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인간은 0차원의 존재가 될 것 같다. 사라지지만 여전히 존재함의 비유다. 기업 내에서 인간은 하나의 점(点)이 된다. 점들은 관계를 형성해 서로를 바라보며 언제든 연결될 수 있고, 점들이 모여 형태를 이룰 것이다. 현상적으로는 점점 더 기업 내 위계가 무너지는 방향으로 갈 것이고, 인간은 AI와 더불어 AI를 활용해 만능의 멀티플레이어가 되도록 요구받을 것이다. 기업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하면 기업 내 어떤 다른 '점'과도 연결시켜려 할 것이고, 또 언제든 '점'을 통해 빠르게 그림을 그리려 할 것이다.

지난 17일 비즈니스 인사이더 보도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CEO는 "회사의 미래를 좌우할 실존적 위협이며 세대에 한 번 올 플랫폼 전환"으로 AI를 규정한 뒤 "회사를 AI 중심으로 완전히 새로 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주간 AI 가속(Accelerator) 회의'와 팀즈 채널에서 임원들이 발표하지 말고, 하위 직급의 기술 인력이 현장(AI trenches)에서 본 것을 공유하도록 장려하며, 의도적으로 다소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소개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앞으로 톱다운식 AI 리더십을 경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왜 지금 완전히 새롭게 판을 짜려고 하는 걸까. 의도적으로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한 이유는 뭘까. 필자는 이렇게 해석한다. 이제는 기업이 하위 직급의 개인을 가치 있는 '점'으로 여긴다는 것이고, 이 점과 점을 연결할 때에 가치를 그려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앞으로는 부서도, 개인의 직함도, 특별한 역할도 사라질 것이다. AI의 지능이 높아질수록 개인의 특출난 능력이란 신화는 점차 소멸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을 위해 개인은 충실한 협업자가 되어야만 하고, 충실한 협업자는 더 많은 연결성, 포용성을 갖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AI는 협업(co-worker)의 일원이 되고, 사람도 협업자가 된다. 다른 존재와 더 잘 협업하는 사람의 가치는 올라갈 것이고, 협업의 결합과 밀도는 더욱 강하게 촘촘히 이루어질 것이다.

OpenAI는 지난 16일 자사 블로그를 통해 AI 모델을 평가하기 위한 새로운 벤치마크 '프론티어사이언스(FrontierScience)'를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벤치마크는 700개가 넘는 물리, 화학, 생물학 분야의 주제들로 구성돼 있다. AI 모델이 이 주제들을 스스로 추론하고 풀게 함으로써 그 능력을 평가해 보겠다는 뜻이다. 흥미로운 점은 공개한 현 시점에서 GPT-5.2 최신 모델을 평가한 결과 전체 문제 중에서 25%만 맞추는 결과를 냈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AI 모델이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가설을 세우거나 방향성을 갖고 질문을 심화해 나가는 능력은 부족하다. OpenAI의 벤치마크 결과가 보여주듯 아직 AI는 맥락 없이는 질문을 제대로 던지지 못한다. 스스로 가설을 세우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의적인 영역을 탐색하는 일은 완벽하지 않다. 아직까지 인간의 우위는 여기에 있다. 수 백개의 나침반을 소유하고 꺼내 보면서 방향을 세우고 질문을 던지는 협업자의 역할은 사람이 맡게 될 것이다.

