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노벨문학상 홈페이지)
[뷰어스=문서영 기자] 노벨문학상은 올해도 우리를 실망하게 만들었다. ‘혹시나’하며 기대하던 마음에 구멍이 뻥 뚫린 기분. 더욱이 노벨문학상 시기만 되면 한국 작가들을 거론하는 유명 인사들로 인해 그 부추김은 더욱 고조된다. 하지만 결과는 이렇다. 일각에서는 국내 문학계와 독서자들에게 원인을 돌리기도 한다. 국내 문학계에 당장 노벨 문학상을 받아도 이상할 것 없는 작품들이 많다는데 대체 왜 노벨문학상은 우리에게 오지 않는가. 한국의 수상 가능성은 어떻게 해야 높일 수 있는 걸까.
■ 가치있는 작품은 많다
일본은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 1994년 오에 겐자부로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중국에서도 2012년 모옌(62)이 첫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 예측기관인 영국의 도박 사이트 래드브룩수는 당초 고은 시인을 수상 배당률 16대 1의 10위 후보로 분류했다가 발표 이틀 전에 배당률 8대 1의 4위 후보로 올렸다. 그만큼 수상 가능성이 높았다는 얘기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고은 시인은 시민들의 기대감에 의한 스트레스로 인해 고은 시인은 매년 노벨상 시즌만 되면 해외에서 체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기대감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고은 시인이 해외에서도 주목받는 작가인 까닭이다. 고은 시인과 황석영 작가는 지난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파리도서전 주빈국행사에 한국대표로 참가했을 당시 프랑스 언론으로부터 노벨문학상 후보 작가로 주목받았다.
황석영 작가도 마찬가지.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일본작가 우에 겐자부로는 2005년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황석영을 자신보다 먼저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작가로 지목한 바 있다. 이승우 작가 역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소설가 르 클레지오가 수상 가능성이 있는 작가로 지목한 인물이다.
또 국내 문학인 중 한강, 이창래 등까지 이 작가들은 모두 영어, 혹은 프랑스어로 번역돼 서양에서 주목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인류애·인간미·진보적 가치 등 스웨덴 한림원 취향에 맞다는 말도 나온다.
■ '번역' 더 나아가 해외진출…하는 사람이 없다고?
그런데 안된다. 왜? 일본은 벌써 두 번이나 수상한 상인데 우리는 무엇이 부족해서 수상하지 못하는 것일까. 심지어 일본과 우리나라는 언어의 진행방식마저 비슷하다. 영어나 유럽의 언어와 정반대 구조다. 그런데 일본은 되고 우리나라는 안 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언어가 너무 풍부해서라는 말이 나온다.
일부는 맞는 말이다. 번번한 수상 실패의 가장 큰 이유로 ‘번역’이 꼽히는 까닭이다. 스웨덴 한림원이 노벨문학상 최종결정을 하기에 스웨덴어 번역의 중요성이 대두되기도 했다. 고은 시인이 후보로 거론되는 이유 역시 그의 작품이 스웨덴어로 번역 출간됐기 때문. 그러나 문학계에서는 단순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폭넓은 국가와 언어로 국내 문학이 전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내 문학계는 공격적 해외진출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한 포럼에서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최미경 교수는 “영어는 세계 언어 위상에서 큰 헤게모니를 갖지만, 문학적 소통의 소극성으로 국내 기관들의 투자대비 문학전달의 효과가 극대화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불어, 스페인어, 독일어, 중국어, 일본어 등 헤게모니 중간어를 통한 문학소통이 뜻밖에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들 언어의 번역에 대해 교육 및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문학작품들이 보다 다양한 언어로 번역돼 각 나라에서 출판될 때 한국 문학 비중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출판사 관계자 역시 “출판시장은 보수적이다. 공격적이고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을 하기보다 국내 작가 작품은 국내에서 잘 팔리면 그만, 해외 작가 작품을 잘 골라오면 그만이란 생각이 여전하다”면서 “해외 출판사에서 관심을 가지고 찾기 전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KL매니지먼트를 주목할 만하다. 해외시장에 한국 책 1000여종을 수출한 KL매니지먼트 이구용 대표는 2004년 저작권 에이전트들이 외국 책을 사들여 오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을 때 “한국 책을 외국에 팔아보겠다”고 나섰다. 그 덕에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이 가능했다. 편혜영이 뉴요커지에 소개된 것도 이 대표의 노력 덕이다. 어떻게 보면 큰 애국을 하고 있는 이 대표는 노벨 문학상의 한국 수상 가능성에 대해 “해외시장 노출이 먼저”라고 강조한다. “노벨상을 받은 작가들은 적어도 15개 정도 국가에 진출한 작가들”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이윤을 따지자면 작가와의 협의과정, 외국 출판사 접촉, 계약 등 복잡한 절차를 거치는 수출작업은 배제대상으로 취급되기에 KL매니지먼트의 노력과 성과는 더욱 독보적일 수밖에 없다. 많은 이들이 한강의 ‘채식주의자’ 수상에 놀라워했을 뿐 그 뒤의 노력은 눈여겨보지 않았다. 결국 한국문학은 감나무 밑을 탈출해야 한다는 말이다. 감이 떨어지길 기다릴 것이 아니라 감을 따기 위한 도구를 찾아야 한다. 많은 이들이 활발한 수출과 이를 위한 정부지원에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사진=JTBC 방송화면)
■ "자국민부터 읽어라" 독설에 할 말이 없다
지적되는 문제는 또 있다. 미국 문학평론가 마이틸리 라오는 지난해 2월 뉴요커를 통해 “한국인들은 책도 읽지 않으면서 노벨문학상을 원한다”면서 “한국의 식자율(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비율)이 98%에 달하고 출판사들은 매년 4만 권의 새 책을 내놓지만, 30개 상위 선진국 가운데 국민 한 명당 독서시간이 가장 적은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고 독설했다. 한국은 연간 1억권 이상의 책을 찍어내는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출판대국임에도 이런 자존심 상하는 말을 듣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책은 많이 찍어내는데 UN 조사결과 2015년 한국인 독서량은 192개국 중 166위로 하위권이다.
문학계 역시 이런 실정을 절실히 체감하고 있다. 국내에서 잘 팔리는 책이라야 해외 진출도 고려해볼 수 있는 여유와 필요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한 문학계 관계자는 “독자의 규모가 늘어나면 책 생산 원가는 낮아진다. 국내 도서시장에서 책 판매율이 높을수록 더 나은 퀄리티의 책들이, 더 나은 작가들이 발굴되는 것은 불변의 법칙이다. 수익이 높아질수록 출판사들이 잘 나갈만한 책, 잘 나가는 작가들만 고르는 데 열을 올리기 때문이다”면서 “억지로 저질의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국내 독자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책을 읽지 않는 건 사실이지 않나. 국내 시장이 활발해져야 해외 시장으로 눈 돌릴 여유도 생기는 법이다. 마이틸리 라오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국내 문단은 우리 문학인들의 표현 능력과 지향하는 이념이 결코 해외문인들에 뒤처지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결국 답은 부실한 번역의 벽, 성장하지 않는 해외진출 노력, 자국에서도 잘 팔리지 않는 책이란 편견을 넘어서는 것이다. 단적으로, 한강이 모든 것을 증명한다. 소설이 잘 번역돼 해외로 진출하자 세계 3대 문학상이라 불리는 영국의 맨부커상을 수상했고, ‘말라파르테 문학상’이라는 이탈리아의 권위있는 상을 수상하기까지 했다. 다시 말하자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만한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다. 자랑스러운 작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매년 마시는 고배. 이젠 억울할 때도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