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규   [뷰어스=한수진 기자] “2005년도에 음반을 처음 냈을 때는 뒤통수가 좀 따가웠죠” 트로트가수이자 의사인 이선규. 지난 2005년 늦은 나이에 데뷔 앨범을 발매한 그는 주위의 편견에도 꿋꿋이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 이번 신보 ‘거 참 말 많네’에서도 앨범 구성부터 곡 가사 하나까지 ‘진짜’ 음악을 하고 싶었던 그의 열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뭐 하나 대충하는 것이 없는 그는 남들보다 두 배의 땀을 흘리며 달려왔다. 그렇게 가수 14년차가 된 그. 이젠 가수도, 의사도 그에게 참 잘 어울리는 수식어가 됐다. “의사라고 먹고 살 만하니까 음악을 한다는 시선들이 적지 않았죠. 만약 다른 걸 하다가 가수를 하면 좋게 보면서 오히려 의사라고 하니까 업계의 편협한 시각이 있었죠. 지금은 좀 나아졌어요. 꾸준히 오래했으니까요. 그 덕에 내 노래에 대한 선입견을 거둘 수 있게 됐습니다” 이선규는 지난 2005년 정규 ‘메모러빌리티’(memorability)를 발매하며 가수의 꿈을 이뤘다. 학창시절부터 나훈아의 노래를 들으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던 그는 의사가 된 후에도 음악의 끈을 놓은 적이 없다. 이선규   ■ “의사가 됐어도 음악을 포기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룹사운드를 했어요. 언젠가는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단 예전부터 계속 하고 있었던 거죠. 의대는 유급이라는 게 있으니까. 정해진 길로 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음악에 대한 열망이 있어서 색소폰도 하고 피아노도 배우고 했죠. 항상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98년도에 개인병원을 개업하면서부터 음반 작업을 시작했어요. 작곡가들도 많이 만났고 우여곡절도 겪었죠. 그러다 2005년에 첫 앨범이 나왔습니다. 이 앨범이 나오기까지 사기도 당하고 안 좋은 일을 겪었지만 음악을 포기할 수 없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가수의 꿈을 키웠던 그는 학창시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을 정도로 명석했던 탓에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야 했다. 당시 부모님의 기대를 져버릴 수 없던 그는 결국 의대를 가며 병원까지 개업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갈증은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개인병원 원장이 된 후 우여곡절 끝에 트로트가수로 데뷔하게 됐다. 과정은 험난했지만 음악만을 바라보고 달렸던 그의 열정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 그런 만큼 음악에 대한 가치관과 신념도 뚜렷하다. 트렌드를 따르지 않고 가슴을 울리는 노래를 하고 싶다는 그다. “가벼운 가사는 지양하려고 합니다. 옛날에 그래서 트로트가 경시 받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훈아의 ‘낙엽이 가는 길’ 같은 노래는 가사가 굉장히 좋아요. 표현이 시적이죠. 예술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이런 가사를 보면 이래야 노래가 오래가고 명곡이 된다는 걸 느껴요. 선정적 가사는 반짝일지 몰라도 명곡 반열에 오르기 힘들어요. 불현듯 좋은 가사가 떠오르면 직접 쓸 기회가 올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내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보다 전문가 의견을 받아쓰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또 요즘 아티스트들을 보며 보컬 트레이닝을 잘 받아서 가창력이나 기교가 좋잖아요. 그런데 옛날 선생님들의 노래를 들으면 지금 아티스트들처럼 가창이 뛰어나진 않아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을 받아요. 고음을 내는 것도 아닌데요. 노래를 할 때 어느 정도 연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귀 뿐만 아니라 가슴에도 감동을 함께 줘야 한다는 걸 느껴요. 진실성 있게 부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발매한 ‘거참 말 많네’에서도 이러한 가치관이 잘 드러난다. 앨범 퀄리티가 책과 맞먹는 아이돌 앨범과 견줄 만하다.   “앨범 작업에 신경을 좀 썼어요. 왜냐하면 정규 1집 때는 그래도 10곡이나 수록돼 있어 나름 공을 들였고 2, 3집 때는 트로트가수들이 앨범을 너무 가볍게 내는 게 싫어서 또 공을 들였어요. 금전적으로 그리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에요. 앨범은 곧 가수의 얼굴이잖아요” 타이틀곡 ‘거참 말 많네’도 가요계 유명인사가 참여해 퀄리티를 높였다. 바로 ‘내 나이가 어때서’를 작업한 정기수가 만든 곡이다. 정통 트로트 장르라기 보단 록앤롤 리듬이 가미된 경쾌한 노래다. 시(時)적인 가사와 통통 튀는 멜로디가 강한 중독성을 자아낸다. 이선규   ■ “존경하는 가수는 나훈아, 함께한다면 영광” 나훈아의 노래를 들으며 가수를 꿈꿨던 그인 만큼 함께 콜라보레이션을 하고 싶은 가수도 나훈아를 꼽는다. “존경하는 가수이자 함께 했으면 하는 아티스트는 나훈아입니다. 어릴 때부터 나훈아의 노래를 듣고 자랐어요. 또 설운도, 남진의 노래도 많이 듣고 자랐죠. 어릴 때부터 트로트가수가 하고 싶었어요. 6~7살 때부터 이분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면 마을 어른들이 칭찬하면서 더 시키고 그랬죠. 그래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트로트가수가 하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때 그룹사운드를 하고 대학교 가서 연극도 하고 그랬지만 뒤풀이에서 트로트를 불렀어요. 고등학교 들어가면 자기소개를 하잖아요. 나는 나가서 ‘노래를 좋아해’하면서 나훈아 노래를 불렀었죠” 자신을 광대라 자칭하는 이선규는 관객과 함께 하는 것에도 큰 의의를 둔다. 관객 호응만큼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도 없단다. “대중들에게 ‘시간이 아깝지 않다’ ‘저 사람은 진정한 광대다’ 이런 말을 듣을 수 있게끔 하고 싶어요. 관객들이 만족하면 당연히 광대인 나도 만족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잖아요. 호응을 얻으면 무대에 서있는 사람이 행복하죠. 인정받기 위해 더 노력하는 거예요”

