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코바니 원전 (사진=연합뉴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수주한 체코 신규 원전 사업이 체코 최고행정법원의 가처분 취소 판결 직후 전격적으로 최종 계약을 체결하며 본궤도에 올랐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이후 16년 만에 이룬 대형 원전 수출 성과로, 한국형 원전의 유럽 시장 첫 진출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함께 담겼다.

체코 정부와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한수원과 발주처인 체코전력공사(CEZ) 산하 두코바니Ⅱ 원자력발전사(EDUⅡ)는 4일(현지시간) 1GW급 원전 2기 건설을 골자로 한 최종 계약에 전자문서 방식으로 서명했다. 총 사업비는 약 25조~26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 우여곡절 끝 성사…미·프 견제 속 팀코리아의 승리

이번 계약은 지난달 한수원과 EDUⅡ가 예정했던 서명식 하루 전 경쟁사인 프랑스전력공사(EDF)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이 체코 브르노 지방법원에서 인용되며 급제동이 걸렸던 사안이다. 이후 항고심을 맡은 최고행정법원이 4일 오전 “1심 결정은 공공의 이익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며 가처분 결정을 전격 취소하면서 계약이 전격 성사됐다.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조금 전 두코바니 신규 원전 2기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다”며 “에너지 자립과 국가 안보를 위한 결정적 조치”라고 밝혔다. EDUⅡ 측 역시 "법적 결정과 무관하게 이미 현장 조사와 서류 작업 등 모든 사전 절차를 준비해왔다"며 계약 체결에 신속히 대응했다.

이번 수주는 단순한 프로젝트 수주를 넘어 미국·프랑스 등 전통 원전 강국들의 견제 속에서 팀코리아가 일궈낸 전략적 승리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수원은 지난해 7월 체코 정부로부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며 향후 테멜린 원전 3·4호기 입찰에서도 우선권을 확보한 상태다.

그러나 이후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식재산권 분쟁, EDF의 법적 공세, 체코 반독점당국에 대한 이의 제기 등 각종 외부 변수로 계약 체결이 수차례 지연됐다. 특히 EDF는 한수원이 정부 보조금을 통해 불공정 경쟁을 했다고 주장하며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도 역외보조금 규정(FSR) 위반 여부 조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특사단이 지난 5월 7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의 체코 총리실에서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를 비롯한 관계자들을 만나 간담회를 열고 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유럽 진출 교두보…국내 생태계 ‘기지개’

업계는 이번 체코 원전 계약을 통해 한국 원전이 유럽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고 평가한다. 특히 향후 테멜린 원전 추가 수주까지 이어질 경우, ‘탈원전-재전환’의 국내 원전 산업 생태계에도 새로운 활력이 공급될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이번 수주를 계기로 중소·중견 원전 기자재 업체들의 참여 기회가 확대되고 국내 원전 공급망 전반에 걸쳐 일감이 창출될 전망이다. 정부와 업계는 이를 탈원전 여파로 위축됐던 생태계 복원의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다만 EDF가 제기한 EU 차원의 역외보조금 이슈 등은 여전히 잠재 리스크로 남아 있다. 이번 계약은 체코 정부 주도 계약이기 때문에 해당 국가 주권 범위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EDF의 공식 제소가 있을 경우 EU는 직권으로 절차 적법성, 투명성, 기술표준 충족 여부 등을 조사할 수 있다.

한수원의 이번 계약은 기술적 승부와 법적 정당성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앞으로 주목할 점은 팀코리아의 체코 원전이 기술·환경·재무적 측면에서 제2라운드를 이길 수 있을지 여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