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협회장 선거가 유례없는 흥행을 예고하고 있다. 일찌감치 출사표를 던지는 후보들이 등장한 가운데 정부가 자본시장 체질 개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히고 있는 만큼 쟁쟁한 후보들의 추가 등판도 기대해볼 만하다는 분위기다.

15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오는 12월 말 제 7대 금융투자협회장 선거가 치러질 예정이다. 금융투자협회장은 3년 임기로 해당 년도 12월 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증권·자산운용·신탁·선물 등 총 400여곳의 협회 소속 정회원사들의 직접투표로 선출되는 자리인 만큼 소위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로운 자리 중 하나기도 하다. 역대 금융투자협회장들은 전·현직 증권,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들이 맡아왔다.

(사진=연합뉴스)


■ 이현승·황성엽 출사표, 잠룡 기대감도 '솔솔'

통상 9월께 후보군이 추려지면서 선거 분위기가 조성되던 것에 비해 올해는 증권가 안팎의 관심을 등에 업고 두달 가량 빠른 요즘 물밑 경쟁이 이미 시작됐다. 이는 현재 정부의 정책 흐름과 무관치 않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 전후로 여의도 증권가를 찾는 것을 비롯해 코스피 5000시대 비전을 제시하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이다.

출사표를 이미 던진 후보는 이현승 전 KB자산운용 대표와 황성엽 신영증권 대표 등이다. 1966년생인 이현승 전 대표는 SK증권을 시작으로 이후 코람코자산운용, 현대자산운용 등 운용업계에서 CEO를 역임했다. 특히 지난 2018년 이후 KB자산운용에서 6년간 대표로 근무하면서 폭발적 성장을 일궈낸 바 있다. 황 대표는 1987년 신영증권 입사 후 줄곧 신영맨으로 일했다. 그는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자본시장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찾겠다며 출마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선거까지 아직 시간이 충분히 남아 있는 만큼 향후 쟁쟁한 후보들이 추가 등판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상법 개정안 등 정책을 기반으로 증시 훈풍이 이어질 경우 자본시장 체질 개선을 이끌 만한 리더의 역할도 더욱 커질 것이란 기대감이 반영된 영향이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수석 부회장는 지난 2018년말 CEO직을 내려놓은 이후 줄곧 잠룡 후보로 꼽혀온 단골 인사다. 유 부회장은 한국투자증권에서 12년간 CEO로 역임한 뒤 현재 수석 부회장을 맡아 근무 중이다. 업계에서는 꾸준히 그의 출마 가능성을 거론했지만 유 수석 부회장은 매번 “회사측의 요청에 따른 판단”이라며 고사해왔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유 수석 부회장은 업계 후배들 입장에서도 상당히 긍정적으로 기대할 만한 후보”라면서도 “한번 몸담은 조직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것이 유 수석 부회장의 의중인 만큼 그의 출마 여부는 사실상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회장의 선택에 상당 부분 달려 있는 문제”라고 봤다.

정영채 전 NH투자증권 사장도 잠재적 후보로 거론된다. 정 전 사장은 특유의 맨파워를 바탕으로 한 추진력과 업계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지녔다는 점에서 기대되는 후보다. 평소 그의 언행을 감안할 때 정책 당국과 소통에 있어서도 가감없이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후보일 것이란 기대도 긍정적인 요소로 꼽힌다. 다만 정 전 사장은 올해 메리츠증권 고문 역할로 자리를 옮긴 만큼 당장 출마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그와 함께 서울대 82학번 출신 CEO인 박정림 전 KB증권 사장도 선거전에 뛰어들 것이란 전망이 높다.

최현만 전 미래에셋증권 수석 부회장의 등판 가능성도 점쳐진다. 지난 선거 당시에도 최 전 수석 부회장의 출마설이 불거진 바 있다. 이번 선거가 자본시장 흐름을 잘 간파하고 있는 인물에 대한 선호가 있는 만큼 최 전 부회장의 출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서유석 현 금융투자협회장의 재출마 여부가 변수다. 두 인사 모두 미래에셋출신인 만큼 두 사람이 겨루는 구도는 피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서유석 회장은 첫 자산운용사 CEO 출신으로 선출되면서 운용업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었다. 서 회장은 임기 초기부터 장기 투자자에 대한 세제 혜택과 공모펀드 직상장 등 다양한 정책들을 내놓은 바 있으나 실행에는 다소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통상 현직 회장의 경우 레임덕 우려 등으로 인해 선거 시즌이 본격화된 이후 출마 여부를 밝힌다는 점에서 그의 재출마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 “소통형 협회장 나오길 기대”

한편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차기 금투협회장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로 소통 능력을 꼽았다.

한 대형 증권사 CEO는 “서 회장이 나름대로 균형감각을 갖고 업계 목소리를 현실에 반영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는 점에서 전반적인 평판은 나쁘지 않다”고 전했다. 다만 이 CEO는 “현재 자본시장 변화의 중심축을 맞추기 위해서 증권 출신 인사에 대한 선호가 있을 수 있다”며 “정부가 다양한 정책 변화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당국과의 소통에 적극적이고 시장 전체의 의견을 균형감있게 전달할 수 있는 인사가 뽑힌다면 시너지를 확대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운용사 CEO는 “앞선 선거가 늘 해결해야 할, 산적한 과제를 푸는데 집중했다면 이번 선거는 정부가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정책 개선에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상황”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현 정부의 소통방식과 국정 운영 스타일을 감안할 때 규제 완화를 비롯해 정부 정책에 현실감을 반영시킬 수 있는 인사가 필요할 것 같다”면서 “시장의 뜨거운 관심을 충족시키는 유능한 후보가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