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항에 쌓여 있는 컨테이너와 세워져 있는 수출용 자동차 모습 (사진=연합뉴스)
■ 철강·화학·차·전력업계 ‘이중고’…부품·기계까지 줄줄이 타격
트럼프의 상호관세부터 유럽의 탄소 국경세, 공급망 실사까지. 한국 제조업이 복합규제의 파고에 휘말렸다. 미국은 가격경쟁력을 흔들고, 유럽은 비용구조를 뒤흔든다. 특히 철강·화학·자동차·이차전지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과 글로벌 공급망을 가진 수출업체의 부담이 크다.
문제는 이 흐름이 일시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유럽연합(EU)은 최근 ‘옴니버스 패키지’를 통해 기후 제재의 일부를 유예하며 숨 고르기에 들어갔지만, 방향 자체를 되돌리지는 않았다. 산업이 ‘환경·사회 대응 능력’이 경쟁력의 필수 요건이 되는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
철강과 자동차는 이미 영향권에 들어왔다. 철강은 지난해 대미 수출이 17억 달러를 기록했지만, 올 상반기 11.7% 줄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는 올해 자동차 수출이 265만 대로 전년 대비 4.8%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자동차·철강의 관세 충격은 2차 피해를 낳는다. 자동차 부품(2만여 협력사)과 일반기계도 줄줄이 수출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 석유화학 ‘풍선효과’에 정밀 가격 규제 등장···전력업계도 피해 확산
석유화학 업계는 상황이 더 복잡하다. 관세 외에도 개별 품목의 정밀 가격 규제가 등장하며 압박이 2배로 늘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2025년 6월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석유제품 수출은 18.8% 줄며 주력 품목 중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석유화학은 11.4% 감소했다. 관세 정책에 따라 중국산 제품이 미국 시장에서 빠지면 아시아권으로 물량이 몰려와 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LG화학 기초소재부문 등 석유화학 업계의 어려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2026년부터 본격 시행된다. EU로 수출되는 철강·알루미늄·전력·화학 제품에 탄소 배출량에 따라 비용이 부과된다. 포스코·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사들은 열연·후판·스테인리스 등 고부가 전략품목에서 타격이 불가피하다.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량을 감안하면, 수익성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알루미늄 업계의 상황도 비슷하다. 알루미늄은 전력 사용량이 많아 탄소배출량이 크다.
석유화학은 아직 CBAM 직접 적용 품목은 아니지만, EU는 에틸렌·암모니아 등 탄소집약 화학제품까지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 전력업계도 간접적 영향을 받는다. 한국은 LNG 발전 의존도가 높아 제조업의 전력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국내 발전사들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전기요금 상승이 불가피하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6월 2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상무부 회의실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왼쪽부터),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 ESG 공시·공급망 실사…車·이차전지·조선·바이오 ‘새 숙제’
EU의 옴니버스 패키지에는 아직 보고를 시작하지 않은 회사에 대한 CSRD(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지침) 적용을 2년 연기했지만 이는 속도 조절에 불과하다. CSRD는 제조·에너지·금융·IT·유통·건설 등 전 산업에 걸쳐 ESG 정보를 공시하도록 요구한다. 특히 대기업뿐 아니라 공급망 내 중소 협력사까지도 관련 데이터를 관리해야 한다. CSDDD는 공급망 실사 의무를 부과한다. 자동차·이차전지·조선·바이오의약품 산업이 주 타깃이다.
정부와 업계는 일제히 대응 전략을 세우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7월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자동차·철강·2차전지·화학·조선 분야의 관세와 ESG 규제 대응책을 논의했다. 한미 간 관세협상도 진행 중이지만, 성과를 장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이 대응 전략을 정교화할 적기”라고 강조한다. 재생에너지 전환, 탄소 감축, 공급망 실사 시스템 구축이 늦어지면 2026년 이후에는 대응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