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그룹 총수.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사진=각 사)
이재용·최태원·정의선·구광모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들이 일본과 중국에 이어 미국을 방문할 전망이다. 반도체 산업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을 둘러싼 미·중 갈등 속 우리 기업들의 해법을 찾기 위해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은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과 관련한 ‘2023 미국 경제사절단’을 모집하고 있다. 경제사절단 일정은 이달 24~28일이며, 참가 대상은 미국과 비즈니스 관계에 있는 기업 대표들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현재 신청 접수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계에서는 4대 그룹 총수가 경제사절단에 포함될 것으로 보고있다. 최근 미국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관련 혜택이나 불이익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재용 삼성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및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구광모 회장 등 총수들이 직접 동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 두 번째)이 지난 3월24일 중국 텐진에 위치한 삼성전기 사업장을 방문해 MLCC 생산 공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
■ 미·중 반도체 패권에 몸살 삼성·SK…이재용·최태원, 중국 이어 미국 나설듯
이재용 회장과 최태원 회장은 최근 중국에 이어 미국을 방문해 미국이 공개한 반도체법 가드레일(안전장치) 세부 조항 관련 미국 내 주요 인사들과 현안을 논의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 회장은 지난 25~27일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台)에서 열린 중국발전고위급포럼 참석차 3년 만에 중국을 방문했다. 이 회장은 리창 총리와 이 포럼의 글로벌 기업인 면담에서 같은 자리에 있었다.
이 회장은 최주선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 양걸 삼성전자 중국전략협력실장(사장) 등 삼성 관계자들과 천민얼 톈진시 서기와 면담을 갖고 경제 위기 타개책 등을 논의했다. 톈진에 위치한 삼성전기 사업장도 방문하고, 삼성 계열사 임직원들과 간담회도 가졌다.
다만 베이징 인근 시안에 위치한 반도체 공장 방문을 했는지는 전해지지 않았다. 삼성전자 중국 시안 공장에서는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한다.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 생산량 4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이 회장은 지난 2020년 5월 이곳을 방문했다.
하지만 미중 갈등으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으로 이 회장의 중국 내 반도체 공장 방문 일정을 추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 회장도 중국을 방문했다. 그는 28~31일 중국에서 열리는 보아오포럼에 참석하고자 4년 만에 중국을 방문했다. 최 회장은 지난 29일 반도체 문제 관련 중국 고위급 인사와 만날 예정인지에 대해 “가능하면 해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고위급 인사를 만났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SK하이닉스는 올해 1분기 조단위의 영업적자가 예상되는 가운데, 전체 매출의 20% 이상이 중국에서 나온다. 중국 우시에서는 SK하이닉스 전체 D램 생산량의 40~50%를, 다롄에서는 전체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20%를 생산하고 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최근 주총에서 올해 10월에 끝나는 미국의 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 유예와 관련해 “추가 유예를 신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완공되기 전까지 시간을 번다는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반도체 보조금 정책에 한국 기업들이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며 “삼성, SK 모두 중국에 반도체 공장이 있고, 미국에 새로 반도체 공장을 지어야 하는 상황에서 갈피를 잡기 쉽지 않다. 중국에 이어 미국 방문을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0월25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에서 전기차 전용 신공장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기공식을 가진 가운데 정의선 회장이 기공식 기념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현대차그룹)
■ IRA로 희비 갈린 현대차·LG…정의선·구광모 회장도 사절단 나설듯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미국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IRA로 인한 세제 혜택 관련 현대차는 어려움에 놓였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 등 배터리 기업은 IRA로 인해 혜택을 받을 전망이다.
현대차는 지난 IRA 세부 규정 발표를 앞두고 현재로선 리스용 차량 판매와 미국 내 공장 건설에 최선을 다하는 게 대응 방침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지난달 30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3 서울모빌리티쇼’에서 IRA 대응 방안을 묻는 질문에 “결국 (IRA) 조건 안에서 상업용 리스 차량 판매 확대나 미국 내 공장 건설 등 기존에 준비하고 있는 부분을 최선을 다하는 게 정답”이라고 말했다.
IRA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한 전기차에만 최대 7500달러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규정을 포함한 법안이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현지에 생산 공장을 세워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현재 미국 조지아주에 연산 30만대 규모의 전기차 전용 공장을 건설 중이다. 다만 완공은 오는 2025년이다. 현대차는 이 일정을 앞당겨 IRA를 정면돌파한다는 구상이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은 IRA 혜택을 받을 준비가 됐다. 다만 구 회장이 미국 순방길에 나서면 이 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지 점검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8월 IRA를 제정하면서 첨단제조 생산세액공제(AMPC)라는 보조금 제도를 마련했다. AMPC는 LG에너지솔루션이 생산하는 배터리를 비롯해 태양광, 풍력발전 등 주요 제품의 제조를 미국에서 생산할 경우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제도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오는 2026년까지 배터리 생산 규모가 293GWh로 전망된다. 최근 미국 애리조나에 7조2000억원을 투자해 원통형 배터리와 ESS(에너지저장장치)용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총 7개의 생산기지를 확보할 예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오는 2025년까지 약 10조원 규모의 이익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