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테크('상품권 재테크')족도 잠재적 범죄자일 수 있다. 카드사 약관의 허술한 부분을 파고들어 돈을 훔치는 부류들." 상테크족이 나쁜 걸까. 아니면, 상테크가 가능하도록 구조를 짠 설계자들이 문제일까. 최근 티메프 사태로 카드사의 상품권 환불 처리가 지연되면서, 카드로 온라인 상품권을 사 되파는 방식으로 현금을 챙기는 이른바 '상품권깡'이 도마에 올랐다. 누가 얼마나 발행하고 사용하는지 알 수 없는 상품권에, 신용카드 '선결제'라는 마법이 더해지는 순간 '카드깡'의 조건이 성립된다. 카드사들은 상테크족 난립으로 카드 상품의 수익성이 악화됐다며 부랴부랴 상테크 혜택을 삭제하고 나섰다. 최근 출시되는 신용카드 대부분은 포인트 적립 조건에 ‘상품권 구매 제외’가 명시돼 있다. 하지만 카드사들이 '상품권깡'을 오히려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하는 등 그 동안 '깡'의 세계를 설계하고 주도해 왔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1년 전 8월 휴가기간, 카드사들은 앞다퉈 '상품권 마케팅'을 펼쳤었다. SKYPASS 롯데 아멕스카드나 삼성카드&Mileage Platinum 카드, 신한카드 Air One, 아시아나클럽 롯데아멕스 등은 상품권 구매 시 마일리지 혜택을 주는 등 티몬 등에서 '온라인 상품권' 특가 상품 구매하도록 친절히 안내하기도 했다. 신용카드로 한달 상품권 구입 최대 한도인 100만원 어치를 사면, 티몬에서 상품권을 7만6000원 할인받고, 카드사에서는 1000마일 가까이 마일리지를 쌓을 수 있다는 식이다. 자료=올댓쇼핑 신한카드의 경우, 상테크에 최적 카드라는 입소문이 나기도 했다. 신한카드 '올댓쇼핑'에서 신세계 백화점 상품권을 구입하면, 상품권 구매 포인트 적립 이벤트나 올댓쇼핑 0.5% 포인트를 적립해 준다. 이 같은 혜택을 받기 위해 상테크족들은 상품권 풀리는 날을 눈 빠지게 기다렸다. 하지만 상테크족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실상 '재테크'라 하긴 어려운 점들이 드러난다. 특히 저신용자 등 대출이 어려운 사람들 사이에선 상테크 혜택이 있는 카드를 발급받아, 상품권깡으로 생활비를 돌려막기 하는 행태도 공공연히 이뤄졌다. 자료=신용카드 커뮤니티 캡쳐 상품권깡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수수료를 떼고 상품권을 매입하는 업체는 허다하게 검색된다. 수수료를 아끼는 방법도 있다. 대표적으로 '페이코앱'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상품권 핀 넘버를 사이트에 입력해 받은 캐시를 다시 '페이코'에서 포인트로 바꾸면 현금화가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페이코는 8%의 수수료를 뗀다. 페이코는 사실상 '상품권깡 창구'로 통용된 것이다. 페이 업계 관계자는 "페이코는 상품권깡 앱으로 은근히 소문이 자자한데도 매출을 내야 하니까 모른 척 놔둔 것"이라며 "카드깡, 상품권깡은 선불의 탈을 쓴 후불의 세계"라고 일갈했다. 사실 페이코뿐 아니라 여타 페이사들도 비슷한 행태의 영업을 해왔다. 상품권깡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김대중 정부는 1999년 외환 위기 이후 기업경제 촉진을 내세우며 '상품권법'을 폐지했다. 이때부터 상품권의 발행업체와 종류는 다변화하기 시작했다. 해피머니나 컬쳐랜드 등도 이렇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2002년 7월에는 재정경제부가 여신전문금융업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신용카드로 상품권 결제가 가능하도록 허용하면서 '카드깡'과 무자료 거래, 세금포탈에 상품권이 이용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벤처 열풍이 불면서 기업들은 법인카드로 백화점에서 상품권을 수억원씩 선결제하고 되파는 방식으로 현금을 융통하기도 했다. 백화점은 기업이 카드로 1억원을 결제하면 1억 500만원 어치의 상품권을 주는 방식으로 일부 할인을 제공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래된 상품권깡의 역사에도 규제는 여전히 미비한 상태다. 지난 21대 국회에선 상품권의 발행과 유통을 투명하게 하는 '상품권 유통질서 확립 및 상품권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홍익표 의원안)이 발의됐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현 22대 국회에선 아직 관련 법안이 발의된 바 없다.

카드·상품권의 '잘못된 만남'···상품권깡 부추긴 카드사들

상품권깡 = 카드깡, 알고도 모른 척 '상품권 마케팅' 펼쳤던 카드사들
티메프 사태 터지자 부랴부랴 상테크 혜택 삭제
본연의 가치 잃은 상품권, 존재 이유는...

