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뷰어스=문서영 기자] 일에 지치는 날이 있다. 내가 일을 주도적으로 계획적으로 끌어간다는 느낌이 아니라 일에 질질 끌려다녔다 생각되는 그런 날. 그런 날 집구석을 보면 복장이 터진다. 선반 위에 놓인 장식품까지도 서랍장 안에 끌어다 넣어버리고 싶은 기분이다. 생각이 복잡한 날, 복잡한 살림은 마음을 더욱 답답하게 만든다. 그러나 정리엔 소질이 없다. 사는 건 참 잘하는데…. 생수 사러 갔다 한가득 장을 봐오는 건 잘한다. 온갖 인스턴트 식품과 식재료를 쌓아두는 것도 참 잘한다. 그런데 줄이는 건 그토록 어렵다. 냉장고가 단적인 예다. 결혼 전 자취집에 놓인 아주 작은 냉장고엔 김치도, 각종 양념도 모두 자리하고 있었다. 결혼 후 마련한 양문형 냉장고에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시골에서 올라오는 반찬에 아이스크림 하나 넣을 곳 없던 냉동고에서 탈출해 무려 6칸짜리 냉동고가 구비된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31가지 맛 아이스크림을 통으로 사올라치면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낑낑대야 한다는 것이다. 그 뿐인가. 김치 냉장고에도 냉동칸이 있는데 거기도 꽉 찼다. 정작 마음먹고 냉장고를 뒤질라치면 정작 먹을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작은 냉장고로도 잘 살았다. 식구가 늘긴 했지만 양문형 냉장고 하나로도 양가에서 보내는 김장김치까지 넣어두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두 냉장고가 꽉꽉 들어차 전기를 잡아먹고 있다. 냉장고 문에 먹을거리 목록을 붙여도 냉장고 속 불빛이 보이는 날은 오지 않는다. 나는 꽉 찬 냉장고를 보면서도 ‘오늘 뭐 먹지’ 하며 장을 보러 간다. 과감히 버리지 못하는 내가 냉장고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미니멀 라이프, 어렵다. 집안 곳곳, 뭘 어떻게 버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버릴 물건 앞에 마음이 약해진다. 갖가지 변명이 줄을 잇는다. (사진='트렁크 하나면 충분해' 책표지) ‘트렁크 하나면 충분해’ 저자 에리사는 이런 이들에게 돌직구를 날린다. 그는 버리는 것보다 ‘무엇을 남길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트렁크 하나면 충분해’는 철저히 방법에 충실하다. 1년에 필요한 신발이 몇 켤레인지는 직업과 주로 가는 장소, 실용성에 맞춰 결정한다. 옷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가지고 있는 옷 리스트를 만들고, 자신의 체형에 가장 어울리는 옷들이 무엇인지 체크한다. 버린 옷에 대한 리스트도 자주 봐야 한다. 그래야 ‘어울릴거야’ ‘살빼면 되지’ 로부터 시작되는 충동구매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집안도 그렇다. 저자는 욕실에 늘어져 있던 용품들을 줄이는 대신 자신에게 맞는 샴푸와 세면용품을 꼼꼼히 골랐다. 갖가지 헤어 용품과 스킨케어 용품들을 줄이기 위해 비타민 C가 함께 나오는 샤워기를 달았다. 저자는 1년 이내에 사용한 적 있는지 추억 때문에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있는지를 물으면서 하나를 사면 둘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저자가 말하는 미니멀라이프란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들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이다. 그래야 불필요한 지출과 그로 인해 수반되는 물건의 과잉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1만원짜리 청바지 5개를 사 1년 입는 것보다 20만원짜리 청바지를 10년 입는 게 더 자신을 빛내는 길이라는 주장이다. 효과적이긴 하다. 저자는 꼭 필요한 트렌치코트와 짚업 파카를 옷장에 넣고 여러 아우터를 버렸다. 가볍게 트렌치코트, 추울 땐 그 안에 카디건을 받쳐 입는 방식으로 스타일을 살리고 옷장을 비워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저자는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면서 자신에게 소중한 것만 남았다고 강조한다. 가장 소중한 것들과 쓸모 있는 물품들이 물건이 넘쳐나던 때보다 더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 책이 말하는 모든 방법들을 곧이곧대로 따를 필요는 없겠지만 저자가 ‘미니멀리스트가 된 후’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말하는 책의 ‘5장’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미니멀 라이프를 살기 시작하면서 가치를 느끼는 일이 늘어나고 ‘선택하는 힘’이 늘어난다고 강점을 말한다. 특히 선택하는 힘이 길러지면서 기회를 놓치는 일이 적어지고 행복을 미루지 않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일상의 주변을 정리하면 삶에 어떤 변화가 오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사진=뷰어스DB) 아쉬운 점도 있다. 책은 중요한 부분을 너무 뒤로 미뤘다. 초반 책을 읽다 보면 이것이 미니멀라이프를 살아가는 사람의 책인지 스타일리스트의 책인지 헷갈리게 한다. 초반에 ‘최소한의 패션과 미용’을 배치한 탓이다. 물론 저자가 말하는 것은 ‘줄이는 방법’이다. 출판사 역시 손쉽게, 가장 먼저 해볼 수 있는 방법을 앞에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옷과 가방, 미용 용품으로 80 페이지가 이어지는 데다 일부 지점에선 물건은 줄이되 비용은 훨씬 많이 나간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 때문에 남성 독자들이나 일부 여성 독자들의 반감을 살 여지가 있다. 특히 여성 저자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패션과 미용 부분은 너무 여성적이다. 오히려 휴대전화와 서류, 주방 관리, 청소를 위한 버림 등 저자가 알려주는 ‘진짜’ 실용적 팁들을 전면에 배치했다면 이 책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이 책의 진가는 앞서 말했듯 미니멀 라이프로 인해 시작되는 인생의 변화다. 단순히 주변이 정리되고 삶이 단순해지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작이 한 사람의 자신감과 안목, 자유까지 보장한다는 부분은 주목해야만 한다. 다만 저자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하면 숨막힐 수 있다. 천천히,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시작해봄은 어떨까. 책은 가볍고 얇다. 중간중간 사진이 많기 때문에 적은 시간 내에 읽을 수 있다. 아니다 싶은 부분은 건너뛰고 꼭 필요한 부분을 체크해가며 읽을 것을 권한다.

