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 주주구성(2024년말 기준)>
2025년 삼성화재의 자사주 소각으로 삼성생명의 삼성화재 지분이 14.98%에서 15.43%로 상승해 보험업법상 자회사로 편입했다. 삼성화재의 자사주 소각이 끝나는 2028년 4월말 삼성생명의 단독 지분율은 16.93%로 증가하고, 삼성생명 및 특수관계자의 합계지분율은 최종 20.91%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자료=국회 삼성생명 긴급토론회 자료집)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카드 등 삼성그룹 금융회사 인사의 경우 삼성전자 사업지원TF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영향력으로 따지면 삼성생명이 삼성화재를 지분법 처리할 게 아니라) 삼성전자 보고 지분법을 하라고 해야죠.”

이는 지난 18일 국회서 열린 ‘삼성생명 회계처리 논란 어떻게 풀 것인가’ 긴급토론회에서 토론자로 나선 김호중 건국대 교수의 발언입니다. 삼성생명이 삼성화재에 ‘유의미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니 지분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일각(한국회계기준원, 시민단체 등)의 주장에 대해 김 교수가 반론 차원에서 제시한 논리인데요. 유의미한 영향력은 삼성생명이 아니라 삼성전자가 행사하고 있으니 영향력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가 지분법을 적용하는 게 맞는데, 지분은 오히려 삼성화재가 삼성전자 지분을 갖고 있으니 제 3자가 왈가왈부 할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얼핏 들으면 말이 되는 것 같지만 사실 이는 논점 일탈의 오류에 가깝습니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얘기를 하고 있는데 엉뚱하게 삼성전자 이야기를 끌고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를 끌고 들어오면 이야기가 좀 다르게 전개돼야 합니다.

-삼성화재에 대한 영향력은 삼성전자가 행사한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삼성화재 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

-지분이 없는 삼성전자가 삼성화재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것은 한국만의 독특한 재벌 중심 경제구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계열사 이사회의 독립성이 보장돼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룹 총수 및 컨트롤타워(사업지원TF)가 주요 현안의 의사결정 주체다.

-재벌 중심 경제구조는 한국 자본시장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한국회계기준원(KAI)은 지난 7월 삼성생명의 자회사(삼성화재) 지분법 적용 이슈를 공식 제기했습니다. KAI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이사회가 독립돼 있다는 전제 하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런데 ‘지분도 없는 삼성전자가 삼성생명, 삼성화재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잖아’라고 말하면 이는 두 회사의 이사회가 허수아비란 것을 전제로 토론을 하자는 말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건 완전히 차원이 다른 얘기죠.

■ "삼성화재는 삼성전자가 지배하는 거 몰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교수의 발언을 흘려듣긴 어렵습니다. 삼성그룹은 극구 부인하겠지만, 실질적으로는 팩트에 가까우니까요. 삼성그룹은 고 이병철 창업주 시절부터 줄곧 비서실(구조조정본부-전략기획실-미래전략실-사업지원TF)이 그룹 전체를 총괄해 왔습니다. 창업주는 1985년 탈고한 자서전에서 “기획, 조사, 인사, 재무, 감사 등 오늘날 삼성 비서실의 기능들은 1950년대 후반부터 자리잡혀 온 삼성 고유의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많은 계열사들을 효율적으로 통괄(統括)하기 위해 도입한, 삼성만의 혁신적인 경영기법이라는 설명입니다.

비서실의 통괄은 금융 계열사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삼성그룹 비서실은 구조본 시절이던 2004년 금융경쟁력 강화를 위해 금융일류화추진팀을 TF로 발족시켰습니다. 미래전략실로 이름을 바꾼 2015년 금융일류화추진팀은 기획팀, 전략팀, 법무팀, 인사지원팀, 경영진단팀, 커뮤니케이션팀과 함께 TF에서 정식 팀으로 승격합니다. 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연계한 금융지주회사 전환, 금융계열사의 자본확충 계획 등 굵직한 현안들을 다뤘습니다. 하지만 2016년 국정농단 사태가 터져 미전실이 해체되면서 금융일류화추진팀도 짧은 역사를 마감합니다. 대신 삼성생명 산하에 새롭게 ‘금융경쟁력 제고 TF’가 신설됩니다. 전자TF, 비전자TF와 함께 삼성그룹의 3대 TF 중 하나입니다. TF장을 비롯해 구성원들은 옛 미전실 금융일류화추진팀 소속 인사들로 채워졌습니다. 사실상 금융일류화추진팀의 부활이었고, 금융계열사 고위급 인사에서 최근까지도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해 왔습니다.

현재 삼성생명 회계처리 논란에서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삼성생명의 ‘유의미한 영향력’ 행사 여부입니다. 김호중 교수의 발언처럼 삼성그룹에서 ‘유의미한 영향력’은 삼성전자 사업지원TF가 행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계열사 이사회의 독립이 보장돼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삼성그룹 금융계열사에서 유의미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곳은 ‘금융경쟁력 제고 TF’입니다. 그리고 ‘금융경쟁력 제고 TF’는 과거 금융일류화추진팀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 형식과 실질, 이론과 실제...극복하기 힘든 '간격'

형식과 실질로 보면 이러한데, 이론과 실제로 보면 또 다른 그림이 그려집니다. 이론적으로는 다음 중 하나만 해당해도 ‘유의적인 영향력’을 보유한 것으로 K-IFRS에서는 규정하고 있습니다.

