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톤스(사진=안테나 제공) [뷰어스=이소희 기자] 사람들은 언제나 움직인다. ‘잠시 멈춤’을 경험해보지 못한 것 마냥. 대체 이렇게 많은 이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 무작정 걷는 것보다는 차라리 잠시 한 곳에 머무르는 게 낫겠다고도 여겼다.  그런데 밴드 페퍼톤스는 ‘움직이고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말한다. 이 메시지는 정규 6집 앨범 ‘롱 웨이(long way)’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렇게 ‘롱 웨이’는 박웅현의 저서 ‘책은 도끼다’처럼, 꽁꽁 얼어붙은 머릿속을 강하게 내리친다. ■ 변곡점에서 나온 앨범 ‘롱 웨이’ “우리가 음악을 쉰 적은 없지만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그렇게는 말했어요.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는 걸레를 짰다고. ‘롱 웨이’가 나온 건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에요(이장원)” “‘롱 웨이’는 페퍼톤스의 활동에 있어 변곡점인 시기에 내는 앨범이에요. 우리가 밴드로서 말하고자 했던 철학은 이미 내비쳐왔고, 이번에는 그걸 벗어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엮고 싶었죠. 각각의 트랙이 독자적인 이야기를 갖고 듣는 맛이 있었으면 했어요. 그리고 이 트랙을 쭉 들으면 하나를 관통하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기를 바랐고요(신재평)” “전체적으로 집 안이 아니라 집을 떠나 있는 느낌이 있어요. 노래에는 지어낸 내용도 있고, 멋있다고 생각하는 단어만 배열해 놓은 내용도 있고요. 다만 노래 속 화자는 다들 어디론가 향해 가는 사람들이에요. ‘롱 웨이’는 음악적으로 풀어낸 ‘로드 무비’라고 할 수 있죠(이장원)” 앨범은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고 있다. 주인공은 인간인지, 동물인지, 외계인인지 불분명하다. 하나 확실한 것은 ‘카우보이의 바다’ ‘도망자’ ‘할머니와 낡은 로케트’ ‘새’ 등 각 노래의 주인공은 어디론가 떠나고 있다는 것.  페퍼톤스(사진=안테나 제공)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1번 트랙이자 타이틀곡은 ‘긴 여행의 끝’이다. 사실 페퍼톤스는 새로운 시작을 염두에 두되, 끝과 연결되어 있는 경계선에 섰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인 셈이다. “정규 4집 앨범부터는 공연을 많이 하는 팀을 목표로 삼았어요. 그 원동력으로 이런 저런 무대를 경험했고 관객들을 만나 6년을 잘 이어올 수 있었고요. 그러면서 우리 앨범을 사랑해주는 분들이 지겨워하지 않으면 했죠. 그런데 언제부턴가 ‘너무 익숙해져버린 게 아닌가?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까? 음악으로 진지하게 표현하는 게 촌스러운가?’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인 거예요(신재평)” “정규 5집 앨범 활동을 마치고 방송활동을 시작한 게 큰 변곡점이었어요. 속으로 갈등도 많았어요. 예전에는 10만분의 1 정도의 팬이 나를 알아보고, 나밖에 모르는 노래를 말하면서 ‘좋아한다’고 말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모두 나를 보며 ‘맞지?’라고 말해요. (웃음) 사람들이 나를 너무 쉽게 보는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물론 알아봐주시면 감사하죠. 하지만 음악에 있어서는, 항상 유쾌하고 즐거운 것을 추구해왔지만 이번에는 웃음기를 빼고  진지하게 가고 싶었어요(이장원)“ 페퍼톤스(사진=안테나 제공) ■ 공허·설렘·울림...페퍼톤스를 움직이게 하는 것들 지금껏 ‘떠날 때 듣기 좋은 음악’을 선사하던 페퍼톤스다. 여행 같은 일상을 노래해왔다. 그런 이들이 항상 어디론가 가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에 문득 의구심을 느꼈다. 