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쇼박스 제공
류준열은 독립군들의 이야기를 다룬 ‘봉오동 전투’에 무거운 마음으로 참여했다. 촬영을 위해 산을 오르내릴 때조차 그들의 마음을 되새긴 류준열은 진심은 ‘봉오동 전투’를 한층 빛나게 했다.
1920년 6월 죽음의 골짜기로 일본 정규군을 유인, 대한독립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이룬 최초의 승리 과정을 그린 ‘봉오동 전투’에서 류준열은 냉철한 이성을 가진 독립군 분대장 이장하 역을 맡았다.
역사적 인물, 특히 독립군을 연기하는 것에 류준열에게도 부담이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그의 마음을 짐작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보통 처음 시나리오를 읽을 때는 캐릭터와 닮은 점을 찾는데, 이번에는 이장하와 닮은 점이 생각이 안 나더라. 그의 마음을 내가 짐작하기가 힘들었다. 캐릭터에 대해 어떤 질문을 던져 봐도 쉽게 대답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글로리데이’ ‘택시 운전사’ ‘리틀 포레스트’ 등 다양한 시대의 청춘의 얼굴을 그린 류준열이지만, 그럼에도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다. 감정조차 마음껏 표현할 수 없었던 이장하를 연기하며 더욱 아프기도 했다.
“청춘을 표현하는 작품들을 좋아하지만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다. 현대인들은 개인의 감정, 감성을 표현하는 데 시간을 많이 쏟지 않나. 하지만 이장하는 그런 게 사치인 시대의 인물이다. 속상하고, 많이 공감을 했다. 특히 이장하는 누이의 죽음 앞에서도 감정을 표현하지는 않는다. 돌아보면 그 시대는 현대인들이 당연히 생각한 개인의 감정이나 사연보다 시대가 요구하는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투 장면이 대부분인 이번 영화에서는 배우, 스태프들이 수없이 산을 오르내려야 했다.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의 산을 돌며 촬영한 류준열은 생경한 풍경에 감탄하던 것도 잠시, 장비를 들고 이동하느라 고생하는 스태프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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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제주도에서 많이 찍었다. 독특한 지형이 많았는데, 봉오동과 비슷한 지점들도 있었다. 신선한 장소라고 생각했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싶더라. 하지만 스태프 분들을 보는 게 고통스러웠다. 먼저 준비하고 늦게 퇴근하신다는 노고를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에는 다 짊어지고 오르내리셨다. 배우들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도와드리려고 하면 걱정을 많이 하셔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부분들이 유난히 힘들었다.”
이동만으로도 힘들어한 류준열은 촬영이 끝난 이후, 편한 숙소에서 잠을 자면서 당연하게 누리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달았다.
“촬영을 위해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독립군 분들이 어떻게 이 산을 오르고 내렸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촬영을 위해 만들어 둔 동굴이나 막사에 들어가면 ‘이런 데서 잠을 주무시고, 식사를 하시며 지키셨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촬영이 끝나면 푹 쉬고, 지방이면 숙소에 가서 쉬지만 그 분들은 그게 아니지 않나. 전투가 끝나면 그곳에서 다리를 뻗고 주무시는 거다. 촬영을 하면서 그 분들의 마음이 많이 느껴졌다.”
이렇듯 진심을 다했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 불매 운동을 진행 중인 지금, 시의적절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자칫 작품 자체만으로 평가받지 못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시류에 휩쓸려 단기간에 만들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기록과 기억에 대한 영화로 기억됐으면 한다. 각자의 사연을 파고들면서 만들었으면 감정적이겠지만, 그러한 사연도 꾹 누르고 전투의 승리에 집중했다.”
②편으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