기업의 경영자도 '기업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점이 되어야 할 것이며, 협업자가 되어야 한다. 나델라는 최고위 임원급만 있는 별도 Teams 채널에서, 지금이 클라우드 전환급의 변곡점이며 비즈니스 모델을 재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구성원들에게 제시한 것은 앞으로 고위 임원도 "관리자가 아니라, ‘개인 기여자(IC)’처럼 일하고 행동하라는 것, 그리고 계속 배우고(learning) 버리라(unlearning)는 방향성"이었다. 기업의 경영자는 인간 점과 AI 점들의 연결성을 더욱 고민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일각에서는 점들의 연결성 자체도 AI가 다 해줄 수 있는 것처럼 예단하기도 하지만 그런 미래는 상상하고 싶지 않다. 기업활동과 이윤추구도 결국은 사람 본위라는 절대 명제가 흔들리지 않는 한, 연결의 책임은 어디까지나 결국 사람이라고 믿고 싶다. 그렇다면 기업의 경영자는 점들의 연결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기업의 경험을 통합하고 누적된 데이터를 활용하는 지식협업자를 육성해야 한다. 이러한 지식협업자는 지금도 단편적으로는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인터넷 시대에 많은 기업들은 이를 여러 방식으로 구축해 왔다. 기업들은 이를 지식 검색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소프트웨어였고, 접근가능한 시스템이었으며, 오라클 DB나 엘라스틱 서치 등을 활용한 서버 내 프로그램으로 구현해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을 넘어, 모든 것이 협업자가 되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데이터나 소프트웨어, 무형의 자원들이 협업자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말은 AI 에이전트에 그것들이 탑재되거나 학습되어 '점'의 연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뜻이다. 기업의 경영자는 기업의 모든 데이터베이스, 직원들의 업무 인수인계 자료, ERP, CRM, SaaS, 온갖 계약서, 공문 양식 등의 모든 사내 유·무형의 지적 자산과 데이터들을 통합하고 재구성해 AI 협업자에게 맡기려는 노력을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곧 기업의 존재양식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고 생존과 직결될 것이기에 지금부터라도 통합의 방식, 맡김의 방식, 협업의 방식을 원점에서 검토해 기업 구성원들과 함께 변화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둘째, 모든 구성원들이 원활히 연결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기존의 지식 검색 시스템은 가공된 데이터들의 연합이었으며 한 번 구축되면 바꾸기가 어려운 '정적인' 속성 때문에 근본적으로 상호작용의 수준이 '담당자의 일방적 사용'의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신입 사원이 들어오면 데이터베이스 사용법을 가르쳐야 했고, 상사가 원하는 자료를 '잘 뽑아오게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교육이 필요했다. 그러나 AI 시대의 지식협업자는 이전의 지식 검색 시스템(소프트웨어)을 내포하면서도 보다 능동적이고 자기 비판적, 자기 진화적 능력을 갖추고 인간 협업자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요구하거나 요청하거나 조언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한다. 만약 기업 경영자가 AI 지식협업자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를 경영의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또 지식협업자와 인간협업자의 연결을 차단하거나 제한한다면? 그 기업의 경쟁력은 열위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기업의 경영자가 AI 시대로의 전환을 준비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1)모든 자원을 점과 점의 연결로 인식하는 일, 그 다음 (2)지식협업자를 사내에 들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회사에 있는 DB와 검색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라는 말인가? 그렇다. 그러나 그 차원이 다르다. 기존의 관념으로 뭔가를 고치고 만든다는 수준이 아니라, 통념을 뛰어 넘는 수준의 전사적 데이터 대통합과 AI 중심의 업무 프로세스 재정의가 따라줘야 한다. 지금도 국내 유수의 기업들은 RAG(=생성형 AI를 활용한 검색)와 온톨로지 지식그래프(Knowledge Graph)를 활용해 최첨단의 AI 검색 에이전트를 구축하고 있다. 생존의 감각이 그들을 몰아가고 있고,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워가는 중이다. 막연한 불안감에 떨기보다는 일단 우리 회사의 작은 데이터베이스 하나를 선택해서 지식협업자로 탈바꿈시켜보면 어떨까.


■학창 시절 수학을 좋아했지만 시와 문학도 좋아 고심 끝에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에 진학했다. 박사과정 수행 중 창업에 눈을 떠 '뭉클스토리(자서전 사업)'를 지인과 함께 설립했다. 학업과 창업을 병행하던 중 전공인 NLP(신경언어프로그래밍)와 연관된 RL(강화학습)에 빠져 AI(인공지능)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현재는 기업의 인공지능 설계 및 전환을 지원하는 '큐에라소프트'를 설립, AGI(인공일반지능) 시대 도래에 대비하고 있다.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기업의 AX(인공지능 전환) 관련, 무료 컨설팅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