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셀스)
스타트업 대표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의 전략적 투자, 혹은 오픈이노베이션이 성사될 때 발생할 ‘시너지’에 커다란 기대를 품는 경우를 자주 본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큰 기업과 협업하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지고, 전략적 가치와 시장 기회를 함께 열어줄 것이라 기대하기 쉽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스타트업과 대·중견기업 간 협업에서 기대만큼의 시너지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 몇 가지 구조적 이유를 소개한다.
1. 투자부서와 사업부서의 이해관계 충돌
투자 부서가 “투자 후 사업부와 협업을 주선해주겠다”고 약속한다 해도, 실제 성과로 연결되는 경우는 드물다. 전사 차원에서 협업 시스템이나 명확한 KPI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사업부 입장에서 스타트업과의 협업은 ‘추가 업무’에 불과하다.
사업부 직원들은 이미 본업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많고, 스타트업의 작은 물량이나 검증되지 않은 서비스는 KPI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싸게, 혹은 무료로 해달라”는 요구까지 겹치면 적극적으로 참여할 유인이 거의 없다.
스타트업 측에서 “주주라면 투자기업의 가치를 높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해도 사업부는 “투자도 했는데, POC 테스트도 해달라고 하고, 검증되지 않은 제품을 사용하는 리스크까지 우리 부서가 부담해야 한다면 남는 게 없다”고 반박한다. 이러한 이견은 결국 임원급에서 명확한 지침이 내려오지 않는 한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2. 산업을 잘 아는 만큼 더 보수적이다
스타트업은 업의 연관성이 깊은 대기업에게서 투자를 받고 협업까지 이어가고 싶어한다. 핀테크 스타트업이라면 금융사 CVC, 콘테크·프롭테크 스타트업이라면 건설사 투자팀을 자연스레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업계 경험이 많은 기업일수록 내부 검증 과정이 훨씬 까다롭다. 그들은 보통 사업부의 긍정적 의견이 없으면 투자부터 쉽지 않다. 사업부 담당자가 “나는 안 쓸 것 같다”고 한 마디만 해도 “쓸모 없는 서비스”라는 분위기로 굳어져 버린다. 상대적으로 산업 경험이 부족한 심사역이 이런 분위기를 뒤집는 것은 극도로 어려운 일이다.
또 시장의 규모에 대해 지나치게 현실적인 시각을 지닌 경우도 많다. “시장 규모가 작으니 수익이 나오지 않는다”거나, “우리가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수지가 안 맞으니 안 하는 것이다”라는 식이다. 기득권을 가진 큰 규모의 기업일수록 소규모 시장에서 도전하는 스타트업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3. 시너지가 성립되기 어려운 구조적 이유
이쯤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이런 일이 단순히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무시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일까? 필자의 결론은 조금 다르다. ‘기업 간 시너지’라는 개념 자체가 현실에서 성립하기 어려운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사례를 보자. 한 대기업 그룹사 내에서 제조사인 B사는 독일에 자체 창고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같은 그룹의 상사인 C사에게 물류를 맡기고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C사 신입사원이 선배에게 물었다.
신입사원 : “B사도 창고 있고 물류 부서도 있잖아요? 왜 굳이 우리 회사에 돈을 주고 맡기나요?”
선배 : “B사 내부 부서끼리 거래하면 마진율이 3%야. 그런데 우리를 쓰면 우리가 1.5%에 해 주니까 그게 사업부 입장에선 유리한 거지.”
B사 전체로 보면 손해지만 개별 사업부는 사업부의 이익을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업부 이익으로 평가받고, 성과급이 지급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룹 간, 심지어 같은 회사 내부에서도 시너지는 사라지고 개별 이해가 충돌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4. 결국 ‘각자의 이익’이 우선
시너지가 실패하는 진짜 이유는 단순하다. 모든 경제 주체가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시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이익을 희생하면서 상호 호혜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경우는, 양쪽 모두 여유가 있을 때 뿐이다.
예컨대 앞서 언급한 제조사 B사가 이미 목표한 영업이익을 초과 달성하고 있던 상황이라면, 굳이 1~2% 비용 절감을 위해 C상사에 외주를 주는 선택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즉 여유가 있을 때야 ‘전사적 윈윈’이라는 구도가 가능한 것이다. 작은 숫자 하나가 아쉬운 현실에서 시너지는 환상이 된다.
스타트업은 자원과 힘이 부족하다 보니 대기업, 중견기업의 협업 제안에 의존적으로 변하기 쉽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어떤 기업도 자기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스타트업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대기업의 협업 제안,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 심지어 투자는 모두 그들 역시 “얻는 게 있으니까” 들어온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기업과의 협업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다만 스타트업들이 대기업·중견기업에게 투자만 받으면 그들이 우리를 위해 무언가 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 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 이해관계의 합치 지점을 찾아내 전략적으로 협업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함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진짜 협업은 ‘이상적인 시너지’가 아니라, ‘서로의 필요가 맞아떨어진 현실적 거래’에서 시작된다. 스타트업이 이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준비할 때, 대기업과의 시너지는 환상을 넘어 진짜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유지윤 팀장은 현재 벤처투자회사(VC) 라이징에스벤처스에서 투자심사역으로 재직 중이다.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 및 동 대학원 글로벌경영학 석사(MBA)를 마쳤다. LG상사(現 LX인터내셔널) 금융팀과 기획팀을 거쳐, 게임 개발 스타트업 플라이셔에서 사업팀장을 역임했다. 이후 벤처캐피탈리스트로 커리어를 전환, 현재 기술 기반 초기창업기업 전문 VC인 라이징에스벤처스에서 다수의 벤처투자조합을 운용하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