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환경보건시민센터, 서울환경운동연합 등 10여명은 배보상과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환경보건시민센터) ■ 피해구제 나선 정부, 이제야 손해배상 책임 인정 가습기살균제는 ‘인체에는 전혀 해가 없다’는 대기업을 믿은 소비자를 이유도 모른 채 죽음에 이르게 한 대표적인 사회적 참사다. 그러나 참사가 벌어진 지 15년이 흘렀지만 피해자들은 구체적인 사과를 받지도, 피해보상을 받지도 못하고 있다. 때가 되면 기업 대표가 머리를 숙이지만 도의적인 책임과 인도적인 차원일 뿐 직접적인 언급은 회피한다. 아무도 그들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16일 관계부서에 따르면 환경부는 2019~2021년 총 225억원을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자금에 출연해 피해구제에 나섰다. 국가 책임이 인정되기 전이라 정부 재량에 따라 이뤄진 재정 출연이었다. 최근 대법원이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성분을 넣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함에 따라 정부는 손해배상 책임이 생겼다. ■ 옥시 손해배상 책임인정, 애경‧SK 임직원 형사재판 '유죄 원심' 파기 옥시는 법원이 PHMG 성분과 폐질환의 인과관계를 인정해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다. 옥시의 불법행위는 2023년 11월에야 처음으로 인정돼 현재 단체소송이 진행 중이다. CMIT‧MIT를 원료로 한 애경산업과 SK케미칼의 민사 배상 판결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최근 대법원은 애경‧SK 임직원에 대한 형사재판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피해보상은 피해자와 유족의 신속한 구제를 위해 정부의 주도로 이뤄졌다. 법적인 책임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개연성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7년 1월 제정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에 따라 2000억원의 특별구제계정 중 1250억원을 관련 기업에 분담금으로 징수했다. 여기서 손해배상의 책임자를 ‘가습기살균제 사업자’로 정했다. ■ 정부 주도 피해보상서 원료물질 공급사 제외 가습기살균제 사업자는 원료물질 사업자, 원료물질로 가습기살균제를 만든 사업자가 있다. 원료물질의 최초 제조자는 SK케미칼의 전신인 유공이다. 이 원료물질은 정부의 안전성을 면제받거나 통과했다. 정부의 안전성을 통과한 원료물질을 의심하는 사업자는 없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불법성을 가늠한다면 원료물질 사업자와 정부의 책임이 커야 한다. 그러나 분담금 징수에서 정부는 빠졌고, 원료물질 사업자는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25%만 납부하면 됐다. 특별법에 따르면 분담금의 75% 이상이 사용됐을 경우 추가로 분담금을 징수할 수 있다. 가해기업은 분담금 비율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해왔는데 2차 분담금에 대한 반발은 더 컸다. 최근 애경산업은 횐경산업기술원이 2023년 2월 부과한 추가분담금 약 107억4500만원의 분담비율이 부당하다고 낸 소송에서 승소했다. 긴 소송에 지친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피해자 단체와 SK케미칼·SK이노베이션·LG생활건강·GS리테일·롯데쇼핑·이마트·홈플러스·애경산업·옥시 등 9개사가 참여한 조정위원회가 조정에 나섰다. 최종 조정안은 피해자 7000여 명에게 최대 9240억원을 지급하자는 조정안이 마련됐다. 조정위는 이와 함께 “피해자들이 받을 피해보상금 총액을 한 번에 지급하고, 이후 다시 이 문제를 재론하지 말자”고 권고했다. ■ 법원 판단 늦고 조정 마저 결렬돼···"아직 배보상 못받은 피해자 92%" 9개 기업 중 7개 기업이 조정안에 동의했으나 옥시와 애경이 동의하지 않았다. 피해보상금의 60% 정도를 부담하는 점, 종국성이 확보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피해자들은 피해기간이 길어질 수 밖에 없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의 특성상 종국성을 권고하는 최종 조정안에 동의하기 어려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자료에 따르면 옥시제품 사용한 피해구제인정자 5087명중 92%인 4669명이 배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전체 구제인정자의 82%에 달한다. SK는 그동안 11명에 대해서만 배보상금 지급했다. 민간 차원의 조정안이기 때문에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판단은 다시 법원으로 가게 된다. 또 다시 시작되는 긴 싸움을 피해자들이 견딜 수 있을지 미지수다. 옥시가 내놓은 기부금 50억원을 받지 않은 이유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낸 기부금이기 때문이다. 참사 발생 15년이 지났지만, 사과도 보상도 받지 못한 피해자와 사망자의 가족들에게 시간은 더 빠르게 흐르고 있다.

