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술경영지원센터와 함께 진행한 ‘2018 공연예술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 공연시장 규모는 2017년 기준 8132억 원으로 추정됐다. 전년(7480억 원) 대비 8.7% 증가한 수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공연계 성장이 직접적으로 체감되지 않는다. 이 분야가 워낙 마니아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곳이어서 그렇다. 이에 따라 전체 매출이 늘었다고 해서 실제 소비자 규모가 확대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실제로 동일 기간 공연장과 공연단체 실적은 감소했는데, 특히 공연 횟수가 전년 대비 8.5%, 총 관객 수가 5.3%씩 각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진출을 목표로 하는 대기업 공연들이 늘어나는 반면, 오픈런으로 관객들을 만나는 대학로 소극장 공연의 실적은 감소한 것이다. 이에 화려한 이면 뒤 여전히 ‘그들만의 장르’로 여겨지는 공연계의 명과 암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문화비 소득공제 홍보 이미지(사진=국세청)
[뷰어스=손예지 기자] 공연의 대중화를 위해 시행된 문화비 소득공제 정책에 구멍이 뚫렸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공연을 비롯해 도서 등 개인이 문화생활에 지출한 내역에 대해 30%의 공제율을 적용키로 하고, 그 대상을 총급여 7000만 원 이하의 근로자로 특정했다. 서민들의 문화생활을 지원한다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가 시작된 지난달 공연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소득공제와 관련해 누락 건이 발생한 탓이다. 이는 사용자 구매 내역 중 문화비 내역을 별도로 구분하지 않고 카드사로 전송한 간편결제 시스템, 혹은 ‘문화비 소득공제 적용’을 등록하지 않은 일부 공연기획사 때문에 벌어진 문제였다.
이에 국세청에서도 다급히 대책을 내놓았다. 소비자로 하여금 누락된 건에 대해 소득공제 서류를 직접 작성하고 거래 사실 확인을 위한 증빙자료를 출력해 회사에 제출하도록 안내한 것이다. 이미 연말정산을 완료했을 경우에는 5월 종합소득 과세표준 확정신고 기간에 수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 역시 누락 건이 많을수록 그 과정이 번거롭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불편을 야기했다.
간편결제로 구매한 공연 티켓 20여 장에 대한 소득공제가 누락됐다는 A씨(26세)는 “(누락된 건들이) 서로 다른 공연이라 일일이 기획사 등록 여부를 확인하는 것부터 성가셨다. 게다가 그동안 연말정산 자체를 국세청의 간소화 시스템으로 이용한 터라 수기로 서류를 작성하는 것도 어렵게 느껴졌다”고 토로했다. A씨 외에도 같은 이유로 소득공제 추가 신청을 포기했다는 소비자가 많다.
그런가 하면 문화비 소득공제에 대해 공연계 내부에서조차 비협조적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서 분야와 비교했을 때 현저히 낮았던 공연 관련 소득공제 대상 사업자 등록률이 이를 증명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앞서 문화비 소득공제 시행 후 두 달 간 공연 관련 사업자 등록률이 33.7%에 불과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반면 동일 기간 도서 관련 사업자 등록률은 59%였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문화생활 활성화의 취지는 좋았으나 결국은 말뿐이었던 셈”이라며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시행한 탓에 부작용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어찌되었든간에 그 피해가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돌아갔다는 점에서 관련 사업자들의 자기 반성이 필요하다”고 고개 숙였다.
■ ‘그들만의 장르’ 된 공연계, ‘회전 문화’의 장단점
결과적으로 첫 걸음부터 삐걱대며 아쉬움만 남긴 문화비 소득공제다. 이를 통해 장르의 대중화를 기대했던 공연계에서는 더욱 씁쓸해하고 있다.
공연은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마니아 문화’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 일단 공연을 관람하는 데 있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게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작품 자체의 인지도가 높거나 유명한 스타들이 출연하는 공연은 주로 서울에서 공연된다. 게다가 공연마다 짧게는 1시간 30분에서 길게는 3시간까지 이어지다 보니 지방에 거주하는 경우에는 단 한 번의 관람도 엄두를 내기 힘든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연 시장은 한 작품을 여러 번 관람하는 ‘회전문 관객’에 의지하게 됐다. 실제 인터파크가 지난해 1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뮤지컬 판매 건에 대해 조사한 결과, 동일한 공연을 각기 다른 날짜에 3회 이상 예매한 관객은 무려 3만8000여명으로 집계됐다. 이들 중 10회 이상 같은 공연을 본 관객은 10명 중 1명 꼴로 나타났으며, 3~9회 재관람한 관객이 90%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또한 최다 관람 횟수를 기록한 관객은 한 작품을 120회나 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조사는 인터파크 회원만을 대상으로 이뤄진 것이라 실제 재관람 관객과 그 횟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할인율이나 지정할 수 있는 좌석의 차이 때문에 여러 예매처를 번갈아 이용하는 소비자가 많기 때문이다.