미니멀라이프, 버리는 것보다 중요한 건

문서영 기자 승인 2017.12.21 14:24 | 최종 수정 2135.12.11 00:00 의견 0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뷰어스=문서영 기자] 일에 지치는 날이 있다. 내가 일을 주도적으로 계획적으로 끌어간다는 느낌이 아니라 일에 질질 끌려다녔다 생각되는 그런 날. 그런 날 집구석을 보면 복장이 터진다. 선반 위에 놓인 장식품까지도 서랍장 안에 끌어다 넣어버리고 싶은 기분이다. 생각이 복잡한 날, 복잡한 살림은 마음을 더욱 답답하게 만든다.

그러나 정리엔 소질이 없다. 사는 건 참 잘하는데…. 생수 사러 갔다 한가득 장을 봐오는 건 잘한다. 온갖 인스턴트 식품과 식재료를 쌓아두는 것도 참 잘한다. 그런데 줄이는 건 그토록 어렵다. 냉장고가 단적인 예다. 결혼 전 자취집에 놓인 아주 작은 냉장고엔 김치도, 각종 양념도 모두 자리하고 있었다. 결혼 후 마련한 양문형 냉장고에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시골에서 올라오는 반찬에 아이스크림 하나 넣을 곳 없던 냉동고에서 탈출해 무려 6칸짜리 냉동고가 구비된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31가지 맛 아이스크림을 통으로 사올라치면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낑낑대야 한다는 것이다. 그 뿐인가. 김치 냉장고에도 냉동칸이 있는데 거기도 꽉 찼다. 정작 마음먹고 냉장고를 뒤질라치면 정작 먹을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작은 냉장고로도 잘 살았다. 식구가 늘긴 했지만 양문형 냉장고 하나로도 양가에서 보내는 김장김치까지 넣어두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두 냉장고가 꽉꽉 들어차 전기를 잡아먹고 있다. 냉장고 문에 먹을거리 목록을 붙여도 냉장고 속 불빛이 보이는 날은 오지 않는다. 나는 꽉 찬 냉장고를 보면서도 ‘오늘 뭐 먹지’ 하며 장을 보러 간다. 과감히 버리지 못하는 내가 냉장고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미니멀 라이프, 어렵다. 집안 곳곳, 뭘 어떻게 버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버릴 물건 앞에 마음이 약해진다. 갖가지 변명이 줄을 잇는다.

