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꽃비(사진=투이컴퍼니) 올해 1월29일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 고백은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의 발화점이 됐다. 용기 있는 고백 후에 문화, 예술, 사회 등 다양한 계층에서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현재진행형인 상황이다. 격동의 시대를 맞은 2018년 페미니즘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짚어봤다. -편집자주- [뷰어스=남우정 기자] 여자 연예인은 핸드폰 케이스, 읽는 책 하나도 검열을 당한다. 선의로 한 행위는 법적책임으로 돌아온다. 여자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 잣대가 얼마나 높은지 실감한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 김꽃비의 행보는 눈에 띈다. 2003년 영화 ‘질투는 나의 힘’으로 데뷔를 한 김꽃비는 ‘삼거리 극장’ ‘똥파리’ ‘거짓말’ 등의 작품에서 연기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2009년 제30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제46회 대종상영화제 신인여우상를 거머쥐기도 한 본업을 잘 하는 배우다. 그리고 그는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는 대표적인 배우다. 과거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서 한진중공업 작업복을 입고 올라 강정마을 및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퍼포먼스를 펼쳤고 최근엔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임을 위한 목소리’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가 목소리를 높이 내는 분야 중 하나는 바로 여성문제이다. 김꽃비는 미투 운동을 공개 지지하고 2016년엔 신희주, 박효선 감독과 찍는 페미라는 그룹을 만들기도 했다. 찍는 페미는 영화계 성폭력 성차별을 없애자며 만들어진 페미니스트 영화인 모임으로 영화, 영상 콘텐츠계에 성차별적 문제 개선을 위해 나섰다. 페미니즘 운동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김꽃비를 만나 페미니스트 연예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 찍는 페미의 창립 멤버인데 이 그룹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느 순간 페미니즘에 대한 각성을 하게 됐고 이후로 이 사회가 얼마나 성차별적인 사회였는지 보이더라고요. 모를 땐 거슬릴 것 없는데 알게 되면 불편하고 거슬렸어요. 그러다 내가 하고 있는 영화 현장에 나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어요. 서로 존재를 알면 좀 더 힘이 생기고 이 바닥도 변화할 수 있는 씨앗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죠. 그러다 ‘#OOO_내_성폭력’ 운동이 퍼지고 영화계 성폭력 히스토리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이걸 문제로 인식하는 분이 많다는 걸 보며 반가웠어요. 그런 분들과 SNS로 멘션을 주고받다가 의견이 모아졌죠. 원래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는데 하루 만에 페이스북에서 바로 그룹을 만들어 버렸어요(웃음) 그리고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죠. 가입하는 사람도 많고 굉장히 고무적이었어요. 만들고 반년 동안은 다른 일을 못하고 그 활동에만 매진을 했어요” 김꽃비(사진=연합뉴스) ▲ 찍는 페미는 영화계 성범죄 피해자 편에 서서 힘을 실어주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는데 창립멤버로 활동하며 가장 성취감을 느꼈던 순간은? “일단 이 많은 영상, 영화계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걸 가시적으로 보여줬다는 것만으로 큰 성과라고 생각을 해요. 또 하나를 꼽자면 찍는 페미 내에 제작팀이 있는데 처음으로 단편 영화를 만들었어요. ‘아이 캔 디펜스’라는 영화였는데 주연을 맡아서 뜻 깊었죠. 거의 시민활동가 급의 활동을 하는데 조직력이 아예 없는 상황에서 맨땅에 헤딩을 한거죠.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서 영화를 만들었고 그 안에서 만들어진 작품에 내가 출연했다는 게 감회가 새로웠어요” ▲ 어떤 계기로 각성을 하게 됐나요? “20대 초중반엔 나도 페미니스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별로라는 인식으로 받아들였어요. 사회의 인식이 안 좋았고 그렇게 주입이 되다 보니 차별은 인식했지만 페미니스트에 대해선 반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페미니스트다’ 해시태그 운동이 있었을 때 난 주저하다가 못했어요. 아직도 당당히 페미니스트라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많고 반감도 크지만 그땐 더 심했죠. 근데 점점 페미니즘에 대해 배워가면서 그 벽이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SNS에서 남녀 성별만 바꿔놓았던 글들 보고 깜짝 놀랐어요. 맨날 보던 글들이었는데 미러링으로 바꿔놓으니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지 와 닿더라고요. 나도 여성혐오 사회에 익숙해서 못 느꼈던 것을 깨달았어요” ▲ 미투 이후의 변화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일단은 모든 페미니즘의 움직임을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서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 받쳐줘야 한다는 거에요. 개개인이 각성한다고 해도 시스템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힘이 빠질 수밖에 없어요. 백래시가 일어나고 그러다가 주저앉을 수도 있어요. 시스템이 받쳐주면 밀고 나가서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식 변화와 시스템이 같이 가야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시스템이 먼저 바뀌면 뒤따라오는 게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호주제도 처음엔 반발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잖아요. 