두로 자리 잡았다. 미래를 내다보고 ‘쓸모의 시간을 견딘 결과’다.
현대차 역시 2010년대 초반, ‘전기차는 시기상조’라는 평가 속에서도 연구 인력과 자본을 꾸준히 투입했다. 그 인내의 결과가 아이오닉 시리즈와 전용 플랫폼(E-GMP)이다. 이들은 현대차를 단순한 자동차 제조사가 아닌 ‘기술기업’으로 재정의하게 만들었다. ‘당장의 필요’가 아니라 ‘미래의 쓰임’을 준비한 덕분이다. LG에너지솔루션 또한 한때 위험성과 사업성에 대한 의문으로 많은 반대에 부딪혔지만,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연구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지금은 세계 최고의 배터리 기업으로 성장하며, ‘쓸모의 시간’이 ‘쓰임의 순간’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증명했다.
해외 사례도 많다. 아마존은 초창기부터 수익보다 인프라에 투자했다.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당장의 이익보다 장기적인 고객 신뢰가 더 큰 자산”이라 강조하며, 물류센터와 클라우드 기술(AWS)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했다. 당시에는 ‘적자 기업’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 인프라가 지금의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과 클라우드 제국을 만들어냈다. 단기 효율보다 ‘미래의 쓰임’을 준비한 대표적 사례다.
미래를 준비하는 일은 언제나 불확실성과 함께한다. 예측이 빗나가면 비용은 낭비로 남고, 실패의 책임은 경영자가 져야 한다. 그래서 많은 기업이 ‘하지 않음’을 택한다. 하지만 가장 위험한 것은 실패가 아니라 ‘시도의 부재’다. 해보지 않으면 배우지 못하고, 배우지 못하면 다음을 준비할 수 없다. 시행착오는 낭비가 아니라 학습의 과정이며, 실수를 통해 기술은 다듬어지고 조직은 단단해진다. 결국 경영의 본질은 ‘우공이산(愚公移山)’ 정신과 닮아 있다. 당장은 보잘것 없어 보여도, 꾸준히 산을 옮기려는 의지와 인내가 기업의 쓸모를 단단하게 만든다.
기업의 경영은 결국 ‘쓸모의 축적’이다. 당장의 실적에 흔들리지 않고, 언젠가 다가올 쓰임의 순간을 위해 자신을 단련시키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세상은 늘 변한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쓸모를 키우는 기업은 언젠가 반드시 기회를 맞는다. 준비된 쓸모는 결코 헛되지 않다. 쓰임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그 기업은 세상 앞에서 가장 빛날 것이다.
■ 김종선 대표는 경영학박사로, 현재 기업 경영 자문 및 밸류업 관련 전문컨설팅회사 '제이드케이파트너스'를 운영 중이다. 지난 30여년간 코스닥협회 등에서 상장회사관련 제도개선 및 상장회사 지원 업무를 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은 초기기업부터 상장회사까지 성장 과정 전반에 관한 전문적 자문을 활발히 수행한다. 아울러 벤처 및 상장회사 관련 제도개선에도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등 기업 애로사항 해소를 위한 부분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