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가 가입자의 진료정보를 수집하는 행태가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험금을 받아야 하는 급박한 상황을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진료정보는 민감정보다. 금융당국은 뒷짐만 지고 있어 보험소비자 피해가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다수의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심사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보관 중인 진료정보 열람에 대한 동의를 고객에게 요청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보험사는 미동의시 보험금 지급이 안 된다며 으름장을 놓는 사례도 확인됐다. 보험사가 요구하는 정보는 진료내역, 처방조제정보 등 민감한 의료정보다.
[이미지=보험사의 심평원 정보제공 동의 요청문 재구성]
통상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심사시 고객 동의를 받고 제3기관을 탐문한다. 가령 동네 병·의원을 방문해 진료기록을 확인하는 것이다. 고지의무 위반 여부를 살펴보기 위한 조사다. 물론 시간과 비용이 든다. 고객이 멀리 떨어진 병원을 이용하고 이를 알리지 않는다면 조사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심평원 진료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면 보험사로서는 이런 어려움을 피할 수 있다.
심평원은 지난해 8월부터 어플리케이션(건강e음)을 통해 '내 진료정보 열람'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정보주체 본인이라면 지문인식 등 간편 인증만으로 최대 5년치 진료정보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
정보주체가 아니라면 위임장과 필요서류를 구비해 직접 방문해야만 열람이 가능하다. 제3자의 접근에 제한을 두는 민감정보이기 때문. 보험사가 이를 직접 열람하겠다는 건 해당 절차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아끼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보험사 출신 한 보상 전문가는 "보험사가 접근하기 어려운 민감정보를 고객 손을 빌려 수월히 확보하려는 의도"라면서 "열람에 미동의할 시 보험금을 부지급하거나 지연하겠다고 안내해 사실상 고객에게 동의를 강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사가 요구하는 정보의 범위도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지적이다.
앞선 전문가는 "보험사가 조사 기간과 항목도 특정하지 않은 채 보험금 청구와 무관한 진료정보까지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는 셈"이라면서 "이는 가입자를 잠정적인 고지의무 위반자로 간주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고지의무 위반 입증 책임은 고객이 아닌 보험사에 있다"고 강조했다.
한 독립 손해사정사도 "심평원 정보 열람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험금을 부지급할 거라면 애초 보험 가입시 열람을 요청했어야 한다"면서 "가입을 위한 문은 활짝 열어둔 채 보험금 청구가 들어오면 딴지를 거는 행태는 사실상 권리(보험료)만 누리고 의무(보험금)는 지지 않겠다는 태도"라고 말했다.
다만 금융당국은 보험사 입장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보험사가 고지의무 위반자에게까지 보험금을 지급할 순 없다"며 "탐문조사만으론 이를 밝혀내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심평원 정보를 요청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부분 고객으로선 보험금을 신속히 받는 게 최대 관심사"라며 "고지의무 위반 사실이 없다면 진료정보 제공에 민감해할 고객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선 금융당국의 안일한 시각이 사태의 심각성을 키운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고지의무를 지킨 고객이 당연히 열람 요청에 동의할 것이라는 시각은 매우 위험하다"며 "이는 보험사 요청을 거절한 모든 고객을 사실상 고지의무 위반자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기사는 뷰어스와 기사제휴한 뉴스포트가 제공했습니다.-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