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대단지 신축 아파트 (사진=손기호 기자)
국내 건설업이 재개발·재건축 사업 호조에 힘입어 수주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중대재해 처벌 강화라는 새로운 파고가 업계를 압박하며 이중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모습이다. 국내 주택 분양시장이 얼어붙은 가운데 정비사업이 사실상 유일한 버팀목이지만 사고 발생에 따른 정부 제재와 비용 부담이 확대되면 실적 방어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 재건축·재개발 전년비 79%↑…정비사업 의존도 높아져
15일 한화증권 자료에 따르면, 최근 발표된 올해 7월 누계 기준 국내 건설 수주액은 18조9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3.9% 늘었다. 특히 주거용 건축 수주가 99.4% 급증하면서 전체 증가를 이끌었다. 이는 공공부문 주택 발주 증가와 함께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집중적으로 발주된 데 따른 결과다.
7월까지 누적된 재개발·재건축 수주액은 29조3000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79%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반대로 신규주택 수주는 16조4000억원으로 30% 줄어들었다. 건설사들이 확보한 국내 일감 대부분은 정비사업에 의존하는 구조라는 말이다.
실제 현장에서도 정비사업은 건설사들의 수주 전쟁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현대건설은 강남권 재건축 단지에서 연이어 시공권을 확보했고 압구정2구역에 도전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여의도 대교아파트에서 롯데건설이 빠지면서 단독 입찰을 하며 수의계약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GS건설과 DL이앤씨도 수도권과 광역시 재건축 사업장에 공을 들이며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 지방은 미분양 늘어…중대재해 리스크도 복병
그러나 정비사업 호조만으로 업계 전체가 안도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올해 전국 분양 공급은 9월 초 기준 12만7000세대로, 지난해 대비 25% 줄었다.
미분양 주택은 6개월 연속 감소했지만 여전히 6만2000세대가 넘고, 준공 후 미분양은 오히려 늘어나 2만7000세대를 넘어섰다. 특히 지방 미분양이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하면서 지역별 수급 불균형이 심각해지고 있다.
또한 건설업계를 가장 긴장시키는 변수는 중대재해다. 정부는 건설현장에서 잇따라 발생한 추락사고 등을 계기로 처벌 강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건설현장 추락사고는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막을 수 있는 사고"라며 강도 높게 질타했고, 고용노동부도 외국인 및 고령 노동자가 잇따라 희생되는 현실을 지적하며 전면 조사 방침을 밝혔다.
지난 7월31일 더불어민주당 산업재해예방 태스크포스(TF)와 안호영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최근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의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
특히 대우건설과 포스코이앤씨는 최근 연이어 사고가 발생하며 업계 전반의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대우건설은 시흥 아파트 현장과 울산 북항 현장에서 근로자 사망 사고가 발생하자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와 함께 전국 100여개 현장의 공사를 전면 중단했다. 앞서 포스코이앤씨도 주상복합 현장 추락사, 고속도로 공사장 사망사고 등 잇따른 사고로 안전 관리 미흡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사고가 발생한 대형 건설사들은 공사 중단으로 인한 공사 지연이나 대표이사 사임 등 사업 운영에 차질을 빚게 된다. 최근 GS건설은 외국인 근로자 사망사고 직후 전국 현장을 대상으로 특별점검에 나섰고, DL건설도 안전 전담 조직을 확대하며 대응에 나서고 있다.
현대건설은 안전관리 전문 조직을 확대하고 협력사까지 포함하는 통합 안전 관리체계를 가동 중이다. 삼성물산은 '디자인 단계에서 안전을 고려하는 DfS 설계'를 내걸고 사고 예방에 더 신경쓰고 있다. DL이앤씨도 'D-세이프코인' 제도를 통해 현장 근로자가 위험 상황을 자발적으로 신고할 수 있도록 하고, 다국어 안전교육 프로그램으로 외국인 근로자 비중 확대에 대응하고 있다.
사망 사고를 예방하는 안전은 필수다. 하지만 이처럼 업계 전반에서 안전관리 투자가 늘면서 원가율 부담은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특히 인건비와 자재비 상승이 겹치면서 건설사는 수익성 약화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 "건설업 지수 65% 상승에도…중대재해, 분양 부진이 발목"
주식시장에서는 건설업 지수가 올해 들어 65% 상승하며 코스피 전체를 크게 웃돌았다. 9월에도 건설사들이 정비사업 중심으로 수주를 이어가겠지만, 신규 분양 부진과 안전 규제 강화가 겹치면서 업황 개선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송유림 한화증권 연구원은 "건설업은 여전히 긍정적 투자의견을 유지할 수 있는 업종이지만 단기 투자 매력은 제한적"이라며 "재개발·재건축 호조에도 중대재해 리스크와 분양시장 침체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국내에서는 안전관리 능력과 정비사업 수주 역량을 동시에 갖춘 업체가 투자 매력을 가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