[마주보기] '의사 가수' 이선규,?실력과 성실로 깨트린 편견

한수진 기자 승인 2018.05.24 14:09 | 최종 수정 2136.10.14 00:00 의견 0
이선규
이선규

 

[뷰어스=한수진 기자] “2005년도에 음반을 처음 냈을 때는 뒤통수가 좀 따가웠죠”

트로트가수이자 의사인 이선규. 지난 2005년 늦은 나이에 데뷔 앨범을 발매한 그는 주위의 편견에도 꿋꿋이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 이번 신보 ‘거 참 말 많네’에서도 앨범 구성부터 곡 가사 하나까지 ‘진짜’ 음악을 하고 싶었던 그의 열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뭐 하나 대충하는 것이 없는 그는 남들보다 두 배의 땀을 흘리며 달려왔다. 그렇게 가수 14년차가 된 그. 이젠 가수도, 의사도 그에게 참 잘 어울리는 수식어가 됐다.

“의사라고 먹고 살 만하니까 음악을 한다는 시선들이 적지 않았죠. 만약 다른 걸 하다가 가수를 하면 좋게 보면서 오히려 의사라고 하니까 업계의 편협한 시각이 있었죠. 지금은 좀 나아졌어요. 꾸준히 오래했으니까요. 그 덕에 내 노래에 대한 선입견을 거둘 수 있게 됐습니다”

이선규는 지난 2005년 정규 ‘메모러빌리티’(memorability)를 발매하며 가수의 꿈을 이뤘다. 학창시절부터 나훈아의 노래를 들으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던 그는 의사가 된 후에도 음악의 끈을 놓은 적이 없다.

