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치료제 시장의 초점이 ‘얼마나 빼느냐’에서 ‘얼마나 오래, 편하게 유지하느냐’로 이동하면서, 주 1회 주사를 월 1회 수준으로 늘리는 미립구 기반 장기지속형 제형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위고비·젭바운드 등 기존 GLP-1 약물이 주 1회 투여를 요구하는 가운데, 비만치료제가 ‘생활용 약물’로 장기 사용되는 현실에서 매주 자가주사 부담이 중도 이탈을 키우는 핵심 장애물이다.
미립구는 약물을 생분해성 고분자(PLGA 등) 안에 봉입해 체내에서 서서히 방출되도록 설계하는 제형이다. 약물 체류 시간을 물리적으로 늘려 투여 간격을 ‘월 1회 이상’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기 체중 관리 시장의 ‘편의성 혁신’으로 평가받는다. 빅파마 입장에서도 제형 변경이 특허 만료 이후 시장 지배력을 연장하는 수명연장전략(LCM)의 핵심 카드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상용화의 관문은 기술 그 자체다. 미립구 제조에서 ‘품질 균일성’이 예측 가능한 약물 방출, 안전성, 규제 승인 가능성과 직결되는 핵심 난제로 작용한다. 입자 크기 분포가 조금만 흔들려도 방출 속도가 달라져 환자별 약물 노출량(AUC) 편차와 부작용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여기에 대형 장비로 갈수록 유체 흐름·열 전달·용매 증발의 불균일이 커져 수율 저하와 불량률 증가로 이어지고, 배치 간 결과를 같게 만드는 공정 재현성도 공정 변수가 시간에 따라 스스로 변하는 ‘자가 변화’ 특성 탓에 확보가 어렵다.
이 틈을 파고드는 축으로 국내 기업들의 공정 혁신이 거론됐다. 펩트론은 초음파 분무건조 기반 SmartDepot 플랫폼으로 연속 생산 적용과 스케일업·공정 최적화 경쟁력을 내세우고, 배치 간 품질 재현성을 상업 생산 레퍼런스로 축적해 왔다. 펩트론은 2024년 10월 일라이 릴리와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했고, 평가 결과에 따라 상업용 라이선스로 전환될 수 있는 구조로 알려졌다. 인벤티지랩은 마이크로플루이딕스 기반 IVL-DrugFluidic로 입자 균일도(CV 5% 미만)와 numbering-up(병렬 확장) 방식의 생산 확장성을 강조했다. 지투지바이오는 InnoLAMP를 통해 미립구 내 약물 함량을 60% 이상으로 높이는 고함량 제형화 역량을 제시하며, 도네페질 미립구 임상 1상에서 1개월 이상 방출 제어와 초기 과다방출(burst) 억제 결과를 언급했다.
시장 관점에서 ‘월 1회’가 상징하는 것은 단순한 투여 간격 경쟁이 아니다. 환자 이탈률을 낮추고 장기 복약순응도를 끌어올려 ‘유지’ 시장을 키우는 구조 변화다. 동시에 과도한 기대도 경계해야 한다. 미립구는 제조 난제가 곧 품질·안전성·규제 리스크로 직결된다. 기업과 투자자 모두 “투여 간격 연장”이라는 마케팅 문구보다 ▲입자 균일성 데이터 ▲배치 간 재현성 ▲대량생산 수율과 불량률 ▲장기 안전성 근거를 우선 확인해야 한다. 정부와 규제당국도 장기지속형 제형의 품질관리(CMC)와 시판 후 감시 체계를 촘촘히 마련해, 편의성 혁신이 환자 안전의 빈틈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
■ 필자인 한용희 그로쓰리서치 연구원은 투자자산운용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SBS Biz 방송에 출연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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