신재평은 “앨범의 개수가 쌓일수록 공허함도 쌓였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새로운 걸 찾아다니다 보니 오히려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마음은 텅 비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일단 또 가자!” “우리는 학교를 대전에서 다녔거든요. 주말이면 집에 가려고 버스 터미널에 갔어요. 자기가 가야할 곳을 향해 가려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죠. 개인적으로 어디론가 향해서 갈 때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설렘과 기대가 좋아요. 버스를 타고 떠나면 새로운 생각도 많이 들고요. 사실 모두 한 곳에 머물러 살아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디론가 향해 간다고 할 수도 있잖아요. 각자의 해석에 달린 좋은 비유죠. 이런 것들이 앨범에 진하게 묻어났으면 했어요(신재평)” 앨범에는 직접 춘천으로 떠나 만든 노래도 담겨있다. KBS2 예능프로그램 ‘건반 위의 하이에나’에서 작업 과정을 공개한 ‘카우보이의 바다’다.  “스튜디오에는 대개 창문이 없어요. 그런데 이 노래를 녹음한 공간은 자연광이 쏟아지는 곳이죠. 빛을 받으며 녹음하는 건 그렇지 않았을 때와 엄청난 차이가 있거든요. 마치 야외에서 녹음하는 것 같았어요. 추워서 손을 호호 불어가며 악기를 연주하기도 했지만요. (웃음) 다만 천장이 높아서 소리가 쩌렁쩌렁 메아리치듯 울리더라고요.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만의 풍부한 울림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악기에 대고 한 번, 울림에 대고 한 번 따로 녹음을 하기도 했죠(신재평)” 페퍼톤스(사진=안테나 제공) ■ “정리된 거? 없어요” 일단 떠납시다! 삶의 변곡점에서, 음악의 경계선에서 고민하던 페퍼톤스가 내린 결론은 의외로 단순하고 명쾌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페퍼톤스는 일단 나아갔다. 종착지를 위한 지름길을 알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그저 각각의 모험과 경험이 부딪히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길을 택했다. 걷고 달리고 방랑하며 방향을 정립해나가고, 그러다 보면 어디엔가 다다를 것이라는 확신이 쌓이는 길이다. ‘롱 웨이’는 그 과정에서 탄생했다. “앨범을 낼 때마다 뱀이 탈피를 하듯 인생의 기일을 맞이하게 돼요. 특히 이전 앨범은 30대 중반에 냈다면, 이번 앨범은 40대가 가까워지는 시점에 내게 됐죠. 포털사이트에 나오는 생년월일을 지울까 말까 고민도 되고요. (웃음) 아무튼 그런 만큼, ‘롱 웨이’를 내면서 개인적인 상황들을 엮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이번 앨범을 냄으로서 정리된 게 있다면 바로 이 콘셉트, 앨범이 나왔다는 것뿐이죠. 우리들의 고민은 여전히 그대로에요. 앞으로 앨범을 내면서 차차 정리가 되어 가겠죠?(이장원)” “앞으로 오랫동안 음악을 해나가야 한다는 부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 변해버린 환경 등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어요. 앞으로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페퍼톤스가 할 수 있는 이야기의 폭이 넓어져서 다양한 느낌을 받으셨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있어요. 우리는 지금도 ‘할아버지가 돼서도 노래하자’고 이야기하거든요. ‘롱 웨이’를 만들면서도 생각한 거라곤 ‘갈 길이 기니까 꾸준히 가자’ 그런 것들이에요. 그게 인생이니까요. 한결같은 발걸음으로 나아가서 그 끝에 뭐가 있는지 한 번 보자는 태도로 음악을 하려고요(신재평)”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해 보이는 ‘롱 웨이’를 듣고 나니 이제야 보인다. 여유는 내가 어디로 가든, 가는 곳의 끝에 무엇이 있든 알 수 없을지언정 어쨌든 가고 있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안도감으로부터 나온다. 때로는 ‘어디론가’ 향하는 지보다 어디론가 ‘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마주보기] 페퍼톤스처럼, 일단 떠나자고요

