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 삼양식품 대표. 사진=삼양식품
'불닭 신화'의 주인공 김정수 대표가 이끄는 삼양식품이 연매출 1조원 시대를 열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 국내 매출이 제자리걸음 하는 사이 해외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삼양식품은 완연한 '수출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14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양식품의 지난해 연간 매출 추정치는 1조1792억원으로 전년 대비 29.8%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업이익 추정치도 1486억원으로 64.5%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전망대로라면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사상 최고 실적을 달성하게 된다.
실적 성장의 원동력은 ‘불닭 열풍’에 힘입은 수출 증가였다. 지난해 3분기까지 삼양식품 누적 매출 중 68%를 수출이 차지했다. 불닭이 해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주요 외신에서도 김 대표와 삼양식품의 ‘불닭 신화’에 주목하고 있다.
◆외신도 주목한 ‘불닭 신화’…“66조원 라면 시장 뒤흔든 여성”
미국 유력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이하 WSJ)는 지난 6일(현지시간) 김 부회장의 이력과 그가 개발을 주도한 ‘불닭볶음면’의 탄생 비화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WSJ는 김 대표를 “500억 달러(한화 약 66조원) 규모 인스턴트 라면 산업을 뒤흔든 여성”으로 소개하면서 “김 대표의 삶은 한국 드라마의 한 페이지에서 떨어져 나온 것 같다”며 김 대표의 이례적인 성공 이야기를 약 9000자 분량으로 풀어냈다.
김 대표는 삼양식품 창업자인 고(故) 전중윤 전 명예회장의 며느리로, 삼양식품에 입사한 것은 회사가 외환위기로 위기를 맞은 1998년이었다. 입사 후 남편인 전인장 전 회장을 돕기 시작한 김 대표는 어려운 경영 환경을 타개하기 위해 저렴한 대파와 팜유 등을 찾아 중국과 말레이시아 등지를 누볐다. 이후 경영이 안정되자 김 대표는 2006년 구성된 신제품 위원회를 주도했다.
기울어가던 삼양식품을 회생시킨 ‘불닭볶음면’이 태동한 것은 2010년이었다. 당시 김 대표는 외출 중 사람들이 유명 맛집에서 줄을 서서 기다려가며 매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게 됐다. 매운맛에 열광하는 트렌드를 직접 확인한 김 대표는 곧바로 ‘매운 라면’ 개발에 착수했다. 제품 개발 과정에는 닭 1200마리와 소스 2톤이 투입됐다. 식품개발팀은 전세계 다양한 고추를 연구하고 한국 내 매운 음식 맛집도 방문했다. 최적의 맛을 찾는 과정을 거쳐 2012년 ‘불닭볶음면’이 출시됐다.
당시 시장에서 매운맛 라면은 빨간 국물 라면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비빔 라면인 불닭볶음면은 출시 직후에는 매운맛 국물 라면에 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특유의 매운맛과 감칠맛으로 소비자들 사이에서 점차 입소문을 탔다. 특히 유튜버 등 인플루언서들의 ‘먹방’에서 제품이 소개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해외에서 제품을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한 ‘파이어 누들 챌린지(불닭볶음면 시식에 도전하는 콘텐츠)’는 이때부터 시작된 셈이다.
◆수출로 새로운 전기 마련…‘불닭’ 딛고 글로벌기업으로
삼양식품 불닭 브랜드 제품들. 사진=삼양식품
삼양식품은 2016년 불닭볶음면 수출에 나선다. 김 대표는 BTS, 블랙핑크 등 K-팝 스타들이 제품을 소개한 유튜브 영상이 해외에서 인기를 끌자 해외 시장 개척을 추진했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2015년 307억원이었던 수출액은 불닭 수출을 시작한 2016년 931억원으로 3배 넘게 뛰었다. 2019년 수출액은 2728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52.4%를 차지하며 국내 매출을 넘어섰다. 해외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삼양식품 매출 중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2021년 61%, 2022년엔 67%로 빠르게 증가했다.
김 대표는 해외에서 불닭볶음면이 젊은 소비자를 중심으로 ‘파이어 누들 챌린지’를 통해 인지도를 확대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힘겹게 매운 음식을 먹는 콘텐츠가 일종의 놀이로 여겨지고 있던 것. 이에 착안해 ‘불닭볶음면 빨리 먹기 대회’ 등 마케팅을 펼치며 불닭볶음면을 단순 즉석식품이 아닌 ‘놀거리’로 포장했다. 매운맛의 인기는 나라를 가리지 않을 것이란 확신도 있었다. 불닭볶음면을 먹고 함께 매워하는 경험은 현지 SNS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현재는 불닭볶음면 유튜브 영상과 관련 게시글 조회수를 합치면 300억뷰가 넘을 정도다.
수출을 중심으로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생산시설도 늘려야 했다. 해외 수요 비중이 큰 만큼 현지에 생산시설을 짓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김 대표의 선택은 국내 공장 증설이었다. 국내생산을 통해 품질을 표준화한 제품이 외국인에게 더 진정성 있게 다가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2019년 삼양식품은 원주 공장 이후 30년만에 경남 밀양에 새 공장을 짓기로 했다. 1300억원을 투자해 지난해 5월 완공된 밀양 공장은 ‘수출 전초기지’로 계획됐다. 9월엔 오는 25년 준공을 목표로 제2공장 증설에 나섰다.
‘메이드 인 코리아’ 전략은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프리미엄 K-라면’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주효했다. 국내보다 높은 가격을 책정했음에도 불티나게 팔렸다. 매대 한 칸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국내와 달리 판촉비용도 훨씬 적었다. 이는 고스란히 높은 영업이익률로 돌아왔다. 불닭볶음면 수출을 시작한 2016년 삼양식품의 영업이익률은 7% 수준이었지만, 2019년엔 14.4%로 2배 넘게 올랐다. 이후에도 꾸준히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유지하고 있다. 보통 식품 기업이 5% 내외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는 것과 비교하면 한층 돋보이는 성과다.
김 대표는 이제 본격적인 글로벌기업으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김 대표는 올해 신년사를 통해 “새해에는 어떠한 외부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초격차 역량 강화를 통해 단순한 외연 성장이 아닌 글로벌 종합식품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와 함께 삼양식품의 미래 방향성으로 공장 생산의 질적·양적 진화와 4대 전략 브랜드 강화, 불닭 소스의 글로벌 영향력 확대, 대체 단백질 사업 선도 등을 강조했다. 핵심 브랜드인 ‘불닭’을 꾸준히 강화하는 한편, 약점으로 지적받는 사업 포트폴리오도 다변화하겠다는 복안이다.
김 대표는 “불닭볶음면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어내면서 배운 가장 중요한 점은 미래를 내다볼 때 과거에만 근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앞으로의 3년은 핵심인 식품 기반 아래 미래 식문화를 선도하기 위한 저변 확대를 목표로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