15년째 풀지 못한 가습기살균제참사, 무엇이 문제인가-4

피해구제 나선 정부, 정작 책임은 뒷전
분담금 책임서 ‘원료사업자’ 제외…불만 야기
최종 조정안 제시, 옥시‧애경 반대로 무산

서효림 기자 승인 2025.01.17 07:00 의견 0
지난 11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환경보건시민센터, 서울환경운동연합 등 10여명은 배보상과 재발방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환경보건시민센터)

■ 피해구제 나선 정부, 이제야 손해배상 책임 인정

가습기살균제는 ‘인체에는 전혀 해가 없다’는 대기업을 믿은 소비자를 이유도 모른 채 죽음에 이르게 한 대표적인 사회적 참사다. 그러나 참사가 벌어진 지 15년이 흘렀지만 피해자들은 구체적인 사과를 받지도, 피해보상을 받지도 못하고 있다. 때가 되면 기업 대표가 머리를 숙이지만 도의적인 책임과 인도적인 차원일 뿐 직접적인 언급은 회피한다. 아무도 그들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16일 관계부서에 따르면 환경부는 2019~2021년 총 225억원을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자금에 출연해 피해구제에 나섰다. 국가 책임이 인정되기 전이라 정부 재량에 따라 이뤄진 재정 출연이었다. 최근 대법원이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성분을 넣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함에 따라 정부는 손해배상 책임이 생겼다.

■ 옥시 손해배상 책임인정, 애경‧SK 임직원 형사재판 '유죄 원심' 파기

옥시는 법원이 PHMG 성분과 폐질환의 인과관계를 인정해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다. 옥시의 불법행위는 2023년 11월에야 처음으로 인정돼 현재 단체소송이 진행 중이다. CMIT‧MIT를 원료로 한 애경산업과 SK케미칼의 민사 배상 판결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최근 대법원은 애경‧SK 임직원에 대한 형사재판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피해보상은 피해자와 유족의 신속한 구제를 위해 정부의 주도로 이뤄졌다. 법적인 책임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개연성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7년 1월 제정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에 따라 2000억원의 특별구제계정 중 1250억원을 관련 기업에 분담금으로 징수했다. 여기서 손해배상의 책임자를 ‘가습기살균제 사업자’로 정했다.

■ 정부 주도 피해보상서 원료물질 공급사 제외

가습기살균제 사업자는 원료물질 사업자, 원료물질로 가습기살균제를 만든 사업자가 있다. 원료물질의 최초 제조자는 SK케미칼의 전신인 유공이다. 이 원료물질은 정부의 안전성을 면제받거나 통과했다. 정부의 안전성을 통과한 원료물질을 의심하는 사업자는 없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불법성을 가늠한다면 원료물질 사업자와 정부의 책임이 커야 한다. 그러나 분담금 징수에서 정부는 빠졌고, 원료물질 사업자는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25%만 납부하면 됐다.

특별법에 따르면 분담금의 75% 이상이 사용됐을 경우 추가로 분담금을 징수할 수 있다. 가해기업은 분담금 비율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해왔는데 2차 분담금에 대한 반발은 더 컸다. 최근 애경산업은 횐경산업기술원이 2023년 2월 부과한 추가분담금 약 107억4500만원의 분담비율이 부당하다고 낸 소송에서 승소했다.

긴 소송에 지친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피해자 단체와 SK케미칼·SK이노베이션·LG생활건강·GS리테일·롯데쇼핑·이마트·홈플러스·애경산업·옥시 등 9개사가 참여한 조정위원회가 조정에 나섰다. 최종 조정안은 피해자 7000여 명에게 최대 9240억원을 지급하자는 조정안이 마련됐다. 조정위는 이와 함께 “피해자들이 받을 피해보상금 총액을 한 번에 지급하고, 이후 다시 이 문제를 재론하지 말자”고 권고했다.

■ 법원 판단 늦고 조정 마저 결렬돼···"아직 배보상 못받은 피해자 92%"

9개 기업 중 7개 기업이 조정안에 동의했으나 옥시와 애경이 동의하지 않았다. 피해보상금의 60% 정도를 부담하는 점, 종국성이 확보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피해자들은 피해기간이 길어질 수 밖에 없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의 특성상 종국성을 권고하는 최종 조정안에 동의하기 어려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자료에 따르면 옥시제품 사용한 피해구제인정자 5087명중 92%인 4669명이 배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전체 구제인정자의 82%에 달한다. SK는 그동안 11명에 대해서만 배보상금 지급했다.

민간 차원의 조정안이기 때문에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판단은 다시 법원으로 가게 된다. 또 다시 시작되는 긴 싸움을 피해자들이 견딜 수 있을지 미지수다. 옥시가 내놓은 기부금 50억원을 받지 않은 이유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낸 기부금이기 때문이다. 참사 발생 15년이 지났지만, 사과도 보상도 받지 못한 피해자와 사망자의 가족들에게 시간은 더 빠르게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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