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혐오' 논란을 촉발시킨 '집게 손가락' 모양이 사용된 메갈리아 로고. (사진=SNS 갈무리)
“요거트 뚜껑을 열거나 패키지를 잡을 때 등 논란의 여지가 있는 손동작 사용 주의 부탁드립니다.”
서울우유가 신제품 ‘그릭요거트’ 홍보 캠페인을 진행하며 인플루언서들에게 전달한 주의사항 중 하나입니다. 언뜻 보면 혹시 모를 논란을 피하기 위해 주의를 요청하는 내용으로 보이는데요. 해당 문구가 알려지자 서울우유는 느닷없는 ‘여성 혐오’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손동작’이 최근 ‘남성 혐오’ 논란을 불러왔던 ‘집게 손가락’ 모양을 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 때문이었죠. 서울우유 측 안내 내용이 지나친 자기검열을 요구해 오히려 ‘여성 혐오’라는 주장입니다.
서울우유로선 ‘남성 혐오’ 논란을 피하려 했다가 오히려 ‘여성 혐오’ 논란에 불을 지핀 셈인데요. 첨예한 젠더 갈등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른바 ‘가불기(가드 불가 기술, 방어나 회피가 불가능한 상황을 이르는 말)’에 걸린 셈이죠. 서울우유는 일단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서울우유 관계자는 “어떠한 소비층에도 오해가 생기지 않게 선제적으로 외부 블로그 체험단에게 가이드 라인을 배포한 것인데 문제가 불거져 안타깝다”면서 “앞으로 영상이나 이미지 제작 과정에 지금보다 강화된 검수 과정을 거쳐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써서 작업할 예정”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서울우유가 빠르게 진화에 나섰지만, 일부 네티즌은 과거 ‘여성 혐오’ 논란을 일으켰던 서울우유 광고 등을 꺼내 들며 불길을 키우고 있습니다. 서울우유로서는 한발 잘못 내디뎠다가 ‘여성 혐오 기업’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죠. 일각에서는 불매운동 주장까지 스멀스멀 번지고 있습니다. 다만 해명 이상의 적극적인 대응을 하기도 어려운데요. 이번처럼 자칫하면 ‘남성 혐오’ 논란까지 뒤집어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젠더 갈등’ 심화에 갈팡질팡 유통가, 불매운동 문턱 낮아 긴장↑
젠더 갈등이 날로 과열되면서 기업들은 불씨가 옮겨붙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온라인 홈페이지나 공식 SNS 계정 등에서 사용되는 문구는 물론, 홍보 이미지나 동영상까지 뒤지며 혹시라도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없는지 살피고 있죠. 하지만 그럼에도 논란을 완전히 피해갈 순 없었는데요. 가깝게는 르노 자동차를 비롯해 스마일게이트, 넥슨 등 게임업계, 고용노동부 등 정부 부처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집게 손가락’ 이미지 때문에 논란에 휩싸인 바 있죠.
앞서 유통가에서도 GS25나 빙그레 등이 홍보물에 포함된 ‘집게 손가락’ 이미지 때문에 한차례 홍역을 치렀는데요. 어느 기업이나 젠더 갈등에 휩싸이는 것을 기피하는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유통업계의 경우 해당 이슈를 특히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유통업계에서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는 연령대가 젠더 갈등을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1020 세대인 데다, 유통업종 특성상 대체재가 많아 불매운동 문턱은 낮고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GS25는 ‘집게 손가락’ 논란이 실제 불매운동으로 이어지며 실적에 타격을 입기도 했죠.
이 때문에 유통가 홍보 및 마케팅 담당자들은 골머리를 썩고 있습니다. 논란이 될만한 요소를 사전에 모두 방지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홍보·마케팅 활동에서 손을 놓을 수도 없어서죠. 트렌드 따라잡기가 중요한 업계 특성상 발 빠른 마케팅이 중요한데, 상당수는 1020세대가 활용하는 ‘인터넷 밈(Meme, 유행 콘텐츠 또는 경향)’을 통해 이뤄지곤 합니다.
문제는 하루에도 쏟아지는 ‘밈’이 무수히 많다는 점이죠. 그중 논란의 여지가 있는 내용을 인지하고 걸러내는 것도 어려운데 이제는 영상이나 그래픽 속에 혐오 표현이 포함됐는지, 나아가 혐오 표현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내용이 없는지까지 살펴야 하는 상황입니다.
유통업체 한 홍보 담당자는 “언제 어디서 논란이 터질지 전혀 알 수 없다 보니 미리 대비할 수도 없다. 문제가 불거지면 일단 맞아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논란이 될만한 요소를 찾기 위해 커뮤니티 등을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모든 요소를 사전에 배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다”고 토로했습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주요 소비 집단을 특정 연령이나 특정 성별로 한정할 수 없기 때문에 젠더 갈등 논란에 대처하기 더 힘들다”라며 “이쪽 말을 들으면 저쪽이 적이 되는 식의 편 가르기가 심해지다 보니 논란 예방을 위한 움직임조차 쉽지 않다”라고 설명하더군요.
물론 사회에서의 성평등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젠더 갈등’은 과연 진정한 ‘성평등’을 위한 것인지, 혹은 ‘공정성’을 매개로한 감정의 충돌인지 되돌아 봐야 합니다. ‘남성혐오’, ‘여성혐오’로 귀결되는 잘못된 부등호로 인해 현재 한국사회가 남성과 여성을 극단적으로 편을 가르고 대치하게 만든다면, 같은 무리끼리 모여 이루는 집단을 의미하는 ‘사회’가 완성될 수 없겠죠.
소비자 최접점에 선 유통업계는 오늘도 ‘여성 혐오’에 이어 ‘남성 혐오’까지, 양쪽 눈치를 모두 보면서 혹시라도 갈등에 휘말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마케팅 활동에 과도한 ‘몸 사리기’가 요구되면서 손발이 묶일 것이란 우려도 있는데요. 지나친 자기검열로 창의성이 제한된다면, 우리는 참신하고 색다른 마케팅 활동을 더 보기 힘들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