이소희 기자 승인 2018.05.09 10:58 | 최종 수정 2136.09.14 00:00 의견 0
페퍼톤스(사진=안테나 제공)
페퍼톤스(사진=안테나 제공)

[뷰어스=이소희 기자] 사람들은 언제나 움직인다. ‘잠시 멈춤’을 경험해보지 못한 것 마냥. 대체 이렇게 많은 이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 무작정 걷는 것보다는 차라리 잠시 한 곳에 머무르는 게 낫겠다고도 여겼다. 

그런데 밴드 페퍼톤스는 ‘움직이고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말한다. 이 메시지는 정규 6집 앨범 ‘롱 웨이(long way)’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렇게 ‘롱 웨이’는 박웅현의 저서 ‘책은 도끼다’처럼, 꽁꽁 얼어붙은 머릿속을 강하게 내리친다.

■ 변곡점에서 나온 앨범 ‘롱 웨이’

“우리가 음악을 쉰 적은 없지만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그렇게는 말했어요.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는 걸레를 짰다고. ‘롱 웨이’가 나온 건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에요(이장원)”

“‘롱 웨이’는 페퍼톤스의 활동에 있어 변곡점인 시기에 내는 앨범이에요. 우리가 밴드로서 말하고자 했던 철학은 이미 내비쳐왔고, 이번에는 그걸 벗어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엮고 싶었죠. 각각의 트랙이 독자적인 이야기를 갖고 듣는 맛이 있었으면 했어요. 그리고 이 트랙을 쭉 들으면 하나를 관통하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기를 바랐고요(신재평)”

“전체적으로 집 안이 아니라 집을 떠나 있는 느낌이 있어요. 노래에는 지어낸 내용도 있고, 멋있다고 생각하는 단어만 배열해 놓은 내용도 있고요. 다만 노래 속 화자는 다들 어디론가 향해 가는 사람들이에요. ‘롱 웨이’는 음악적으로 풀어낸 ‘로드 무비’라고 할 수 있죠(이장원)”

앨범은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고 있다. 주인공은 인간인지, 동물인지, 외계인인지 불분명하다. 하나 확실한 것은 ‘카우보이의 바다’ ‘도망자’ ‘할머니와 낡은 로케트’ ‘새’ 등 각 노래의 주인공은 어디론가 떠나고 있다는 것. 

페퍼톤스(사진=안테나 제공)
페퍼톤스(사진=안테나 제공)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1번 트랙이자 타이틀곡은 ‘긴 여행의 끝’이다. 사실 페퍼톤스는 새로운 시작을 염두에 두되, 끝과 연결되어 있는 경계선에 섰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인 셈이다.

“정규 4집 앨범부터는 공연을 많이 하는 팀을 목표로 삼았어요. 그 원동력으로 이런 저런 무대를 경험했고 관객들을 만나 6년을 잘 이어올 수 있었고요. 그러면서 우리 앨범을 사랑해주는 분들이 지겨워하지 않으면 했죠. 그런데 언제부턴가 ‘너무 익숙해져버린 게 아닌가?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까? 음악으로 진지하게 표현하는 게 촌스러운가?’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인 거예요(신재평)”

“정규 5집 앨범 활동을 마치고 방송활동을 시작한 게 큰 변곡점이었어요. 속으로 갈등도 많았어요. 예전에는 10만분의 1 정도의 팬이 나를 알아보고, 나밖에 모르는 노래를 말하면서 ‘좋아한다’고 말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모두 나를 보며 ‘맞지?’라고 말해요. (웃음) 사람들이 나를 너무 쉽게 보는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물론 알아봐주시면 감사하죠. 하지만 음악에 있어서는, 항상 유쾌하고 즐거운 것을 추구해왔지만 이번에는 웃음기를 빼고 
진지하게 가고 싶었어요(이장원)“

페퍼톤스(사진=안테나 제공)
페퍼톤스(사진=안테나 제공)

■ 공허·설렘·울림...페퍼톤스를 움직이게 하는 것들

지금껏 ‘떠날 때 듣기 좋은 음악’을 선사하던 페퍼톤스다. 여행 같은 일상을 노래해왔다. 그런 이들이 항상 어디론가 가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에 문득 의구심을 느꼈다. 신재평은 “앨범의 개수가 쌓일수록 공허함도 쌓였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새로운 걸 찾아다니다 보니 오히려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마음은 텅 비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일단 또 가자!”