법이 엄격하게 처벌할 수 있게 되면 알아서 자연스럽게 사회도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미투 폭로가 이어졌지만 지금도 제대로 엄격한 처벌 받는 사람이 없어요. 그리고 미투를 농담처럼 사용하는 사람들까지 있어요. 처벌이 진행되면 누구도 쉽게 농담거리로 여기지 않고 제대로 인지하지 않을까 싶어요” ▲ 본인의 활동 영역인 영화계에서도 미투 이후에 변화가 있나요? “사실 미투 이후 현장을 느낄 기회는 없었어요. 그건 모르겠어도 영화계 내 찍는 페미가 만들어졌고 영화 ‘걷기왕’ 촬영장에서 성희롱 예방교육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영화 현장에서 성희롱 예방교육을 한 게 ‘걷기왕’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 사실이 알려지고 많이 퍼져나가게 됐다고 해요. 나도 ‘임을 위한 행진곡’ 현장에서 제안했어요. 그런 것들의 필요성이나 인지가 많이 생긴 것 같아 가시적인 성과라고 봐요”     ▲ 최근 일례들만 봐도 여성 연예인에 대한 잣대가 심한게 느껴져요. 여성 연예인으로 페미니스트라고 밝히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예전보단 나아졌죠. 예전엔 꺼려지는 이미지가 있다면 요즘은 양극단으로 나뉜 느낌이에요. 사실 배우로 득은 없고 실만 있죠. 근데 신념 때문에 해요. 내가 그렇게 큰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계속 그런 목소리를 내고 보여주는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미약하나마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고 메시지를 전달하면 용기를 얻고 힘을 얻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 페미니즘에 대해 아직 각성을 하지 않은, 못한 이들도 있는데? “그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억지로 강요할 수도 없고 각성하지 못했다고 해도 비난할 수 있는 자격도 없어요. 최근 트위터 상에서 논쟁이 있는 것 중 하나가 페미니즘 안에서 단죄하거나 비판의 지점을 만드는 경우가 있어요. 각각 다 다른 의미의 운동 방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옛날부터 생각을 했던 부분인데 내가 사회적 목소리를 내고 있는 걸 예로 들면서 반대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비판하는 시선과 분위기를 느낀 적이 있어요. 이건 절대 누구에게 강요할 수도 없고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이에요. 나도 마찬가지고요. 그걸 마치 맡겨놓은 것처럼 강요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다른 배우나 연예인에게 ‘왜 페미니즘 행보를 가지지 않냐’는 비판은 안 된다고 생각해요. 특히 여성들에게 더 그런 시선이 있는 것 같아요. 결국 화살의 끝이 여성에게 향한다는 게 안타깝더라고요”     ▲ ‘임을 위한 행진곡’ 제작 단계에 있을 땐 정권이 바뀌기 전이었다. 사회적 이슈가 있는 작품을 선택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는지, 꾸준히 사회적 메시지가 있는 작품을 선택하는 이유가 있나요? “그런 생각은 안 해봤던 것 같아요. 찍혔다면 이미 진즉에 찍혔겠죠. 그런 이유 때문에 선택을 안 하는 건 더 싫었어요. 그런 작품을 고른다는 것 보단 나에게 들어오기도 해요. 왜인지 알죠. 그런 작품을 선택하는 게 어렵다는 걸아니까요. 다른 배우들이 고사했을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그런 행보를 보인다는 것을 아는 분들이 사정을 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 여성 문제뿐만 아니라 다방면으로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최근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가 있어요? “옳다고 생각한다면 신념을 가지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SNS를 하면서 사회 문제를 많이 배웠어요. 성소수자, 노동, 장애인 인권, 청소년 인권 등 다양한 인권 문제에 대해 알게 됐어요. 청소년 인권에 관심이 많은데 맞닿아 있는 게 나이주의에요. 한국 사회에선 페미니즘보다 더 어렵고 위험하지 않을까 싶어요. 나이주의 타파를 위해 개인적으로 주변 사람들과 실천을 하고 있어요. 10명의 친구들이 있는데 40대도 있고 20대 초반도 있고 나이가 제각각이에요. 그 친구들끼리 다 반말을 하고 호칭을 안 부르고 이름을 부르기로 했어요. 서로 동등하게 대하고 싶어서 그런 제안을 했죠. 한달 정도 반말 기간을 가지고 해보다가 좋아서 이후로 계속 반말을 하게 됐는데 주위에 전파하고 싶어요. 서로 서열이나 위계 없는 동등한 관계를 만드는 분위기가 생겼으면 해요” ▲ 인간 김꽃비를 지탱하게 하는 가장 중심은 뭔가요? “기본적으로 ‘상관없어’라는 마인드가 있어요. 어느 정도 상관없는 태도가 있어야 자존감이 선다고 해야 하나.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걸 해야 하고 ‘ 뭐 어때’라는 생각을 하는 편이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괜찮은 태도 같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 태도를 가지지 않으면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고민을 많이 하다보면 스스로 흔들리고 자신감도 없어질 수밖에 없어요. 옳은 일인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게 있다면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아요. 2001년부터 영화를 해왔는데 내가 이런 발언을 해서 배우로서 잘 안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면 못해요. 난 뭘 하든 거기서 내가 만족하고 느낄 수 있으면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내가 배우라는 직업으로 돈을 벌어서 먹고 살지만 돈을 못 번다면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벌면 돼요. 무슨 일을 돈을 버는 건 상관없어요. 행복하고 즐겁게 살면 되고 그래서 더 자유로워요. 실제로 뭐 때문인지 몰라도 작업이 잘 안 들어오긴 해요. 그게 힘들게 할 때도 있는데 마음을 다잡아요. 배우로서 못하게 되면 어떻게든 돈을 버는 일을 해서라도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해요”

