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의 주택가 모습 (사진=손기호 기자)

"부동산에서 전세 하나도 없다고 해요. 내년까지 기다려봐야 할 거라고."

직장인 A씨는 서대문구에서 전세로 살고 있지만 계약 만기가 다가오면서 새 집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이 일대 전세 매물은 자취를 감췄고 노원과 중랑구 등 중저가 지역도 보증금이 1억원 이상 올라 감당하기 어렵다. 결국 경기 외곽까지 알아봤지만 매물이 거의 없어 불안은 더 커지고 있다.

서대문구의 송형국 우리부동산 공인중개사는 "전세 매물은 줄고 대출까지 막히면 서민은 전세도, 내 집 마련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내년까지는 시장이 나아질 기미가 없어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 전세·월세, 서울 이어 경기권도 신고가 속출

이처럼 서울 외곽과 경기권 전세 매물이 절반 넘게 줄고 있고, 전·월세 가격도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전세 매물은 지난 2023년 10월25일 3만2242건에서 올해 같은 날 2만4898건으로 22.8% 감소했다. 특히 서민 거주지가 많은 외곽 지역에서 감소 폭이 두드러졌다.

노원구는 1597건에서 717건으로 줄어 55.1% 감소했고, 중랑구도 1225건에서 556건으로 54.6% 줄었다. 도봉구는 1177건에서 567건으로 51.8% 줄었으며, 금천구 역시 926건에서 451건으로 51.3% 줄었다.

같은 기간 경기도 전세 매물은 7만8000여건에서 4만3000여건으로 줄며 44.6% 감소했다. 특히 수원 장안구는 982건에서 278건으로 71.7% 급감해 서민 실수요자가 몰린 지역일수록 전세난이 극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세 매물 부족은 곧바로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KB부동산 등에 따르면, 9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6억5000만원대로 지난 2022년 11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강서구 마곡13단지 힐스테이트마스터의 59㎡ 전셋값은 이달 9억원에 거래됐다. 최고가를 경신한 것이다. 강동구 고덕그라시움 전용 59㎡도 이달 전셋값이 최고가를 기록했다.

경기권도 마찬가지다. 수원 장안구 화서역 인근 단지에서는 전용 59㎡는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110만원, 전용 122㎡는 보증금 7000만원에 월세 230만원으로 거래되며 신고가를 새로 썼다. 전세난이 결국 월세화로 이어지고 임차인의 주거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모습이다.

■ 정책대출 축소…주거 사다리도 흔들

여기에 정책대출 축소가 겹치면서 무주택 서민의 주거 사다리가 사실상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최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종양 국민의힘 의원실이 국토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1~3분기 버팀목·디딤돌 대출 실행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조9554억원 줄어 33.2% 감소했다.

구체적으로 버팀목 전세자금대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6조113억원에서 올해 2조8771억원으로 52.1% 급감했고, 디딤돌 주택구입자금대출도 7조7405억원에서 4조7251억원으로 38.9% 줄었다. 불과 1년 만에 정책대출의 3분의 1이 사라진 셈이다.

정부는 "정책대출이 시장 유동성을 과도하게 밀어올린다"며 축소 필요성을 설명했지만, 정작 피해는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집중된 것. 김종양 의원은 "금융 논리가 주거 정책의 목적을 압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며 "정책대출만큼은 서민에게 기회의 사다리로 기능할 수 있도록 정상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