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보호법이 시행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혼란은 지속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투자성향 분석에만 1시간, 모든 계약을 마무리하려면 1시간 30분이 걸려요. 누가 이렇게 오래 기다릴까요? 답답합니다.”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시행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소비자를 위해 만든 법은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아 소비자를 더욱 피곤하게 하고 있다. 상품 설명에만 1시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되고 있고 일부 서비스는 아직도 준비중이다.
1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등 시중은행들의 일부 서비스가 여전히 점검 중이다. 대부분 은행들은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할 금융상품 설명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금소법’ 시행 직후 상품 가입을 위해 걸리는 시간이 대폭 늘어나자 은행 직원은 물론 고객들도 가입 자체를 꺼리는 상황까지 생겼다. 은행들은 모바일 뱅킹을 적극 활용하는 쪽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비대면 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고객들은 이마저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금소법은 일부 금융상품에만 적용하던 ‘6대 판매규제’(적합성 원칙·적정성 원칙·설명의무·불공정영업행위 금지·부당권유행위 금지·허위 과장광고 금지)를 모든 금융상품으로 확대하는 게 핵심이다. 이를 위반한 금융사에는 관련 수입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고, 판매한 직원에게도 최대 1억원의 과태료를 물린다.
법의 틀은 만들어졌지만 세부적인 규정은 아직 정비되지 않아 업계의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 은행 일부 서비스 여전히 ‘점검 중’
KB국민은행은 전산 시스템 적용을 이유로 리브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간편 대출 서비스를 중단했다. 신한카드도 신한 마이카 대출과 개인사업자 인터넷 기업 대출, 중도금·우리사주·이주비 대출과 관련된 서류를 받지 않고 있다.
우리은행은 스마트 키오스크를 통한 예금과 펀드, 신용카드 신규 판매를 중지했고 하나은행은 ‘HANA온라인 사장님 신용대출’ 및 ‘플러스 모바일 보증부 대출’을 취급하지 않고, 로보어드바이저를 이용한 펀드 가입도 중단했다.
SC제일은행도 일부 대출상품과 방카슈랑스(은행에서 파는 보험) 상품 판매 절차에 금소법을 적용하고 있어 현재 판매를 하지 않는다.
은행들의 판매가 아직까지 재개되지 못한 이유는 상품 설명서 개정 때문이다. 새롭게 바뀐 금융상품 설명서를 소비자에게 이메일 등으로 제공하는 기능을 추가하고 상품을 추천하는 로보어드바이저 역시 개선 작업 중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전산상의 문제가 있어 일부 대출 상품이 중단됐지만 최대한 빠르게 처리를 하기 위해 인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판매에 필요한 설명만 1시간
정작 판매가 되더라도 대면 영업은 힘든 상황이다. 30~40쪽 가량의 투자설명서를 읽어야 하고 전과정을 녹취해야 하기 때문에 은행 직원은 빠르게 설명할 수가 없다. 여기에 약관, 계약서까지 작성하면 1시간이 넘어간다.
이렇게 상품 가입에만 많은 시간이 걸리자 은행들은 고객들에게 모바일 뱅킹을 적극 홍보하며 투자성향 분석 등 복잡한 절차는 모바일 뱅킹에서 처리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비대면 거래가 익숙하지 않고 온라인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깊은 고령층의 경우 가입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 불편함 때문에 상품 판매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결국 은행들은 ‘금소법’이 소비자들을 위한 법인지 의문이라고 토로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입이 어려운 것은 감수할 수 있지만 여러 금융상품에 가입해 다양한 혜택을 누릴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은행들은 졸속 시행은 아쉽지만 이미 법이 시행된 이상 방법을 찾겠다는 입장이다. 모바일 뱅킹을 더욱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간단한 업무만 대면으로 진행해 빠른 순환에 집중할 예정이다.
금융감독원은 금소법 체크리스트를 통해 판매자는 설명의무에 따라 설명서 내용을 소비자가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지만, 그 방법에는 제한이 없다고 밝혔다. 반드시 설명서를 구두로 읽어야 할 필요는 없으며 동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금융당국은 금융권의 준비 부족과 적응 기간 등을 고려해 유예기간을 두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위원회는 현장에서 제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자체 시스템에 반영할 시간이 필요한 점을 감안해 일부 규정은 최대 6개월간 적용을 유예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