[2018 페미니즘]③ 김꽃비가 페미니스트로 목소리를 내는 이유

남우정 기자 승인 2018.06.08 16:19 | 최종 수정 2136.11.13 00:00 의견 0
김꽃비(사진=투이컴퍼니)
김꽃비(사진=투이컴퍼니)

올해 1월29일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 고백은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의 발화점이 됐다. 용기 있는 고백 후에 문화, 예술, 사회 등 다양한 계층에서 피해 여성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현재진행형인 상황이다. 격동의 시대를 맞은 2018년 페미니즘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짚어봤다. -편집자주-

[뷰어스=남우정 기자] 여자 연예인은 핸드폰 케이스, 읽는 책 하나도 검열을 당한다. 선의로 한 행위는 법적책임으로 돌아온다. 여자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 잣대가 얼마나 높은지 실감한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 김꽃비의 행보는 눈에 띈다. 2003년 영화 ‘질투는 나의 힘’으로 데뷔를 한 김꽃비는 ‘삼거리 극장’ ‘똥파리’ ‘거짓말’ 등의 작품에서 연기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2009년 제30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제46회 대종상영화제 신인여우상를 거머쥐기도 한 본업을 잘 하는 배우다. 그리고 그는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는 대표적인 배우다. 과거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서 한진중공업 작업복을 입고 올라 강정마을 및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퍼포먼스를 펼쳤고 최근엔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임을 위한 목소리’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가 목소리를 높이 내는 분야 중 하나는 바로 여성문제이다. 김꽃비는 미투 운동을 공개 지지하고 2016년엔 신희주, 박효선 감독과 찍는 페미라는 그룹을 만들기도 했다. 찍는 페미는 영화계 성폭력 성차별을 없애자며 만들어진 페미니스트 영화인 모임으로 영화, 영상 콘텐츠계에 성차별적 문제 개선을 위해 나섰다. 페미니즘 운동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김꽃비를 만나 페미니스트 연예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 찍는 페미의 창립 멤버인데 이 그룹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느 순간 페미니즘에 대한 각성을 하게 됐고 이후로 이 사회가 얼마나 성차별적인 사회였는지 보이더라고요. 모를 땐 거슬릴 것 없는데 알게 되면 불편하고 거슬렸어요. 그러다 내가 하고 있는 영화 현장에 나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했어요. 서로 존재를 알면 좀 더 힘이 생기고 이 바닥도 변화할 수 있는 씨앗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죠. 그러다 ‘#OOO_내_성폭력’ 운동이 퍼지고 영화계 성폭력 히스토리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이걸 문제로 인식하는 분이 많다는 걸 보며 반가웠어요. 그런 분들과 SNS로 멘션을 주고받다가 의견이 모아졌죠. 원래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는데 하루 만에 페이스북에서 바로 그룹을 만들어 버렸어요(웃음) 그리고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죠. 가입하는 사람도 많고 굉장히 고무적이었어요. 만들고 반년 동안은 다른 일을 못하고 그 활동에만 매진을 했어요”