①피투자자의 이사회나 이에 준하는 의사결정기구에 참여

②배당이나 다른 분배에 관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을 포함하여 정책결정과정에 참여

③기업과 피투자자 사이의 중요한 거래

④경영진의 상호 교류

⑤필수적 기술정보의 제공

지분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쪽에서는 ②와 ⑤의 경우 다툼의 여지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③과 ④는 확실히 삼성생명에 해당하는 조항이라고 주장합니다. 금융경쟁력 제고 TF의 존재, 금융계열사 공동 투자로 진행되는 모니모, 금융계열사 간 임원진 회전문 인사 등을 고려하면 영향력을 부정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하지만 삼성생명은 ③과 ④ 또한 ‘유의적인 영향력’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모니모는 삼성카드가 주도하는 프로젝트고, 경영진의 상호 교류 또한 퇴직 후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지분법을 적용해 오지 않았는데 법을 지키기 위해 기계적으로 지분이 조금 늘어났다고 해서 갑자기 지분법을 적용하는 것은 회계의 일관성을 해치는 나쁜 선택지라고 강조합니다. 이론적으로는 어떨지 모르나 실제로는 달라진 게 아무 것도 없다는 항변입니다.

KAI가 재무회계 전공 교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60.8%가 지분법 처리가 바람직하다고 응답했습니다. 다만, 회계정책이 다수결로 결정할 사안은 아니기에 여론몰이로 지분법을 강제하는 것도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당사자(삼성생명)가 ‘유의미한 영향력이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고, 다툼의 여지가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 중요한 것은 '방향성'...어느 쪽으로 가고 있나

다만 형식과 실질, 이론과 실제가 혼재하더라도 방향성만은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하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해부터 범정부적으로 자본시장 선진화를 외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청산을 부르짖는 새 정부가 ‘밸류업 정책’만은 승계를 넘어 심화·발전시키겠다는 목표까지 제시했습니다. 집권 여당 또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외치며 ‘코스피5000특별위원회’를 발족시킵니다.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를 외면하고, 국내 투자자들조차 국장 탈출의 핵심 이유로 재벌의 황제경영을 지목해 왔습니다. 이제는 바꿔야 할 때라며 상장사들 역시 저마다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하며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 과연 삼성생명의 보험계약자 권익 무시가 바람직한 방향인 것인지 시민사회는 묻고 있습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1992년까지 유배당 상품만 팔던 국내 보험사들이 이후 무배당 상품만 판 배경에는 ‘상장 이슈’가 있었습니다. 1990년대 일본의 보험사들은 기업공개를 하면서 유배당 계약자들에게 주식을 지급했습니다. 유배당 고객을 주주로 인정하며 상장 차익을 나눈 것이죠. 그런데 계약자의 기여도에 따라 주식을 차등 지급하는 바람에 소송이 난무했다고 합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상장 예정 국내 보험사들은 ‘무배당 보험’으로 상품 판매 전략을 180도 수정합니다. 조합(Mutual) 형태가 다수인 외국과 달리 국내 보험회사들은 주식회사로 애초부터 출발했기에 배당만 안 하면 상장 차익을 나누지 않아도 된다는 계산 하에 진행된 일이라고 합니다.

무배당 상품만 팔기로 전략을 수정한 이후 삼성생명은 유배당 계약자에게 약속한 확정금리만 지급했습니다. 보험계약자의 보험료로 삼성전자와 삼성화재 주식을 사들여 큰 수익을 거뒀지만 미실현 이익이라는 이유로 단 한 번도 배당을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그 세월이 무려 50년입니다.

삼성생명의 자본금은 1000억원에 불과합니다. 300조원이 넘는 삼성생명의 자산은 보험계약자들의 보험료로 불어났습니다. 삼성생명이 계약자들에게 지급하는 각종 보험금도 회삿돈이 아닙니다. 계원들의 곗돈을 계주가 관리하듯, 계약자들의 보험료를 회사가 대신 관리해 주는 겁니다. 사업비부터 보험금까지 회사의 모든 지출과 비용은 보험 계약자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입니다. 그렇게 성장한 회사가 고객과 이익을 나누는 것에는 아주 인색합니다. 계약자나 주주가 아닌, 지배주주의 이익을 가장 우선시해왔기 때문입니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매입은 1970년대에 모두 완료됐습니다. 1970년대 유배당 보험계약자들의 주 연령대를 40~50대로 보면 50년이 지난 현재는 거의 다 사망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삼성생명에서는 “70년대 보험계약자들의 보험료로 삼성전자 주식을 매입했는데, 배당금을 80년대 이후 유배당 계약자들이 타가는 게 적절한가”라는 문제 제기도 사석에서 제기하더군요. 이는 금융회사의 기본인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런 식이면 내가 낸 보험료를 남에게 주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습니다. 보험업의 기본은 상부상조입니다. 나는 보험금을 못 받아도 누군가 더 힘든 사람이 받을 수 있다면 보험의 기본 정신이자 서비스인 상부상조가 실현된 것입니다. 그 누군가가 내가 될 수도 있기에 우리는 보험에 가입합니다.

SK, 현대 등 ‘재벌’ 타이틀을 달고 있는 많은 상장사들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자발적으로, 선제적으로 ESG에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초일류 기업을 지향하는 삼성그룹도 당연히 과거가 아닌, 미래의 방향으로 노를 저을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