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어쩌다 S사이즈 감옥에 갇혔을까. 미디어는 뼈가 앙상한 몸으로 연기하고 춤추는 여자 연예인들을 미의 기준으로 삼고 대중이 찬양하게 만든다. 이에 따라 의류 매장에서는 아동복 수준의 작은 옷을 프리사이즈라고 판매한다. ‘50kg가 넘는 여자는 수치’라는 헛소리까지 나오니, 여자들이 살을 빼지 않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저체중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2016년에는 16%의 20대 여성이 저체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열망은 강박이 되고 질병으로 이어진다.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는 저체중의 민낯을 들여다 본다. -편집자주-
(사진=KBS 방송화면)
[뷰어스=손예지 기자] 방송인 이영자는 최근 올리브 ‘밥블레스유’를 통해 수영복 차림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이에 대해 이영자는 “얼마 전에 내가 수영복 사진 때문에 인터넷에 올라왔다. 사람들이 얘기한다. ‘되게 당당하다’고. 그거 아니다. 나도 내가 무척 괜찮은 몸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사회의 인식과 나의 자존감 사이에서 싸우는 거다. 버텨 보려고 벗은 거다. 내 몸이니까”라고 말했다.
수영장에서 수영복을 입는 것은 ‘당당한’ 일이 아니다.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대중의 반응은 어땠나.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이영자 수영복’이 오르는가 하면, 언론과 대중은 ‘자신감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평가를 보탰다. 그간 우리 사회가 마르지 않은 사람이 몸매를 노출하는 행위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예다.
‘이영자 수영복’ 이슈가 남긴 씁쓸함의 정체를 정확히 꼬집은 이는 미스코리아 출신 트레이너 정아름이었다. 그는 ‘밥블레스유’ 방송 이후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이영자 씨의 수영복 자태가 이슈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자체가 슬픈 아이러니”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마르고 인형같은 아이돌 몸매에 익숙한 대중에게 리얼 자체인 50대 여인의 수영복 몸매는 센세이션”했으리라는 것.
정확한 표현이다. 마네킹처럼 마르고 군살 없는 몸매가 미의 기준이 된 요즘이다. 여기에는 살찐 몸을 부정적인 것으로, 마른 몸을 긍정적인 것으로 그리는 미디어의 탓이 크다.
■ 살 찌면 인신공격, 미디어의 주입
가수 씨엘(CL)과 배우 구혜선, 이예림의 공통점은 최근 체형변화로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살이 붙었다는 이유에서다. 언론은 이들의 사진을 보도하며 ‘후덕하다’ ‘충격 비주얼’ ‘뚠뚠이’ 등 비하의 의미가 담긴 표현을 사용했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인신공격성 댓글이 줄지었고 ‘자기관리를 하지 않았다’는 비난도 쏟아졌다.
미디어에서는 체중증가가 ‘자기관리의 실패’로 그려지며 식욕은 부정적인 욕망으로 표현된다. 코미디TV 먹방 프로그램 ‘맛있는 녀석들’에는 김준현·유민상·강민경·문세윤 등 정상체중 이상의 코미디언들이 출연한다. 이들은 스스로에게 ‘뚱뚱이’ ‘돼지’ 등의 표현을 쓰는 데 거리낌이 없다. 뚱뚱한 몸을 개그의 소재로 삼으며 자학하는 것이다. 지난해 tvN ‘인생술집’에 출연한 가수 옥주현도 핑클 시절 기록한 최고 몸무게가 68kg였다면서 “걸그룹이 가지면 안되는 몸무게를 가졌다. 관리를 안했다”고 자책했다.
