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시작된 영풍·MBK연합과 고려아연의 갈등이 해가 바뀌고도 계속되고 있다. 75년 동안 동업 관계를 유지해 온 장씨 집안과 최씨 집안 사이 경영권 분쟁에 다국적 사모펀드가 가세하면서 대립이 극한에 치닫고 있는 모양새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고소·고발전과 흑색선전은 양측 모두에게 상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풍이 고려아연을 고집하는 현실적인 이유에 대해 알아봤다. -편집자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고려아연)
영풍과 고려아연은 모두 비철금속 제련업을 주력사업으로 하는 국내 비철금속계의 절대강자다. 영풍이 폐수 무단 배출 등의 이유로 약 2개월 간의 조업 정지 행정처분이 확정됨에 따라 고려아연의 반사이익이 예상된다. 멈춘 공장에서 고려아연의 이익을 지켜봐야 하는 영풍 입장에서는 고려아연과의 경영권 전쟁에서 물러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가 생긴 셈이다.
고려아연이 비철금속 분야 중 아연과 연, 은, 인듐 세계 1위라는 것은 이번 갈등을 통해 널리 알려졌지만, 영풍 석포제련소가 아연 제련 세계 6위 규모의 제련소라는 것은 생소하다. 석포제련소는 연간 아연 생산량이 32만5000t 정도로 국내시장 점유율은 30%대, 세계시장 점유율은 2%대다.
■ 폐수 적발 5년 8개월만 행정처분···조업정지 58일
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환경부와 경상북도는 석포제련소에 '58일간 조업정지' 행정처분을 내렸다. 이에 오는 2월 26일부터 4월 24일까지 석포제련소는 가동을 멈추게 된다. 2019년 4월 환경부 중앙기동단속반에 의해 낙동강에 폐수를 무단 배출하고 무허가 배관을 설치한 사실 등이 적발된 지 약 5년 8개월 만에 행정처분이 확정된 것이다.
이 기간 영풍은 지속해서 조업정지 취소 소송을 제기하는 등 반발했으나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되면서 조업정지가 확정됐다. 지역 시민단체인 안동환경운동연합은 대법원 판결 이후 성명서를 내고 "제련소를 운영해 온 지난 반세기 동안 온갖 불법과 환경범죄 행위에 대한 처분에 대해 반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며 "오히려 '환피아'를 동원해 문제를 축소 은폐하거나 대형 로펌을 통한 소송으로 일관해 오던 영풍에 대해 사법정의를 보여 준 지방법원과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더해 대법원의 조업정지 확정 판결 직후 황산가스 감지기를 끈 채 조업한 사실이 적발돼 조업정지 10일 처분을 받았고, 카드뮴 오염수 누출·유출로 전현직 경영진의 재판도 예정돼 있다. 이외에도 석포제련소는 지난 5년간 환경오염으로 총 22건의 제재를 받았다.
■ 세계 6위 규모 석포제련소, 2개월 멈추면 타격 불가피
영풍 석포제련소 (사진=영풍)
영풍이 최근 발표한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석포제련소의 평균 가동률은 64.7%로 나타났다. 지난 10여 년 동안 석포제련소 가동률은 75~90%선을 유지해왔는데 가동률이 60%대로 떨어진 이유는 중대재해로 인한 조업 중단 때문이다.
세계 6위 규모의 석포제련소가 2개월 동안 멈추게 되면 세계 아연 시장에 미칠 가격 변화와 또 다른 아연 생산자인 고려아연이 얻을 반사이익이 시장의 관심사다. 이미 시장에서는 아연 현물가격이 3개월 선물가격에 비해 비싸게 거래되는 '백워데이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업계에서는 조업정지 기간 외에 준비기간과 재가동을 위한 기간까지 포함하면 4개월 가량 정상적인 조업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재가동이 되더라도 고순도 아연괴를 생산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 고려아연 반사익 기대···영풍 간절함 더해
시장 전문가들은 고려아연이 반사이익을 누릴 것으로 예측한다. 박성봉 하나증권 연구원은 "석포제련소가 생산을 멈추면 국내 아연 공급이 부족해지는 만큼 아연 가격 상승을 불러올 수 있어, 고려아연이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만약 자칫 추가로 환경오염 행위가 적발된다면 2025년까지 통합환경허가 조건을 모두 이행하지 못해 제련소 폐쇄 수순을 밟을 가능성까지 우려된다. 경영권 확보에 실패한다면 공장 문을 닫은 채 반사이익을 지켜봐야 하는 영풍은 고려아연이 더욱 간절해진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