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 소녀시대, 레드벨벳, 빅뱅(사진=각 소속사)
50kg은 될까. 호리호리한 여자연예인이 기름진 음식을 먹으며 예쁘게 미소 짓고 있는 스토리는 CF의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그런데 과연 이들은 실생활에서도 이런 음식을 즐겨먹을까? 외관으로 봐선 아닐 것 같다. 이렇듯 스타 활용만을 목적에 둔 CF들이 방송을 통해 끊임없이 노출된다. 그럼에도 대중은 스타가 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심리에 ‘반(反)’하는 여론이 확대되고 있다. 아직은 소규모지만 점차 확대돼가고 있는 연예인 불매운동. 동전처럼 쉽게 뒤집히는 연예인에 대한 소비 욕구가 과연 대중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아봤다. -편집자주
[뷰어스=이건형 기자] TV를 틀었더니 CF가 나온다. 물만 마실 것 같은 마른 체구의 여배우가 치킨을 뜯고 있다. 이어진 광고에서도 연예인들이 빠짐없이 등장했다. 의구심이 들었다. 이 연예인이 과연 실제로 저 치킨을 즐겨먹으며, 자신이 모델인 1만원대의 화장품을 쓰고 있는지. 아니라는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이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 자신의 저칼로리 식단을 설명하거나 실제 사용 화장품 등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연예인이 실제로 쓰지도, 먹지도 않은 제품 등이 허다하지만 스타가 모델이 아닌 제품을 찾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토익 학원 광고에까지 등장한다. 이쯤 되면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물건의 기능보단 스타의 이미지를 앞세워 홍보 전략을 짜는 흐름이다. 이러한 흐름이 도가 지나치다 보니 도리어 역효과가 나기 시작했다. 작지만 천천히 연예인에 대한 불매운동 일어난 것이다.
최근 SNS인 인스타그램에서 연예인 불매운동 계정(@dis_celebrity)이 개설됐다. 해당 계정의 팔로우 수는 며칠이 안 돼 1400명이 넘었다. 연예인에게 반(反)하는 집단이 생긴 것이다. 이 계정에선 ‘연예인은 그런 거 안 써요’ ‘연예인 광고비=소비자 물가 상승’ ‘연예인, 인스타그램 협찬 포스팅 한 개에 1000만원. 월급쟁이 45%는 한 달에 200만원도 못 번다’ 등의 게시물로 가득하다.
해당 계정을 팔로잉하고 있는 회사원 김경일 씨(33.인천)는 “계정의 내용을 보며 많은 공감이 들었다. 밤새 일해도 인기 연예인의 수익을 따라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가끔 연예인들이 수억을 받고 CF를 찍었다는 말을 들으면 부러움과 동시에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나의 현실과 연예인의 삶을 자꾸 비교하게 됐다. 이렇게라도 뭔가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해당 계정의 게시물이 인기를 끈 이유는 바로 공감이다. 연예인은 자신이 모델로 하는 제품을 보통 쓰지 않는다. CF에 등장하는 연예인은 소위 ‘스타’급이다. 이들은 억 소리 나는 매출을 벌어들이는 고소득자기도 하다. 이들이 앱을 이용해 알바를 구할 일도, 1만원대의 화장품을 쓸 일도 없다. 하지만 스타를 모델로 세우기 위해 기업들은 최대 억 단위의 돈을 들인다. 그런데 이 돈은 누구의 부담으로 전가될까. 바로 소비자다. 아주 적은 액수라도 모델 활용의 부담은 결국 소비자가 떠안게 된다.
하지만 단가가 높아져도 기업들은 연예인을 모델로 세울 수밖에 없다. 연예인 활용이 매출에 미치는 영향력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예로 최근 한 신발 브랜드는 배우 K씨가 모델을 한 뒤 한 달 만에 하루 평균 판매량이 200% 이상 치솟았다. 아직 라이징스타로 불리는 K씨가 이 정도인데 A급 스타들은 얼마나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지 짐작할 수 있다.
주위에서 연예인에 대한 잠재의식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는 지 알아보기 위해 간단한 실험을 해봤다. 기자가 직접 시대를 역행하는 난해한 옷을 입고 친구들을 만났다. 마주하자마자 친구들의 반응은 비난 일색이었다. 험한 말들이 오고가는 가운데 기자가 “공효진이 입었던 옷이다”고 하자 비난이 잦아들었다. 물론 “공효진이니까 소화하지”라는 반응도 있었다. 그러나 해당 제품(옷)에 대한 비난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패셔니스타의 이름을 언급하자 제품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이다.
(사진=인스타그램 @dis_celebrity 계정 캡처)
■ 행복하고 싶은 대중, 스타라는 매개물로 욕망 대체해
이에 대해 기업 마케팅전문가이자 상담심리학 교수인 권영찬은 “최근 들어서 스타에 대한 팬덤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다 보니 많은 기업에서 스타마케팅과 함께 스타를 활용한 홍보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며 “사람에게는 행복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자신이 스타가 되지 않는 이상 자신을 대신하는 욕망의 대상을 찾기 마련이다. 그게 바로 현실속의 스타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단순한 스타가 아닌 자신이 만들어 낸 우상)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권영찬 교수는 연예인에 대한 동경과 그에 반하는 감정이 함께 일어나는 것에 대해 “예전 같은 경우 ‘나와는 상관 없는데’ 하고 지나치면 되는 일들이 SNS의 발달로 인해 물건을 갖고 있고 없고에 대해 외부로 표출되는 창구가 생겼다. 이러한 행위가 행복의 잣대가 되는 현상이 생긴 것”이라며 “그러다 보니 스타에 대한 미움이 점차 생기는 것이다. 사랑이 미움으로 변질되고 이게 화가 된다. 그렇다보니 미움이 생기고 결국엔 두려움으로 치닫는다. 그것이 반하는 감정으로 외부에 폭발하게 되는 것이다”고 밝혔다.
결국 연예인 불매운동에 대한 시발은 그들에 대한 동경과 잠재의식이 변화하거나 깨지면서 발생하게 된다. 연예인에 대한 감정은 동전의 앞뒤 같은 모양새를 지니고 있다. 사랑과 미움이 공존하는 심리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연예인에 대한 욕망은 심리학적 측면에서 그다지 건강한 심리 상태는 아니다. 권영찬 교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면 그냥 스타를 즐기고 그를 향한 간단한 애정으로 표출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현재 국내에선 ‘연예인 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삶 곳곳에 그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저 무의식에 골라 마신 음료수도, 대화에 끼려 꺼낸 연예인 이야기도, 습관처럼 보는 기사에도 연예인은 등장한다. 접근하기 쉬운 만큼 일상을 통해 스며드는 영향력도 강하다. 그러나 좀 더 경각심을 갖고 욕망의 대상을 스타가 아닌 스스로에게 찾는다면 더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