(사진='트렁크 하나면 충분해' 책표지)
(사진='트렁크 하나면 충분해' 책표지)

‘트렁크 하나면 충분해’ 저자 에리사는 이런 이들에게 돌직구를 날린다. 그는 버리는 것보다 ‘무엇을 남길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트렁크 하나면 충분해’는 철저히 방법에 충실하다. 1년에 필요한 신발이 몇 켤레인지는 직업과 주로 가는 장소, 실용성에 맞춰 결정한다. 옷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가지고 있는 옷 리스트를 만들고, 자신의 체형에 가장 어울리는 옷들이 무엇인지 체크한다. 버린 옷에 대한 리스트도 자주 봐야 한다. 그래야 ‘어울릴거야’ ‘살빼면 되지’ 로부터 시작되는 충동구매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집안도 그렇다. 저자는 욕실에 늘어져 있던 용품들을 줄이는 대신 자신에게 맞는 샴푸와 세면용품을 꼼꼼히 골랐다. 갖가지 헤어 용품과 스킨케어 용품들을 줄이기 위해 비타민 C가 함께 나오는 샤워기를 달았다. 저자는 1년 이내에 사용한 적 있는지 추억 때문에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있는지를 물으면서 하나를 사면 둘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저자가 말하는 미니멀라이프란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들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것이다. 그래야 불필요한 지출과 그로 인해 수반되는 물건의 과잉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1만원짜리 청바지 5개를 사 1년 입는 것보다 20만원짜리 청바지를 10년 입는 게 더 자신을 빛내는 길이라는 주장이다. 효과적이긴 하다. 저자는 꼭 필요한 트렌치코트와 짚업 파카를 옷장에 넣고 여러 아우터를 버렸다. 가볍게 트렌치코트, 추울 땐 그 안에 카디건을 받쳐 입는 방식으로 스타일을 살리고 옷장을 비워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저자는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면서 자신에게 소중한 것만 남았다고 강조한다. 가장 소중한 것들과 쓸모 있는 물품들이 물건이 넘쳐나던 때보다 더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 책이 말하는 모든 방법들을 곧이곧대로 따를 필요는 없겠지만 저자가 ‘미니멀리스트가 된 후’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말하는 책의 ‘5장’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미니멀 라이프를 살기 시작하면서 가치를 느끼는 일이 늘어나고 ‘선택하는 힘’이 늘어난다고 강점을 말한다. 특히 선택하는 힘이 길러지면서 기회를 놓치는 일이 적어지고 행복을 미루지 않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일상의 주변을 정리하면 삶에 어떤 변화가 오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사진=뷰어스DB)
(사진=뷰어스DB)

아쉬운 점도 있다. 책은 중요한 부분을 너무 뒤로 미뤘다. 초반 책을 읽다 보면 이것이 미니멀라이프를 살아가는 사람의 책인지 스타일리스트의 책인지 헷갈리게 한다. 초반에 ‘최소한의 패션과 미용’을 배치한 탓이다. 물론 저자가 말하는 것은 ‘줄이는 방법’이다. 출판사 역시 손쉽게, 가장 먼저 해볼 수 있는 방법을 앞에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옷과 가방, 미용 용품으로 80 페이지가 이어지는 데다 일부 지점에선 물건은 줄이되 비용은 훨씬 많이 나간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 때문에 남성 독자들이나 일부 여성 독자들의 반감을 살 여지가 있다. 특히 여성 저자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패션과 미용 부분은 너무 여성적이다. 오히려 휴대전화와 서류, 주방 관리, 청소를 위한 버림 등 저자가 알려주는 ‘진짜’ 실용적 팁들을 전면에 배치했다면 이 책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이 책의 진가는 앞서 말했듯 미니멀 라이프로 인해 시작되는 인생의 변화다. 단순히 주변이 정리되고 삶이 단순해지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작이 한 사람의 자신감과 안목, 자유까지 보장한다는 부분은 주목해야만 한다. 다만 저자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하면 숨막힐 수 있다. 천천히,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시작해봄은 어떨까. 책은 가볍고 얇다. 중간중간 사진이 많기 때문에 적은 시간 내에 읽을 수 있다. 아니다 싶은 부분은 건너뛰고 꼭 필요한 부분을 체크해가며 읽을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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