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연인과 독재자' 스틸컷
[뷰어스=남우정 기자] 원로배우 최은희가 영화 같은 삶을 마감했다.
지난 16일 오후 5시30분경 최은희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별세하기 직전까지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 투석을 받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향년 92세.
'연인과 독재자' 스틸컷
■ 원조 트로이카에서 여성 영화인으로
1926년생인 故최은희는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했다. 이후 1947년 ‘새로운 맹서’를 시작으로 영화계에 입문하게 됐으며 이후 ‘밤의 태양’, ‘마음의 고향’ 등의 작품에 출연하며 톱스타로 떠올랐다. 특히 고인은 미모에 연기력까지 갖추며 1950~60년대를 이끌었던 엄앵란, 김지미와 함께 원조 트로이카로 불렸다.
고인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 중 하나는 지난 1953년 영화 ‘코리아’다. 다큐멘터리 영화였던 ‘코리아’를 통해 고인은 故신상옥 감독과 호흡을 맞췃고 이후 결혼해 화제를 모았다. 이후에도 ‘꿈’ ‘젊은 그들’ ‘춘희’ 등 약 130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의 부흥기를 이끌었다.
특히 고인은 배우에서 감독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그는 국내 세 번째 여성 감독으로 1965년 ‘민며느리’, 1967년 ‘공주님의 짝사랑’ 등을 연출했다. ‘민며느리’는 故최은희에게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기기도 했다.
'연인과 독재자' 스틸컷
■ 북한 피납에서 망명까지…영화 같은 삶
1977년 故신상옥 감독과 이혼한 故최은희는 1978년 1월 홍콩을 방문했다가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되는 사고를 겪었다. 이후 신 감독도 같은 해 7월 납북돼 두 사람은 1983년 북한에서 재회했다. 북한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북한에서도 영화 작업을 함께 했고 ‘사랑 사랑 내 사랑’ ‘돌아오지 않는 밀사’ 등 총 17편의 영화를 찍었다. 특히 북한에서 찍은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고인과 신 감독은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 방문 중 미국 대사관에 진입해 망명에 성공했다. 두 사람은 10년 넘은 망명 생활 끝에 1999년 고국 땅을 밟게 됐다.
한국에 돌아온 고인은 2001년 극단 신협의 대표로 취임했고 2002년 뮤지컬 ‘크레이지 포유’를 기획·제작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활동하며 2007년엔 자신의 자서전을 출간하기도 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살아간 최은희의 삶은 한국 영화계에 오래도록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