김꽃비(사진=연합뉴스)
김꽃비(사진=연합뉴스)

▲ 찍는 페미는 영화계 성범죄 피해자 편에 서서 힘을 실어주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는데 창립멤버로 활동하며 가장 성취감을 느꼈던 순간은?

“일단 이 많은 영상, 영화계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걸 가시적으로 보여줬다는 것만으로 큰 성과라고 생각을 해요. 또 하나를 꼽자면 찍는 페미 내에 제작팀이 있는데 처음으로 단편 영화를 만들었어요. ‘아이 캔 디펜스’라는 영화였는데 주연을 맡아서 뜻 깊었죠. 거의 시민활동가 급의 활동을 하는데 조직력이 아예 없는 상황에서 맨땅에 헤딩을 한거죠.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서 영화를 만들었고 그 안에서 만들어진 작품에 내가 출연했다는 게 감회가 새로웠어요”

▲ 어떤 계기로 각성을 하게 됐나요?

“20대 초중반엔 나도 페미니스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별로라는 인식으로 받아들였어요. 사회의 인식이 안 좋았고 그렇게 주입이 되다 보니 차별은 인식했지만 페미니스트에 대해선 반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페미니스트다’ 해시태그 운동이 있었을 때 난 주저하다가 못했어요. 아직도 당당히 페미니스트라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많고 반감도 크지만 그땐 더 심했죠. 근데 점점 페미니즘에 대해 배워가면서 그 벽이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SNS에서 남녀 성별만 바꿔놓았던 글들 보고 깜짝 놀랐어요. 맨날 보던 글들이었는데 미러링으로 바꿔놓으니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지 와 닿더라고요. 나도 여성혐오 사회에 익숙해서 못 느꼈던 것을 깨달았어요”

▲ 미투 이후의 변화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일단은 모든 페미니즘의 움직임을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서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 받쳐줘야 한다는 거에요. 개개인이 각성한다고 해도 시스템이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힘이 빠질 수밖에 없어요. 백래시가 일어나고 그러다가 주저앉을 수도 있어요. 시스템이 받쳐주면 밀고 나가서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식 변화와 시스템이 같이 가야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시스템이 먼저 바뀌면 뒤따라오는 게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호주제도 처음엔 반발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잖아요. 법이 엄격하게 처벌할 수 있게 되면 알아서 자연스럽게 사회도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미투 폭로가 이어졌지만 지금도 제대로 엄격한 처벌 받는 사람이 없어요. 그리고 미투를 농담처럼 사용하는 사람들까지 있어요. 처벌이 진행되면 누구도 쉽게 농담거리로 여기지 않고 제대로 인지하지 않을까 싶어요”

▲ 본인의 활동 영역인 영화계에서도 미투 이후에 변화가 있나요?

“사실 미투 이후 현장을 느낄 기회는 없었어요. 그건 모르겠어도 영화계 내 찍는 페미가 만들어졌고 영화 ‘걷기왕’ 촬영장에서 성희롱 예방교육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영화 현장에서 성희롱 예방교육을 한 게 ‘걷기왕’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 사실이 알려지고 많이 퍼져나가게 됐다고 해요. 나도 ‘임을 위한 행진곡’ 현장에서 제안했어요. 그런 것들의 필요성이나 인지가 많이 생긴 것 같아 가시적인 성과라고 봐요”

   
▲ 최근 일례들만 봐도 여성 연예인에 대한 잣대가 심한게 느껴져요. 여성 연예인으로 페미니스트라고 밝히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예전보단 나아졌죠. 예전엔 꺼려지는 이미지가 있다면 요즘은 양극단으로 나뉜 느낌이에요. 사실 배우로 득은 없고 실만 있죠. 근데 신념 때문에 해요. 내가 그렇게 큰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계속 그런 목소리를 내고 보여주는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미약하나마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고 메시지를 전달하면 용기를 얻고 힘을 얻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 페미니즘에 대해 아직 각성을 하지 않은, 못한 이들도 있는데?

