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 IFC2빌딩앞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환경보건시민센터, 서울환경운동연합 등 10여명이 모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환경보건시민센터)
정부는 다수의 국민이 죽어갈 때까지 가습기 살균제 성분의 유해성을 알지 못했다. 유해성이 밝혀진 뒤에는 책임 떠넘기기와 소극적인 대처로 피해를 키우고 혼선을 빚었다. 국회의 입법은 지나치게 획일적이고 경직돼 국민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지 못했다.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을 과도하게 악마화해 정부의 실책을 덮었고 ‘케미포비아(화학제품 혐오)’가 생겨났다.
지난 2011년까지 가습기 살균제는 일반 공산품으로 분류돼보건 당국의 위해물질 규제에서 벗어나 있었고, 공산품 안전관리법으로 관리되는 품목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보건복지부(복지부)와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 위해성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입장을 내 피해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질병관리본부(질본)은 CMIT와 MIT에 독성이 없다고 발표했지만 환경부는 이를 인체와 어류 등에 유독한 물질로 지정했다.
유해화학물질로 밝혀진 후 복지부 산하 질본은 유해화학물질의 관리는 ‘환경부’, 공산품 관리는 ‘산업부’ 관할이라 법적 근거나 예산이 없어 추가 조사 진행이 어렵다고 난색을 표했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사용과 판매의 중단 ‘권고’했다.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탓에 18명이던 사망자는 일주일새 28명으로 늘었다.
정부가 피해자 규명에 소극적이었던 이유는 ‘자력구제’ 원칙 때문이다. 2013년 당시 윤성규 전 환경부 장관은 피해자 구제는 “법원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 발 빼는 정부의 태도에 피해자의 분노와 국민의 불안이 높아졌다. 여기에 정부와 기업 간의 유착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정부의 신뢰는 크게 흔들렸다.
정부는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 대신 유해성을 강조한 ‘엄격한 관리’로 방향을 바꿨다. 환경부는 모든 살생물 물질과 살생물 제품은 안전성이 입증된 경우에만 시장 유통을 허용할 방침을 세우고 입법화했다. 산업계는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을 ‘킬러 규제’라 공공연히 지적했다. 지나치게 획일적이고 경직된 기준 탓이다.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분은 흡입독성이 있는 강한 살균제가 호흡기를 통해 인체로 들어와 독성을 퍼뜨린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성분 자체를 악마화해 금지 일색의 규제를 발표해 모든 화살을 PHMG‧PGH나 CMIT‧MIT로 돌렸다.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한 국민들은 화학물질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갖게 됐다.
PHMG나 PGH는 피부에 접촉했을 때 다른 살균제에 비해 5~10배 정도 약하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의료용 기구를 살균하는데 PHMG를 사용한다. 유럽연합(EU)의 CMI‧MIT 허용 기준은 15ppm이다. 미국은 허용기준조차 없다. 다만 ,각국은 별도의 예외조항으로 살균물질의 흡입을 금지하거나 안전성을 확보한다. 일본은 CMIT와 MIT의 분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적절한 용도로 사용하는 화학물질은 국민의 삶을 편하게 할 수 있다. 이제 정부는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책임감 있는 노력과 정확한 정보 제공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