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셀스)
최근 새 정부의 스타트업 육성 정책과 글로벌 금리 인하 기조가 맞물리면서 국내 벤처투자 시장에도 회복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코로나 시기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미국 금리 인상과 우리나라 거래소의 상장 기준 강화 등이 한동안 시장을 얼어붙게 했지만, 이제는 긴 겨울의 끝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
벤처투자시장의 혹한기 동안 창업 유관 기관 담당자들과 현장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요즘 VC들이 선호하는 사업 아이템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과 함께, 반대로 “VC들이 기피하는 사업 아이템도 따로 있나요?”라는 물음을 자주 듣곤 했다.
VC가 선호하는 사업은 대개 수익성과 성장성이 높은 분야로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반면, VC가 기피하는 사업은 투자자마다 다소 견해가 다를 수 있다. 필자가 많은 기업을 검토하며 느꼈던 개인적인 기준은 ‘인간의 본성에 역행하는 사업’에는 투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1) 결과 없는 노력이 지속될 수 없는 이유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부하기보다 놀기를 좋아한다.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공부’에 돈을 쓰는 동기는 공부 자체의 즐거움이 아니라, 점수 향상이나 취업 성공처럼 분명한 외적 보상이 따라오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토익이나 수능 등 목표가 뚜렷한 교육은 꾸준한 매출을 낼 수 있지만, 자기개발·취미·교양을 타깃으로 한 교육사업은 객관적 보상 자체가 불명확하다. 이 때문에 수강생의 중도 이탈이 많고, 장기적인 고객 충성도를 확보하기 어렵다. 결국 ‘절박함’을 자극하지 못하는 취미·교양 분야의 교육사업은 VC의 투자 대상으로서는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2) 노력과 불편함을 소비자에게 강요하는 사업의 한계
사람들은 불편을 꺼리고, 노력 대신 손쉬운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실제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더라도 다이어트 건강기능식품이 수백억대 매출을 내는 것은 ‘쉽게 결과만 얻고 싶어 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반면, ‘맛이 없어도 건강을 위해 먹어야 한다’며 소비자에게 불편을 강요하는 대체식품 업체들은 시장에서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다. 대체육에 대한 기대도 컸으나, 제품의 맛이 보편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자 대중적 성공에 이르지 못했다. 본성과 반대되는 선택을 대중에게 강요하는 사업은 구조적으로 지속가능성이 낮다.
3) 사회적 가치가 사업 성공의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소비자가 사회적 가치에 공감하는 현상은 점점 강해지고 있지만, 이는 내가 불편하지 않을 때만 해당된다. 대표적으로 친환경 소재와 윤리적 가치만 강조한 올버즈의 사례는, 내구성과 품질이 따라오지 못해 소비자에게 외면 받고 급격한 하락세를 겪어야만 했다.
설문조사나 캠페인 결과와 달리, 실제 구매 행태에서는 가격, 편리함, 품질이 핵심 결정요소로 작용한다. 결국 사회적 가치만 내세워 경쟁력이나 실질적 소비자 혜택을 희생하는 브랜드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물론 자기절제, 노력을 실천하고 사회적 가치를 선택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설계할 수도 있다. 프리미엄 시장이나 특정 니치 분야에서는 분명 기회가 존재한다.
그러나 벤처캐피탈 본연의 역할은 출자자들의 자금을 기한 내 실질적으로 불려줄 책임에 있다. 시장 다수의 본성을 외면하면 투자자들에게 증명할 만한 성장성과 수익성을 담보하기 힘들다.
VC는 음반 판매량을 지표로 삼는 대중음악산업처럼, 대중적인 성공을 목표로 한다. 일부 소수의 팬만 열광하는 음악은 섣불리 투자 대상으로 삼기 어렵다. 거대한 자본과 성장 속도가 요구되는 시장에서 본성에 순응하는 대중적 아이템, 넓은 확장성을 가진 사업에 집중하는 것이 업계의 생리이자 본질임을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 유지윤 팀장은 현재 벤처투자회사(VC) 라이징에스벤처스에서 투자심사역으로 재직 중이다.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 및 동 대학원 글로벌경영학 석사(MBA)를 마쳤다. LG상사(現 LX인터내셔널) 금융팀과 기획팀을 거쳐, 게임 개발 스타트업 플라이셔에서 사업팀장을 역임했다. 이후 벤처캐피탈리스트로 커리어를 전환, 현재 기술 기반 초기창업기업 전문 VC인 라이징에스벤처스에서 다수의 벤처투자조합을 운용하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