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꽤 재미있게 보던 만화가 있었다. 주인공이 여러 등장인물과 얽히면서 잃어버린 자신의 과거를 조금씩 찾아가는 과정이 이 만화의 주요 내용이었다. 문제는 작가가 이야기를 지나치게 장황하게 펼쳐나가면서 스스로 던진 떡밥을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은 어느 날 특별한 ‘반지’를 발견한다. 만화는 어머니가 주인공에게 반지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는 장면을 성의있게 그린다. 마치 반지와 기억 속 ‘어머니의 말’이 조금씩 잃어버린 과거의 퍼즐을 완성할 것처럼. 그러나 만화를 끝까지 봐도 ‘반지’가 당최 이야기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다. 과거의 비밀은 ‘반지’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다른 기억에서 실마리가 풀리며 만화는 끝난다.

맥거핀이 아니라 작가가 스스로 펼쳐놓은 다른 이야기들을 정리하면서 ‘반지와 어머니의 관계’는 깜빡한 것이다. 나는 이 황당한 만화 경험을 친구에게 말한 적이 있다. 친구는 내 사소한 불만에 한심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야, 만화잖아...”

간편한 그 말에 나는 벙찐 채 ‘만화면 그래도 되는 건가...?’ 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친구의 말이 옳다. 만화는 만화일 뿐이고 그 작은 황당함이 큰 해악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내게는 그 작가의 실수가 오랜 세월 약간의 스트레스로 남아있다. 아니 돌이켜보면 작가의 실수보다는 “야, 만화잖아...” 라는 그 친구의 말이 스트레스의 수원지인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나 역시 ‘그럴 수 있지...’ 라며 넘어갔을 문제를 누군가 나서서 ‘만화는 그래도 돼!’ 라며 공식적인 면죄부를 준 듯한 느낌이다. ‘그럴 수도 있다’ 와 ‘그래도 돼!’는 이토록 큰 차이가 있다.

살다 보면 이상하게도 적정량의 스트레스가 필요할 때가 있다. 정신에 달라붙어 있는 사소한 의문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칸막이로 막힌 독서실 책상처럼 묘한 아늑함과 동시에 문제의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집중력을 가져다준다.

그 느낌이 필요할 때 나는 SNS나 유튜브의 댓글을 본다. 댓글을 읽기 시작하면 거의 3분 안에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 ‘찰리커크’ 사망 관련 기사 및 콘텐츠에는 ‘추모 의사를 밝힌 국내 연예인이 누구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트렌스젠더 연예인의 재치와 활약상을 다룬 기사 밑에는 “이런 기사 때문에 이 나라의 아이들이 전부 성소수자가 되면 책임질거냐?”는 입이 떡 벌어지는 항의를 보게 된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모든 종류의 읽을거리에는 “싫으면 북한으로 가서 살아라!”라는 뭇매질을 볼 수 있다.

요컨대, 내가 댓글 감상으로 얻는 스트레스의 핵심 요인은 “복잡하게 생각하기 싫다”는 이들에게서 온다.

그저 여당을 비판하면, ‘야당 지지자’
사회의 모순을 얘기하면, ‘사회 부적응자’
트렌스젠더의 능력을 칭찬하면, ‘동성애 찬성론자’로 여기겠다는 선언.

그 선언 하에 이루어지는 모든 단순화된 말들이 내 신경을 긁는다. 20년 전 내가 들었던 “야, 만화잖아...” 만큼이나 쉽고 간편한, 그래서 스트레스를 주는 발상이다.

<군대의 폐쇄성이 논해지면, 조직의 악습을 살펴보는 게 지당한데 ‘군인을 혐오하지 말라’고 한다. 내부의 고름이 밖으로 튀어나왔으니 문제를 삼는 건데 고름에도 다 이유가 있다는 식의 ‘외부인 간섭 금지’이론은 곳곳에 부유한다. 학교의 학력주의 조장을 비판하면 ‘교사도 아니면서’라는 평가가 나오고 간호사의 태움 문화를 지적하니 ‘병원에서 일한 적도 없으면서’라는 짜증이 들리며 의사의 엘리트주의가 왜 문제인지를 논하니 ‘의대생처럼 공부해본 적 있느냐’는 괴상한 반론이 피어오른다. (중략) 불평등의 문제점을 아무리 말해도 ‘인류 역사는 언제나 불평등했다.’는 게으른 분석만이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여기는 납작한 논쟁의 나라니까.>_『납작한 말들』(2025) / 오찬호 / 어크로스

세상에는 내가 잘 모르는 무수한 분야가 있다. 다만 잘 모르는 분야라 해도, 특정 사안에 대한 내 의견은 있다. 사회학자인 오찬호 박사의 진단처럼, 물론 아주 납작하고 빈약한 의견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한 내 납작한 의견을 함부로 내뱉기 싫다. 빈약한 생각으로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길 원치 않으며 무엇보다 나라는 인간의 밑천이 모두 드러나니까.

잠깐, 그나저나
처음에 무슨 얘기를 하다가 여기까지 왔지...?
내가 던진 떡밥이 기억나지 않는다.

김선욱 레디투다이브 대표

■출판사에서 10년간 마케팅을 하며 <소행성책방>, <교양만두> 등의 채널을 통해 지식교양 콘텐츠를 만들어왔다. 현재 출판사 '레디투다이브'의 대표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