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천NCC정문 (사진=여천NCC)

■ 여천NCC, 부도 위기 직면…한화·DL 대립 속 자금난 심화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의 여천NCC가 부도 위기에 몰리면서 국내 석유화학 산업 전반에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여천NCC는 오는 21일까지 3000억원 이상의 부족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면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질 위기다. 설비 경쟁력 약화, 중국발 덤핑 압박, 글로벌 수요 둔화가 맞물리면서 산업 구조 재편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한화그룹과 DL그룹의 합작사인 여천NCC는 지난 8일부터 여수 3공장 가동을 멈춘 상태다. 지난해 236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올해 3월 양 대주주가 각각 1000억원씩 긴급 출자했지만 추가 자금 투입이 불가피하다. 한화솔루션은 최근 이사회에서 여천NCC에 1500억원을 대여하기로 결정하며 지원 의지를 보였으나, DL그룹은 경영 실태를 면밀히 점검한 후 추가 지원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신중론을 유지하고 있다.

설비 과잉과 중국발 덤핑, 원가 경쟁력 하락이 겹친 상황에서 단기 자금 수혈만으로는 근본적인 구조 문제 해결이 어렵다.

■ 국내 석유화학사 줄줄이 적자…구조조정 없인 생존 어려워

올해 2분기 주요 석유화학사들의 실적은 더욱 악화됐다. 롯데케미칼 기초화학 부문은 2161억원, LG화학 석유화학 부문은 904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도 468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금호석유화학만 흑자를 유지했으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5.3% 급감했다. 이에 따라 가동 중단, 비주력 사업 매각, 생산 전환 등 ‘생존 총력전’이 벌어지고 있다.

대외 환경도 녹록지 않다. 미국은 지난 1일부터 한국 등 14개국 석유화학 제품에 25% 상호 관세를 부과하며 수출 가격 경쟁력을 더욱 떨어뜨렸다. 공급 과잉이 심화된 상황에서 관세 부담은 수익성 악화의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 BCG “3년 내 절반만 살아남는다”…설비 24% 감축 권고

최근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정부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여수산단 내 생산시설을 24% 줄여야 한다고 권고했다. 재무 상태가 악화된 국내 석화 기업 중 절반만 3년 내 생존할 수 있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여수에는 여천NCC(연산 228만t), LG화학(200만t), 롯데케미칼(123만t), GS칼텍스(90만t) 등 총 7개 에틸렌 공장이 가동 중인데, BCG 권고대로라면 2~3개 공장의 폐쇄가 불가피하다. 울산과 대산 단지 역시 비슷한 수준의 설비 감축이 요구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를 단순한 업황 하락기로 보지 않는다. 중국의 대규모 설비 증설과 가격 덤핑, 글로벌 수요 둔화, 경쟁국의 원가 절감 전략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한국 석유화학의 경쟁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석화업계는 여수·대산·울산 등 주요 단지를 중심으로 설비 통합과 라인 최적화 논의를 진행 중이다. 특정 제품 생산을 일부 기업에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경쟁력 강화를 모색하지만, 기업별 이해관계가 얽혀 합의 도출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 업계, 설비 통합·라인 최적화 추진…정부 역할 ‘시급’

자구책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해 선제적 구조 재편 타이밍을 놓치면 산업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말 ‘석유화학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하며 기업들의 자율적 재편을 촉진하겠다고 밝혔으나 후속 지원책은 빨라야 이달 중 발표될 전망이다.

석유화학 산업계와 정부는 구조 재편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누가, 언제, 어떻게’ 실행할지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