이선규
이선규

 

■ “의사가 됐어도 음악을 포기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룹사운드를 했어요. 언젠가는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단 예전부터 계속 하고 있었던 거죠. 의대는 유급이라는 게 있으니까. 정해진 길로 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음악에 대한 열망이 있어서 색소폰도 하고 피아노도 배우고 했죠. 항상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98년도에 개인병원을 개업하면서부터 음반 작업을 시작했어요. 작곡가들도 많이 만났고 우여곡절도 겪었죠. 그러다 2005년에 첫 앨범이 나왔습니다. 이 앨범이 나오기까지 사기도 당하고 안 좋은 일을 겪었지만 음악을 포기할 수 없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가수의 꿈을 키웠던 그는 학창시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을 정도로 명석했던 탓에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야 했다. 당시 부모님의 기대를 져버릴 수 없던 그는 결국 의대를 가며 병원까지 개업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갈증은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개인병원 원장이 된 후 우여곡절 끝에 트로트가수로 데뷔하게 됐다. 과정은 험난했지만 음악만을 바라보고 달렸던 그의 열정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

그런 만큼 음악에 대한 가치관과 신념도 뚜렷하다. 트렌드를 따르지 않고 가슴을 울리는 노래를 하고 싶다는 그다.

“가벼운 가사는 지양하려고 합니다. 옛날에 그래서 트로트가 경시 받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훈아의 ‘낙엽이 가는 길’ 같은 노래는 가사가 굉장히 좋아요. 표현이 시적이죠. 예술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이런 가사를 보면 이래야 노래가 오래가고 명곡이 된다는 걸 느껴요. 선정적 가사는 반짝일지 몰라도 명곡 반열에 오르기 힘들어요. 불현듯 좋은 가사가 떠오르면 직접 쓸 기회가 올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내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보다 전문가 의견을 받아쓰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또 요즘 아티스트들을 보며 보컬 트레이닝을 잘 받아서 가창력이나 기교가 좋잖아요. 그런데 옛날 선생님들의 노래를 들으면 지금 아티스트들처럼 가창이 뛰어나진 않아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을 받아요. 고음을 내는 것도 아닌데요. 노래를 할 때 어느 정도 연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귀 뿐만 아니라 가슴에도 감동을 함께 줘야 한다는 걸 느껴요. 진실성 있게 부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발매한 ‘거참 말 많네’에서도 이러한 가치관이 잘 드러난다. 앨범 퀄리티가 책과 맞먹는 아이돌 앨범과 견줄 만하다.  

“앨범 작업에 신경을 좀 썼어요. 왜냐하면 정규 1집 때는 그래도 10곡이나 수록돼 있어 나름 공을 들였고 2, 3집 때는 트로트가수들이 앨범을 너무 가볍게 내는 게 싫어서 또 공을 들였어요. 금전적으로 그리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에요. 앨범은 곧 가수의 얼굴이잖아요”

타이틀곡 ‘거참 말 많네’도 가요계 유명인사가 참여해 퀄리티를 높였다. 바로 ‘내 나이가 어때서’를 작업한 정기수가 만든 곡이다. 정통 트로트 장르라기 보단 록앤롤 리듬이 가미된 경쾌한 노래다. 시(時)적인 가사와 통통 튀는 멜로디가 강한 중독성을 자아낸다.

이선규
이선규

 

■ “존경하는 가수는 나훈아, 함께한다면 영광”

나훈아의 노래를 들으며 가수를 꿈꿨던 그인 만큼 함께 콜라보레이션을 하고 싶은 가수도 나훈아를 꼽는다.

“존경하는 가수이자 함께 했으면 하는 아티스트는 나훈아입니다. 어릴 때부터 나훈아의 노래를 듣고 자랐어요. 또 설운도, 남진의 노래도 많이 듣고 자랐죠. 어릴 때부터 트로트가수가 하고 싶었어요. 6~7살 때부터 이분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면 마을 어른들이 칭찬하면서 더 시키고 그랬죠. 그래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트로트가수가 하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때 그룹사운드를 하고 대학교 가서 연극도 하고 그랬지만 뒤풀이에서 트로트를 불렀어요. 고등학교 들어가면 자기소개를 하잖아요. 나는 나가서 ‘노래를 좋아해’하면서 나훈아 노래를 불렀었죠”

자신을 광대라 자칭하는 이선규는 관객과 함께 하는 것에도 큰 의의를 둔다. 관객 호응만큼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도 없단다.

“대중들에게 ‘시간이 아깝지 않다’ ‘저 사람은 진정한 광대다’ 이런 말을 듣을 수 있게끔 하고 싶어요. 관객들이 만족하면 당연히 광대인 나도 만족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잖아요. 호응을 얻으면 무대에 서있는 사람이 행복하죠. 인정받기 위해 더 노력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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