최근 29kg 감량에 성공해 화제를 모은 뮤지컬배우 홍지민은 식욕을 참기 어려워 저칼로리의 음식이나 채소를 자주 먹었다고 밝혔다. 이런 방식으로 일일 권장량보다 적은 양의 칼로리를 섭취했다는 얘기다. 홍지민이 MBC에브리원 ‘비디오스타’에서 다이어트 방법을 공개했을 때 동료 배우들은 “29kg를 뺀다는 건 대단한 의지력”이라면서도 “안쓰럽게 보려다가 먹는 걸 보니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풀을 한 마지기 뜯어먹는다. 소 같았다” “거짓말 안 보태고 코끼리만큼 먹는다” 등의 발언을 보태며 먹는 행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이 같은 잣대가 특히 여자 연예인에게 엄격한 것도 문제다. 보이그룹 슈퍼주니어의 신동은 국내에서 표준체중 이상의 몸으로 데뷔한 최초의 아이돌 멤버일 게다. 마르지 않은 아이돌의 데뷔는 잘못된 일이 아니다. 다만 신동이 자신의 체형을 지적하는 네티즌에게 “누군 안 빼고 싶어서 안 빼겠나. 가끔 ‘왜 안 빼냐’고 물어보는데 질문이 잘못됐다. 그냥 못 빼는 것”이라고 일갈하면서 여자의 몸에 대해서는 “살을 빼야 되면 빼라고 이야기 한다. ‘자기 관리를 못하는 거야’라면서. 이렇게 말하면 상대방이 ‘너는?’이라고 반문하는데 ‘난 남자고 넌 여자잖아’라고 답한다”면 잘못이다. 이 발언이 논란이 됐을 당시 신동은 SNS에 “결코 여자가 살을 빼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었는데 그렇게 들렸다면 죄송하다”고 해명했지만 대중이 여자와 남자의 몸을 바라보는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 사례다.
(사진=MBC 방송화면)
■ 마른 몸 걱정 안하는 사회
반대로 저체중 상태의 연예인들은 찬양의 대상이 된다. 지난 1일 방송한 MBC ‘라디오스타’는 게스트로 출연한 에이핑크 손나은이 그룹 활동 중 몸매로 화제를 모았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손나은의 몸매 사진을 함께 보며 출연자들이 감탄하는 모습을 내보냈다. 이 자리에서 손나은은 자신의 몸무게가 48~9kg 정도이며 키를 고려했을 때 저체중에 속한다는 것을 털어놨다. 그러나 저체중을 유지하는 일이 손나은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 외에도 걸스데이 소진·아이오아이(I.O.I) 출신 전소미·타히티 출신 도희·레인보우 출신 지숙 등이 아동복이 맞을 만큼 마른 몸매를 자랑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연예기획사에서는 데뷔 조건으로 몸무게를 내세우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2013년 방영된 tvN 리얼드라마 ‘청담동111’에서는 FNC엔터테인먼트 김영선 이사가 AOA 멤버 설현에게 “50kg이 넘냐”면서 간식을 빼앗는 장면이 나와 빈축을 샀다. ‘청담동111’은 장르 특성상 대본으로 짜여진 상황이었겠지만 실제로 대다수 여자 연예인들이 기획사로부터 체중 감량을 강요받는 현실이다.
실력파 가수 에일리도 그 중 하나였다. 데뷔 초 그는 몸무게 49~50kg을 유지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나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인데 무대를 서려면 어쩔 수 없이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게 너무 슬펐다”고 눈물을 쏟았다. 지난 4일 방송한 JTBC ‘히든싱어5’에서다. 에일리는 당시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안 먹어서 하루종일 너무 배가 고팠다”며 “확실히 체중이 좀 늘어나 있을 때보다 노래가 잘 안 나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너무나도 속상했다. 마른 몸으로 노래는 하는데 나의 100%를 못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49~50㎏였을 때, 보기엔 좋았겠지만 사실 제일 우울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걸그룹이 소속된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멤버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실제로 보니 너무 말랐다’는 소리다. 그런데도 TV나 사진에는 상대적으로 부하게 나온다. 조금만 살이 쪄 보여도 입에 담지 못할 악플들이 따라온다. 이로 인한 멤버들의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자연스럽게 끼니를 거르고 운동의 강도를 높이게 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빠듯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니 몸이 남아나지 않는 것”이라면서 “그렇지만 멤버들도 회사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대중은 연예인이 비정상적으로 말랐을 때를 ‘리즈 시절(전성기를 뜻하는 말)’이라고 부르며 좋아해주기 때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광호 사랑과 책임 연구소 소장은 “걸그룹들의 비정상적인 몸매가 여학생들의 선호하는 몸매가 되면서 실제 학교에서는 숨 막히게 조이는 교복 때문에 생리통, 소화불량 등을 호소하는 여학생들이 증가하고 있다”며 “걸그룹을 따라 하기 위해 표준 체형의 청소년들도 무리한 다이어트를 감행하고 있어 일부 학생들은 저체중증·면역력 저하·거식증·결핵 등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