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300여 명의 한국인 노동자가 이민 당국의 단속에 적발돼 체포·구금되자 국내 협력사들이 ‘패닉’에 빠졌다. 이번에 체포된 300여명 중 대다수인 250명은 HL-GA 배터리회사 관련 설비 협력사 소속 인원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대부분 전자여행허가인 ESTA 비자나 단기 상용(B-1) 비자로 미국에 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 LG 등 한국 대기업들의 해외 공장 건설에 여러 차례 참여했던 한 협력사의 대표는 “협력사들은 영세한 곳이 많은데, 이번 일로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며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 과거에도 단속이 되었던 사례가 있었나
- 다른 나라에서 소규모로 적발되는 경우는 한번씩 있었다. 그러면 벌금을 내고 그 나라에서 추방을 당한다. 이렇게 수백명이 한꺼번에 문제가 된 적은 미국이 처음이다. 지금은 어떻게 해서든 구금된 사람들을 빼내서 귀국을 시키는게 우선이다. 나중에는 협력사들의 피해가 눈에 보일 것이다.
▶ 협력사들은 어떤 피해를 입게 되나
- 계약마다 다르지만 통상 30%를 계약금으로 받고, 나머지는 공사가 완료돼야 받게 된다. 이번 건은 공사가 완료되지 않고 귀국하기에, 당연히 현대차나 LG에너지솔루션에서 잔금을 줄 리가 없다. 영세한 곳이 많아서 이런 일이 한 번 벌어지면 손해가 심각하다.
직원들이 감옥에 있어도 체류 비용은 다 들어간다. 직원들의 일당, 차량 렌트비, 숙소비…. 모든 비용은 협력사들이 다 부담해야 한다. 직원들의 트라우마도 남는다. 남의 나라에 일하러 가서 범죄자 취급 받고 감옥 가고…. 이 난리가 났는데 누가 또 출장 가려고 하겠나.
▶ 협력사를 바꿀 가능성도 있나
- A사가 하던 일을 B사가 받아서 이어 하기는 힘들다. 계약도 너무 복잡해진다. 그리고 이 난리가 난 것을 보고도 그걸 하겠다는 업체를 찾기도 힘들 것이다. 결국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하고서도, 다시 사람을 보내서 공사를 어떻게든 마무리 지으려 할 것이다. 그래야만 잔금을 받을 수 있으니까. 만약 지금 미국으로 보낸 팀이 해당 업체에서 그 공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팀이라면, 사람을 다시 구해야 할 수 있다. 상당히 힘든 상황이 예상된다.
▶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서도 비자 문제는 비슷한가
- 전 세계 어디에서나 관광 비자로 가서 일을 하면 불법인 것은 맞다. 그래서 이번에 단속을 한 것 자체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 다만 암묵적으로 눈감아 주는 것은 있었다. 글로벌적으로 상용 비자는 받기가 너무 힘들다. 그 나라에서 1~2달만 체류해서 일할 수 있게 해주는 비자가 거의 없다. 그래서 엔지니어들은 주로 관광비자나 기술지원 비자 같은 것을 받아간다. 기술지원 비자도 교육과 미팅을 하기 위한 것이지 직접 일을 하면 불법이다. 하지만 해외에 나가 보면 한국인들은 다 일을 한다.
폴란드에서 LG에너지솔루션 공장 첫 삽 뜰 때부터 지켜봤는데, 그때는 공장을 빨리 짓겠다고 한국에서 건설 인력까지 대규모로 모아서 갔었다. 공장 규모도 어마어마하게 지었다. 그걸 폴란드에서는 몰랐을까. 알고도 묵인해 주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공장을 다 짓고 떠난 뒤에는, 자기 나라에 더 이득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을 하러 들어간 기술자들이라, 특별히 범죄 같은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는다.
해외에서 냉장고나 세탁기 생산 라인 하나를 깔면, 한국에서 장비 쪽 인원만 150~200명이 가야 한다. 그러면 우리에게 현지 도비업체를 붙여준다. 단순 작업은 현지인들에게 시키고, 우리는 더 중요하고 세심한 작업들을 진행한다. 그렇게 빠르게 공장을 완성하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한국인들은 다 그렇게 일을 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일하고 있다.
▶ 지금도 미국에서 같은 비자로 일하는 한국인들이 있지 않나
- 맞다. 트럼프 당선 이후에 한국 엔지니어들이 미국으로 출장을 많이 갔다. 그 사람들 중에 상용 비자 받아 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나. 그 사람들도 지금 미국에서 당장 단속하면 다 잡혀가고 추방 당한다.
미국으로 출장 가는 한국 엔지니어들은 공구를 들고 가지 않는다. 공항에서 걸리기 때문에. 공구를 현지 마트에서 다 사서 들어간다. 그렇게 해도 미국에 너무 자주 와서 수상하다며 입국이 거부되는 경우도 있다. 아마 이번 일로 미국에서 짐 싸는 한국인들 많을 것이다. 무서워서 일을 하겠나.
▶ 합법적이지 않은 비자로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 미국 정부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미국 현지인들을 고용해 공장을 짓길 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지 인력만으로 그 나라에 공장을 짓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현지 셋업 비용이나 기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결국 한국인들이 현지에 직접 가서 공장을 지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이 정도로 숙련된 기술자들이 많은 나라가 거의 없다. 미국만 해도 그런 엔지니어들이 많지 않다. 한국은 예전부터 공장을 많이 지어봤기 때문에, 우수한 엔지니어들이 많다. 그게 우리나라 경쟁력인데, 이번에 발목을 잡힌 것이다.
▶ 앞으로 협력사들의 상황은 어떻게 될까
- 주변에 당장 다음달 미국 출장이 잡혀있는 협력사들이 있다. 물어봤더니 아직 출장이 취소되지는 않았다고 들었다. 하지만 어떤 일이 닥칠지 몰라 불안해 하는 상황이다. 삼성, LG, SK하이닉스 등 다른 대기업들도 계속 미국에 공장을 짓고 있거나 지을 계획인데, 이렇게 단속을 해버리면 앞으로 공사를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우는 정책 두 가지, 미국에 투자하라는 것과 불법 체류자 잡겠다는 것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 미국이 한국의 투자를 유치하려면, 한국인들이 미국에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더 많은 취업 비자를 허용해줘야 한다. 다행히 트럼프 대통령이 비자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은 어느정도 있는 것 같다.
출장을 가는 현장 작업자들은 비자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렇기에 대기업에서 협력사들에게 어떤 비자를 받아와라, 그거 받아오지 않으면 우리 공장 출입 불가능하다, 이렇게 명확한 가이드를 주고 비자를 발급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하지만 미국 같은 경우는 제도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답이 없는 상황이긴 하다. 내가 볼 때 이번에 간 협력사들은 100% 손해를 보게 돼 있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협력사 몇 개가 망해도 상관없을 수 있겠지만, 작은 업체들의 손해는 심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