“그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억지로 강요할 수도 없고 각성하지 못했다고 해도 비난할 수 있는 자격도 없어요. 최근 트위터 상에서 논쟁이 있는 것 중 하나가 페미니즘 안에서 단죄하거나 비판의 지점을 만드는 경우가 있어요. 각각 다 다른 의미의 운동 방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옛날부터 생각을 했던 부분인데 내가 사회적 목소리를 내고 있는 걸 예로 들면서 반대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비판하는 시선과 분위기를 느낀 적이 있어요. 이건 절대 누구에게 강요할 수도 없고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이에요. 나도 마찬가지고요. 그걸 마치 맡겨놓은 것처럼 강요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다른 배우나 연예인에게 ‘왜 페미니즘 행보를 가지지 않냐’는 비판은 안 된다고 생각해요. 특히 여성들에게 더 그런 시선이 있는 것 같아요. 결국 화살의 끝이 여성에게 향한다는 게 안타깝더라고요”

   

▲ ‘임을 위한 행진곡’ 제작 단계에 있을 땐 정권이 바뀌기 전이었다. 사회적 이슈가 있는 작품을 선택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는지, 꾸준히 사회적 메시지가 있는 작품을 선택하는 이유가 있나요?

“그런 생각은 안 해봤던 것 같아요. 찍혔다면 이미 진즉에 찍혔겠죠. 그런 이유 때문에 선택을 안 하는 건 더 싫었어요. 그런 작품을 고른다는 것 보단 나에게 들어오기도 해요. 왜인지 알죠. 그런 작품을 선택하는 게 어렵다는 걸아니까요. 다른 배우들이 고사했을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그런 행보를 보인다는 것을 아는 분들이 사정을 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 여성 문제뿐만 아니라 다방면으로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최근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가 있어요?

“옳다고 생각한다면 신념을 가지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SNS를 하면서 사회 문제를 많이 배웠어요. 성소수자, 노동, 장애인 인권, 청소년 인권 등 다양한 인권 문제에 대해 알게 됐어요. 청소년 인권에 관심이 많은데 맞닿아 있는 게 나이주의에요. 한국 사회에선 페미니즘보다 더 어렵고 위험하지 않을까 싶어요. 나이주의 타파를 위해 개인적으로 주변 사람들과 실천을 하고 있어요. 10명의 친구들이 있는데 40대도 있고 20대 초반도 있고 나이가 제각각이에요. 그 친구들끼리 다 반말을 하고 호칭을 안 부르고 이름을 부르기로 했어요. 서로 동등하게 대하고 싶어서 그런 제안을 했죠. 한달 정도 반말 기간을 가지고 해보다가 좋아서 이후로 계속 반말을 하게 됐는데 주위에 전파하고 싶어요. 서로 서열이나 위계 없는 동등한 관계를 만드는 분위기가 생겼으면 해요”

▲ 인간 김꽃비를 지탱하게 하는 가장 중심은 뭔가요?

“기본적으로 ‘상관없어’라는 마인드가 있어요. 어느 정도 상관없는 태도가 있어야 자존감이 선다고 해야 하나.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걸 해야 하고 ‘ 뭐 어때’라는 생각을 하는 편이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괜찮은 태도 같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 태도를 가지지 않으면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고민을 많이 하다보면 스스로 흔들리고 자신감도 없어질 수밖에 없어요. 옳은 일인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게 있다면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아요. 2001년부터 영화를 해왔는데 내가 이런 발언을 해서 배우로서 잘 안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하면 못해요. 난 뭘 하든 거기서 내가 만족하고 느낄 수 있으면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내가 배우라는 직업으로 돈을 벌어서 먹고 살지만 돈을 못 번다면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벌면 돼요. 무슨 일을 돈을 버는 건 상관없어요. 행복하고 즐겁게 살면 되고 그래서 더 자유로워요. 실제로 뭐 때문인지 몰라도 작업이 잘 안 들어오긴 해요. 그게 힘들게 할 때도 있는데 마음을 다잡아요. 배우로서 못하게 되면 어떻게든 돈을 버는 일을 해서라도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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