뮤지컬 재관람 관객 통계(사진=인터파크티켓)
어느 장르이건 충성도 높은 마니아들이 경제의 주도권을 잡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 규모가 소수일수록 부작용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회전문 관객’이 공연 시장을 유지하는 원동력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한편 대중화를 가로막는 벽으로도 여겨지는 이유이다.
우선 관객이 적다 보니 관람 문화도 폐쇄적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대표적인 예로 ‘관크’에 대한 논쟁을 들 수 있다. 관크란 ‘관(觀)’과 ‘크리티컬(critical)’을 합친 신조어로, 다른 관객의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를 뜻한다. 공연 중 휴대전화가 울린다거나 잡담하는 것과 같이 기본적인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것은 분명 관크다. 문제는 공연 마니아들이 관크로 규정하는 범위가 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를 테면 겨울철 패딩 점퍼가 스치며 발생하는 소리부터 옆사람이 뿌린 향수 냄새까지 관크라며 불만을 표하는 관객이 적잖은 것. 해외의 경우 관객들이 공연 내용에 비교적 자유롭게 호응하고 공연장 내부에서 아이스크림이나 음료 및 주류 등을 판매, 섭취를 허용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를 두고 관객들은 ‘소비자로서 작품에 집중하기 위해 행사하는 권리’라는 주장을 펼치는 반면, 전문가들은 ‘지나친 엄숙주의’라고 우려하는 상황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중도를 찾는 것이겠으나 서로 다른 적정선을 충족하기 어려운 만큼, 그렇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런 한편 ‘회전문 관객’의 취향에 맞춘 작품들만 무대에 올라 다양화를 막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입봉 4년 차의 극작가 B씨(25세)는 “공연을 보는 관객 대다수가 여성이다. 그래서인지 연출자를 비롯한 제작 관계자들은 주로 남성 캐릭터 중심의 작품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여성 중심 서사를 가진 작품을 특히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물론, 캐릭터의 성별을 남자로 바꾸지 않으면 함께 작품을 만들 수 없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편견이다. 최근 페미니즘이 사회의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면서 공연계에서도 새로운 여자 캐릭터의 출현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지난해 여자 캐릭터만이 등장해 화제를 모은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전회차 전석 매진을 기록한 데 이어 ‘제3회 한국뮤지컬어워즈’ 4관왕을 차지하며 호평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나르다 알바’의 타이틀 롤을 맡은 정영주는 “여자 배우 10명 모으는 것은 쉬웠다. 하지만 여자 배우 10명만 나오는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고 토로, 특정 성별에 편향된 공연계의 현실을 꼬집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오늘날 공연계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회전문 관객’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가격의 장벽이 높은 탓이다.
이로 인해 지난해 고객 불만을 야기한 작품이 대극장 뮤지컬 ‘웃는 남자’와 ‘지킬 앤 하이드’였다. 두 작품은 평일 대비 주말 티켓 가격을 1만 원 높에 책정했다. 그 중에서도 오는 5월까지 공연이 계속되고 있는 ‘지킬 앤 하이드’의 경우, 주말에 VIP 좌석에서 관람하려면 최대 15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할인받을 수 있는 항목도 마땅찮다. 장애인과 국가유공자에 대한 50% 할인과 단체 관람 할인을 제외하고 ‘지킬 앤 하이드’가 소비자를 위해 마련한 최대 할인율은 30%다. 초·중·고등학생이 그 대상인데 이마저도 VIP 좌석은 제외됐다. 이 외에는 ‘지킬 앤 하이드’ 이번 시즌에 새로 합류하는 배우들의 첫 공연, 총 2회분 예매자와 재관람 관객에 한해 10% 저렴한 가격에 티켓을 살 수 있다. 따라서 국가유공자가 아닌 비장애인 직장인이 ‘지킬 앤 하이드’를 두 번째 보려고 해도 VIP 좌석에 13만5000원을 내야 하는 것이다. 주말 CGV 프라임석 티켓 가격이 1만2000원인 것과 비교하면 10배 이상 높다. 이렇다 보니 주위에 “영화 보러 가자”는 제안은 가볍게 해도 “공연 보러 가자”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대극장 공연의 티켓 가격 인상은 업계 전반의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최근 들어 소극장에서도 전 시즌 대비 가격을 올리거나 할인 항목을 적게 두는 공연이 늘게 된 것이다. 제작비 및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불가피한 변화라고는 하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