“우리는 학교를 대전에서 다녔거든요. 주말이면 집에 가려고 버스 터미널에 갔어요. 자기가 가야할 곳을 향해 가려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죠. 개인적으로 어디론가 향해서 갈 때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설렘과 기대가 좋아요. 버스를 타고 떠나면 새로운 생각도 많이 들고요. 사실 모두 한 곳에 머물러 살아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디론가 향해 간다고 할 수도 있잖아요. 각자의 해석에 달린 좋은 비유죠. 이런 것들이 앨범에 진하게 묻어났으면 했어요(신재평)”

앨범에는 직접 춘천으로 떠나 만든 노래도 담겨있다. KBS2 예능프로그램 ‘건반 위의 하이에나’에서 작업 과정을 공개한 ‘카우보이의 바다’다. 

“스튜디오에는 대개 창문이 없어요. 그런데 이 노래를 녹음한 공간은 자연광이 쏟아지는 곳이죠. 빛을 받으며 녹음하는 건 그렇지 않았을 때와 엄청난 차이가 있거든요. 마치 야외에서 녹음하는 것 같았어요. 추워서 손을 호호 불어가며 악기를 연주하기도 했지만요. (웃음) 다만 천장이 높아서 소리가 쩌렁쩌렁 메아리치듯 울리더라고요.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만의 풍부한 울림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악기에 대고 한 번, 울림에 대고 한 번 따로 녹음을 하기도 했죠(신재평)”

페퍼톤스(사진=안테나 제공)
페퍼톤스(사진=안테나 제공)

■ “정리된 거? 없어요” 일단 떠납시다!

삶의 변곡점에서, 음악의 경계선에서 고민하던 페퍼톤스가 내린 결론은 의외로 단순하고 명쾌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페퍼톤스는 일단 나아갔다. 종착지를 위한 지름길을 알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그저 각각의 모험과 경험이 부딪히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길을 택했다. 걷고 달리고 방랑하며 방향을 정립해나가고, 그러다 보면 어디엔가 다다를 것이라는 확신이 쌓이는 길이다. ‘롱 웨이’는 그 과정에서 탄생했다.

“앨범을 낼 때마다 뱀이 탈피를 하듯 인생의 기일을 맞이하게 돼요. 특히 이전 앨범은 30대 중반에 냈다면, 이번 앨범은 40대가 가까워지는 시점에 내게 됐죠. 포털사이트에 나오는 생년월일을 지울까 말까 고민도 되고요. (웃음) 아무튼 그런 만큼, ‘롱 웨이’를 내면서 개인적인 상황들을 엮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이번 앨범을 냄으로서 정리된 게 있다면 바로 이 콘셉트, 앨범이 나왔다는 것뿐이죠. 우리들의 고민은 여전히 그대로에요. 앞으로 앨범을 내면서 차차 정리가 되어 가겠죠?(이장원)”

“앞으로 오랫동안 음악을 해나가야 한다는 부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 변해버린 환경 등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어요. 앞으로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페퍼톤스가 할 수 있는 이야기의 폭이 넓어져서 다양한 느낌을 받으셨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있어요. 우리는 지금도 ‘할아버지가 돼서도 노래하자’고 이야기하거든요. ‘롱 웨이’를 만들면서도 생각한 거라곤 ‘갈 길이 기니까 꾸준히 가자’ 그런 것들이에요. 그게 인생이니까요. 한결같은 발걸음으로 나아가서 그 끝에 뭐가 있는지 한 번 보자는 태도로 음악을 하려고요(신재평)”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해 보이는 ‘롱 웨이’를 듣고 나니 이제야 보인다. 여유는 내가 어디로 가든, 가는 곳의 끝에 무엇이 있든 알 수 없을지언정 어쨌든 가고 있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안도감으로부터 나온다. 때로는 ‘어디론가’ 향하는 지보다 어디론가 ‘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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