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삼양식품)

떡볶이와 라면으로 대표되던 ‘매운맛 음식’은 이제 스낵과 치킨, 햄버거와 만두, 김치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매운맛 트렌드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맵부심(매운맛+자부심)’, ‘맵파민(매운맛+도파민)’ 등 신조어도 만들어졌죠. 젊은 소비자 사이에선 매운 음식을 즐기는 것이 단순한 맛을 넘어 일종의 놀이 문화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을 선보인 이래 이 같은 매운맛 트렌드 확산을 이끌어 온 선봉장인데요. ‘불닭’ 시리즈의 강렬한 매운맛은 삼양식품이 줄곧 갈고 닦은 무기였습니다. ‘불닭’ 제품이 너무 매워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맵기를 낮춘 파생 제품도 선보였었지만, 오히려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하며 금세 단종될 정도였죠. 국내를 넘어 전세계적으로 ‘불닭 열풍’이 일면서 매운맛은 곧 삼양식품의 새로운 브랜드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매운맛 하면 빠질 수 없는 라면 업계에서는 트렌드에 맞춰 ‘가장 매운 제품’ 자리를 두고 스코빌 척도(매운맛을 측정하는 척도)를 높이는 경쟁을 벌여 왔습니다. 삼양식품도 스코빌 척도 4400SHU였던 ‘불닭볶음면’을 1만SHU까지 끌어올린 ‘핵불닭볶음면’을 선보이는 등 매운맛 선두 경쟁을 펼치고 있죠. 하지만 삼양식품이 단순히 매운맛에만 매몰된 것은 아닙니다. 삼양식품은 지난 2023년 국물라면 시장에서 입지를 확대하기 위해 신규 브랜드 ‘맵탱’을 론칭했는데요. ‘매운 국물라면’을 표방했지만, ‘맵탱’은 ‘불닭’과는 확연히 다른 노선을 밟고 있습니다.

‘핵불닭볶음면’의 정신이 아찔해지는 매운맛을 떠올리면, 삼양식품이 선보이는 ‘다양한 매운맛’은 낯설게까지 느껴집니다. 삼양식품은 맵기의 강도만 구분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와인과 커피처럼 다양성과 취향에 따른 매운맛을 선보이겠다는 발상으로 ‘맵탱’을 개발했는데요. 국물라면 시장에서는 이미 ‘불닭’에 버금가는 매운맛으로 시장에 자리잡은 경쟁 제품이 다수 있는 만큼 나름의 차별화 전략을 펼친 셈입니다.

이런 차별화전략은 꽤나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신제품 진입이 거의 막힌 국내 국물라면 시장에서 매월 200만개 이상 판매고를 올리며 입지를 넓히고 있죠. ‘맵탱’이 거둔 성과를 바탕으로 삼양식품은 지난해 말 글로벌 브랜드 ‘맵(MEP)’을 론칭하며 글로벌 시장에서도 국물라면 경쟁력 강화에 나섰습니다. 삼양식품식 다채로운 매운맛을 통해 해외 소비자들을 공략한다는 전략이었죠.

■”기획부터 다르게”…세분화한 매운맛으로 국내·해외 각각 전담

(사진=삼양식품)

비슷한 브랜드 이름, 포장지에 동일하게 적용된 불꽃 모양 상징 등은 ‘맵탱’과 ‘맵’을 자연스럽게 같은 브랜드로 여기게끔 합니다. 단순하게 ‘맵탱’의 해외 수출용 이름이 ‘맵’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죠. 하지만 사실 두 브랜드는 유사성을 공유할 뿐, 별개로 운영되는 각각의 개별적인 브랜드입니다. 국내와 해외 브랜드를 분리해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브랜드 기획 단계에서부터 독자적인 개발 과정을 거쳤죠. ‘맵탱’은 철저하게 국내 시장을, ‘맵’은 해외 시장을 겨냥했습니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라면을 해외에 수출하는 경우, 라면 회사들은 대개 원 제품과 최대한 같은 맛을 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완벽하게 같은 맛을 구현할 수는 없는데요. 국가별로 적용되는 규제가 상이하고, 분말 스프에 육류 성분이 포함될 경우 검역 과정 등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슬람권 국가에선 종교적 이유로 일부 원재료 사용이 제한되기도 하죠. 결국 미묘한 맛의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죠.

삼양식품은 맛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면, 처음부터 다른 맛으로 제품을 개발한다는 선택지를 골랐습니다. ‘맵탱’이 다양한 상황에서 매운맛을 즐기는 국내 소비자 입맛을 세분화하는데 집중했다면, ‘맵’은 한국적인 맛과 이국적인 맛을 접목한 매운맛을 통해 현지 소비자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가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삼양식품 ‘오너 3세’인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략총괄이 ‘맵탱’ 개발을 주도한 반면, '맵' 개발에는 '불닭의 어머니'로 불리는 김정수 삼양라운드스퀘어 부회장이 깊게 관여했다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맵탱’과 ‘맵’은 현재 제품 개발에서부터 마케팅,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두 별개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두 브랜드를 담당하는 사업부도 분리돼 있는데, 각각 국내와 해외를 전담해 집중 공략한다는 방침입니다. 비빔라면으로 일궈낸 ‘불닭 신화’를 이어 국물라면에서도 히트 제품을 선보이는 것이 목표죠. ‘맵탱’은 국내에서 판매량을 늘려가고 있고, ‘맵’도 태국과 일본에 이어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한 밑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맵탱’을 통해 다양한 재료를 기반으로 다채로운 매운맛을 발굴해내고, 해외에서는 ‘맵’을 통해 현지인 입맛에 맞으면서도 K푸드 특유 매운맛을 가미한 제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