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배당금 확대와 대손충당금 적립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결산을 앞둔 은행들이 배당금 확대와 대손충당금 적립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요구대로 충당금을 확대하면 순이익이 감소해 배당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주주와 당국의 요구를 모두 이행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은행은 비법을 강구 중이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시중은행들에게 충당금 적립 규모를 확대하라고 요청했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도 “금융회사 충당금이 오히려 전년보다 줄어드는 모습”이라며 “금융회사들이 충당금을 더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손충당금은 금융사의 여신 중 돌려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채권 즉 부실채권을 미리 손실로 처리해 쌓아두는 금액을 말한다. 금융회사들은 대출 채권을 ▲정상 ▲요주의(1개월 이상 연체) ▲고정(3개월 이상 연체) ▲회수 의문(‘고정’ 채권 중 회수에 위험 발생) ▲추정 손실(‘고정’ 채권 중 회수 불가 확실) 등으로 나눠 관리하고 채권별로 일정 수준 이상의 충당금을 적립한다.
국민‧신한‧하나‧우리 등 시중은행의 충당금 적립 규모는 2020년말 5조4006억원에서 지난해 3분기말 5조716억원으로 축소됐다. 같은 기간 국민은행은 소폭(54억원) 줄어드는 데 그쳤지만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은 각각 1007억원, 867억원, 1363억원 감소했다.
충당금 수준을 2020년 수준으로 맞춰야 할 경우 우리은행은 1363억원을 더 쌓아야 한다. 신한은행(1007억원)과 하나은행(867억원)도 1000억원 규모의 충당금을 추가로 적립해야 한다.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중소기업·소상공인·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대출 만기를 연장했다. 6개월씩 3차례나 연장됐다. 이 대출이 정상적으로 만기가 도래한다면 부실이 커질 거란 우려가 많다. 이에 대손충당금을 늘려야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문제는 충당금이 늘어날수록 순이익은 그만큼 작아져 배당에 영향을 준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자본 적정성 유지를 위해 한시적으로 순이익 20% 이내에서 배당을 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올해는 배당과 관련한 당국의 행정지도는 없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충당금 확대로 금융지주 순이익이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배당 감소로 이어진다.
배당이 줄어들면 은행에 투자한 주주들의 반발뿐 아니라 주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은행이 자의적으로 충당금을 과하게 쌓을 경우에는 회계 부정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 충당금 확대 공감하지만 추가 적립은 불만
은행들은 충당금 확대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4분기 회계 결산을 앞둔 시점에 충당금 추가 적립을 주문한 것에 불만을 표하고 있다. 특히 충당금을 급격히 늘리면 주주 배당 감소가 불가피한 점을 우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은행들은 당국과 주주가 가장 만족할만한 최적의 적정 수준을 찾기 위해 여러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자체 충당금 적립 기준을 상향하거나 금융당국에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요청하기도 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제회계기준에 따라 은행들은 30억원 이상 대출에 대해 일일이 자산 평가를 통해 충당금을 쌓고 있다”며 “충당금을 더 늘리려면 정상 여신을 고정이하로 분류해야 하고 대출을 회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몇몇 은행은 금감원에 ‘코로나19 대비’ 명목으로 쌓았던 특별 충당금을 10% 가량 늘리는 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도 “보수적인 충당금 적립 정책을 펼친 만큼 배당이 줄어들 가능성은 낮다”며 “당국 방향대로 건전성 강화는 유지하지만 딱히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러한 은행의 요청에 당국이 구체적인 배당률을 지정할지에 주목하고 있다. 당국은 지난해 1월 말 은행 지주사와 은행의 배당을 순이익의 20% 이내로 제한할 것을 공개적으로 권고했다. 그러나 올해 배당 성향까지 수치로 제한을 두는 방안에 대해 조심스러운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