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고려아연 정기주총이 열리는 용산 몬드리안호텔 앞에서 고려아연 노동조합 노조원들이 MBK의 이사회 진입을 반대하는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서효림 기자)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15일 고려아연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 추진에 대해 "대한민국 '아연 주권'을 포기하는, 국익에 반하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경영권 방어용 백기사 확보용이라는 얘기다. 또한 이사회의 기능을 무력화한 절차적 훼손 우려도 제기했다.
영풍과 MBK는 이날 '영풍그룹 입장문'을 내고 "금일 새벽, 언론보도를 통해 고려아연 경영진이 임시이사회를 열고 ‘미국 제련소 건설을 위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안건을 논의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이들 주장에 따르면 고려아연의 최대주주인 영풍과 MBK파트너스 측 이사들은 회사의 미래를 좌우할 이토록 중대한 안건에 대해 사전 보고나 논의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됐으며, 이사회 당일 현장에서 제한적으로 해당 사실을 접하게 된 점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이사회의 기능을 무력화하는 심각한 절차적 훼손이란 입장도 강조했다.
영풍과 MBK는 "이번 안건은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엄중한 시기에 회사의 사업적 필요성보단 최윤범 회장의 개인적 경영권 방어를 위해 대한민국의 핵심 전략자산인 ‘아연 주권’을 포기하는, 국익에 반하는 결정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우선 미국 정부가 프로젝트가 아닌 고려아연 지분에 투자하는 것 자체가 사업적 상식에 반하는 ‘경영권 방어용 백기사’ 구조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정상적인 사업 구조라면 투자자는 건설될 미국 제련소(프로젝트 법인)에 지분 투자를 하는 것이 상식"이라며 "그럼에도 굳이 고려아연 본사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반박했다.
영풍과 MBK는 "3자 배정 유증으로 고려아연 지분을 미국 정부에 내어주는 것은 자금 조달이 주목적이 아니라, 의결권을 확보해 최윤범 회장의 경영권을 방어해 줄 백기사를 확보하려는 의도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이어 "고려아연이 10조원에 달하는 자금과 리스크를 전적으로 부담하면서도, 정작 알짜배기 지분 10%를 미국 투자자들에게 헌납하는 기형적인 구조는 이사회의 배임 우려는 물론 개정 상법상 이사의 총주주충실 의무에 반할 소지가 크다"며 "설계부터 완공까지 수년이 걸리는 대규모 공장 건설 프로젝트에, 당장 지분을 희석시키면서까지 급박하게 자금을 조달할 경영상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거듭 설명했다.
또한 여기에 투자된다는 미국 정부 투자금의 진짜 정체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드러냈다. 그들은 이어 "현 경영진은 미국 정부가 합작법인을 통해 고려아연의 지분을 취득한다고 주장하지만, 미국 정부 기관이 해외 민간 기업에 대해 합작법인을 통한 ‘우회 출자’ 방식을 택한 전례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우리는 이 자금이 순수한 투자인지, 아니면 미국 정부를 방패막이 삼아 급조된 자금인지 그 실체를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끝으로, 울산 제련소의 ‘쌍둥이 공장’을 미국에 짓게 되면 국내 제련산업 공동화는 물론 핵심 기술 유출 위험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입장도 전했다. 아연을 비롯, 온산제련소에서 생산하는 전략 광물은 대한민국 경제 안보를 지키는 핵심 자산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보도된 대로라면 미국에 짓겠다는 제련소는 울산 온산제련소 생산능력에 상당 수준 육박하는 거대 규모로 추정된다"며 "국내서 생산해 수출하던 물량을 미국 현지 생산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국내산 광물의 ‘수출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수십 년간 축적된 고려아연의 독보적인 제련 기술이 합작이라는 미명 하에 해외로 유출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거듭 강조했다.
이어 "지금처럼 갑자기 임시이사회를 열고 급하게 처리할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신중하고 철저하게 사업성을 검토해 주주와 국가 경제에 최선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