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이었다면 이 영화가 개봉할 수 있었을까”

개봉 7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승승장구한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하면서 이런 의문을 가져본다.

5·18민주화운동, 사전은 5·18민주화운동 배경에 대해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등장한 군사정권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의 사망과 함께 붕괴된다. 이를 틈타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의 집권이 가시화되었다. 민중운동 및 반(反)군부 세력들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신군부의 집권으로 인해 더욱 후퇴하고 억압될 것을 우려하여 이를 저지하기 위해 민주화운동을 시작하였다”고 정의한다.

즉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해 시작한 학생을 비롯한 시민들의 민주화운동은 폭도(영화에 의하면)들의 쿠데타로 규명돼 그토록 잔인한 탄압을 받은 것이다. 짓밟히다 못해 찢기고, 맞다 못해 터지던 다수가 무자비한 폭력보다 고통스러워 한 것은 왜곡이다. 영화에서는 석가탄신일을 하루 앞둔 순천 시민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광주 시민들의 고통에 이어 놓음으로써 당시 국가 지도부의 민낯을 드러낸다.

2000년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시민이라고 달랐을까. 지난해 겨울까지만 해도 ‘택시운전사’라는 영화는 개봉을 앞두고 제작자를 고심케 했을 것이다. 어쩌면 타의에 의해 좌절됐을 지도 모를 일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또 어땠을까.

표현의 자유는커녕, 민주주의를 외치는 목소리를 제거하려는 시도는 2010년대에도 여전했다. 이는 ‘문화계 블랙리스트’라는 비밀문서로 존재했다. 다수의 국민들이 모른 채 그들만의 영토 안에서 끊임없이 탄압을 받아왔던 ‘리스트’들은 정권이 바뀌고서야 제 목소리를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이름 모를 예술인은 “나 같은 사람도 블랙리스트로 수차례 언급됐다”며 허탈감을 드러냈다. 이것이 그 날의 광주와 다를 바 무엇일까.
   
평범한 소시민이 주인공을 자처할 수밖에 없었던 ‘택시운전사’의 시대와 다를 바 없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나가야 할 민주주의의 길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짐작할 만하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18일 전라남도 광주에서 벌어진 비극의 한 가운데로 들어간 작품이다. 그 동안 5‧18을 조명한 영화가 없지 않았으되 이처럼 광장 한 가운데에 용감하게 들어선 작품을 보지 못했다.

나와 내 가족의 안위가 무엇도 대신할 수 없었던 소시민, 그 평범한 ‘한 사람’을 그리되 그가 보이지 않는 영웅이 될 수밖에 없도록 등 떠민 것은 역사다. 

그 역사의 현장은 매년 기념식으로 끔찍했던 당시를 불러온다.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날 행사를 치르는 광주시청 앞 광장에 서 본 사람이라면, 그 장소가 주는 유난한 한(恨)을 몸소 느낄 수 있게 된다.

한(恨)은 바람을 타고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떠다닌다. 그리하여 2017년 8월 ‘택시운전사’는 이토록 뜨겁다.

평일 낮 시간 ‘택시운전사’를 관람하는 연령대를 보면 알 수 있다. 삼삼오오 손잡고 모여온, 족히 60대는 되어 보이는 주부들이 있는가 하면 딴딴한 체격에 다부져 보이는 70대 남성들도 적지 않다.

젊은이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멀티플렉스 극장에 중장년층을 끌어들이는 힘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송강호라는 배우의 걸출한 연기력을 품평하기 위함도 아니다. 오롯이 그 시대가, 역사가 전해준 한(恨)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이 영화를 “날조”로 치부한다. 물론 영화가 전체를 아우르며 ‘팩트체크’하지는 않았다. ‘팩트체크’의 역할은 뉴스가 하면 그만이다.

이를 두고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은 ‘날조’라고 반박했다. 지난 7일 “영화 ‘택시운전사’가 날조한 부분이 있다면 법적 대응하겠다”고 맞선 것이다. 우리가 여전히 1980년대를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한 마디가 아닐 수 없다. 날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