황보람 기자 승인 2024.08.07 07:00 | 최종 수정 2024.08.07 11:19 의견 0

"상테크('상품권 재테크')족도 잠재적 범죄자일 수 있다. 카드사 약관의 허술한 부분을 파고들어 돈을 훔치는 부류들."

상테크족이 나쁜 걸까. 아니면, 상테크가 가능하도록 구조를 짠 설계자들이 문제일까.

최근 티메프 사태로 카드사의 상품권 환불 처리가 지연되면서, 카드로 온라인 상품권을 사 되파는 방식으로 현금을 챙기는 이른바 '상품권깡'이 도마에 올랐다. 누가 얼마나 발행하고 사용하는지 알 수 없는 상품권에, 신용카드 '선결제'라는 마법이 더해지는 순간 '카드깡'의 조건이 성립된다.

카드사들은 상테크족 난립으로 카드 상품의 수익성이 악화됐다며 부랴부랴 상테크 혜택을 삭제하고 나섰다. 최근 출시되는 신용카드 대부분은 포인트 적립 조건에 ‘상품권 구매 제외’가 명시돼 있다.

하지만 카드사들이 '상품권깡'을 오히려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하는 등 그 동안 '깡'의 세계를 설계하고 주도해 왔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1년 전 8월 휴가기간, 카드사들은 앞다퉈 '상품권 마케팅'을 펼쳤었다. SKYPASS 롯데 아멕스카드나 삼성카드&Mileage Platinum 카드, 신한카드 Air One, 아시아나클럽 롯데아멕스 등은 상품권 구매 시 마일리지 혜택을 주는 등 티몬 등에서 '온라인 상품권' 특가 상품 구매하도록 친절히 안내하기도 했다. 신용카드로 한달 상품권 구입 최대 한도인 100만원 어치를 사면, 티몬에서 상품권을 7만6000원 할인받고, 카드사에서는 1000마일 가까이 마일리지를 쌓을 수 있다는 식이다.

자료=올댓쇼핑

신한카드의 경우, 상테크에 최적 카드라는 입소문이 나기도 했다. 신한카드 '올댓쇼핑'에서 신세계 백화점 상품권을 구입하면, 상품권 구매 포인트 적립 이벤트나 올댓쇼핑 0.5% 포인트를 적립해 준다. 이 같은 혜택을 받기 위해 상테크족들은 상품권 풀리는 날을 눈 빠지게 기다렸다.

하지만 상테크족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실상 '재테크'라 하긴 어려운 점들이 드러난다. 특히 저신용자 등 대출이 어려운 사람들 사이에선 상테크 혜택이 있는 카드를 발급받아, 상품권깡으로 생활비를 돌려막기 하는 행태도 공공연히 이뤄졌다.

자료=신용카드 커뮤니티 캡쳐

상품권깡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수수료를 떼고 상품권을 매입하는 업체는 허다하게 검색된다. 수수료를 아끼는 방법도 있다. 대표적으로 '페이코앱'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상품권 핀 넘버를 사이트에 입력해 받은 캐시를 다시 '페이코'에서 포인트로 바꾸면 현금화가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페이코는 8%의 수수료를 뗀다. 페이코는 사실상 '상품권깡 창구'로 통용된 것이다.

페이 업계 관계자는 "페이코는 상품권깡 앱으로 은근히 소문이 자자한데도 매출을 내야 하니까 모른 척 놔둔 것"이라며 "카드깡, 상품권깡은 선불의 탈을 쓴 후불의 세계"라고 일갈했다. 사실 페이코뿐 아니라 여타 페이사들도 비슷한 행태의 영업을 해왔다.

상품권깡은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김대중 정부는 1999년 외환 위기 이후 기업경제 촉진을 내세우며 '상품권법'을 폐지했다. 이때부터 상품권의 발행업체와 종류는 다변화하기 시작했다. 해피머니나 컬쳐랜드 등도 이렇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2002년 7월에는 재정경제부가 여신전문금융업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신용카드로 상품권 결제가 가능하도록 허용하면서 '카드깡'과 무자료 거래, 세금포탈에 상품권이 이용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벤처 열풍이 불면서 기업들은 법인카드로 백화점에서 상품권을 수억원씩 선결제하고 되파는 방식으로 현금을 융통하기도 했다. 백화점은 기업이 카드로 1억원을 결제하면 1억 500만원 어치의 상품권을 주는 방식으로 일부 할인을 제공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래된 상품권깡의 역사에도 규제는 여전히 미비한 상태다.

지난 21대 국회에선 상품권의 발행과 유통을 투명하게 하는 '상품권 유통질서 확립 및 상품권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홍익표 의원안)이 발의됐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현 22대 국회에선 아직 관련 법안이 발의된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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