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대변하는 수식어 중 대표적인 말은 ‘열정’ ‘패기’와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요즘 청춘들은 열심히 사는 것보다 대충 살아야겠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젊은 세대들이 말하는 ‘대충’은 회피의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또 다른 방향의 제시와 같다. 과연 청춘들이 놓인 현실, 그리고 이들이 택한 삶의 방식은 어떤 모습일까? ‘대충 살자’라는 말의 탄생 배경과 현재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대충 살자... 귀가 있어도 관자놀이로 음악을 듣는 아서처럼"(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제공)
[뷰어스=이소희 기자] ‘무민(無mean)세대’. 하얗고 포동포동한 캐릭터 무민(MOOMIN)이 아니다. 요즘의 젊은 세대를 뜻하는 신조어다. ‘무민세대’는 의미 있다고 여기는 것들에서 벗어나 무의미한 것들에서 즐거움을 찾으려고 하는 세대를 뜻한다. 온몸에 잔뜩 들어간 힘을 빼고 쓸데없는 것을 구태여 추구하는 움직임이다.
그래서 ‘무민세대’라는 말은 지난해 빼놓을 수 없는 핵심 단어로 자리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과도 일맥상통한다.
다만 두 신조어의 방향성은 사뭇 다르다. ‘소확행’이 일상을 유지한 채 감정이든 경험이든 물건이든 무언가를 얻어서 삶의 질을 높인다는 뉘앙스라면, ‘무민세대’라는 말은 생활의 일부 혹은 전체를 내려놓거나 버리겠다는 모양새다. 한 마디로 ‘소확행’이 삶의 질을 높이는 부가적인 가치라면 ‘무민세대’는 마이너스의 삶을 통해 지향점 자체를 바꾸는 일종의 반전이다.
이런 맥락에서 탄생한 생각이 바로 “대충 살자”다. 최근 20, 30대 사이에서는 너무 열심히 살지도, 경쟁하려고 하지도 말고 그저 적당한 삶을 살자는 태도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과거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이라는 말이 탄생한 정도였지만 지금은 이런 생각이 세대의 가치관으로까지 뿌리를 내렸다. 이렇게 현재의 위치에 놓인 ‘대충 살자’라는 가치관은 일종의 유머로 혹은 대중문화의 일부로 활용되며 젊은 세대의 달라진 생각을 보여주는 중이다.
범고래 작가의 이모티콘(사진=카카오톡 이모티콘샵 캡처)
■ ‘대충 살자’고 말하는 청춘들의 취향
요즘 대중의 웃음보를 터뜨린 ‘대충 살자’ 시리즈는 이런 요즘의 가치관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이 시리즈는 높은음자리표를 지나치게 축약해 그린 베토벤의 악보를 보고 “대충 살자, 베토벤의 높은음자리표처럼”이라고 하거나 관자놀이에 헤드폰을 낀 캐릭터 아서를 보고 “대충 살자, 귀가 있어도 관자놀이로 노래 듣는 아서처럼”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이 외에도 “대충 살자, 숫자 풍선 들기 귀찮아서 머리에 낀 황정민처럼” “대충 살자, 걷기 귀찮아서 미끄러져 내려가는 북극곰처럼” 등 수많은 ‘짤’이 있다. 지금의 해당 기사에는 말줄임표가 생략되어 있지만 “대충 살자...”라며 모든 걸 체념한 듯 말하는 뉘앙스가 포인트다.
카카오톡에서는 대충 그린 듯한 이모티콘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대중의 취향과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카카오톡의 이모티콘샵 인기 카테고리에는 간단한 드로잉으로 이루어진 이모티콘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것들은 낙서처럼 보여 ‘이걸 돈 주고 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일례로 ‘대충하는 답장’ 시리즈는 마치 그림판으로 그린 듯한 얇은 선으로 사람 상반신을 그리고 표정만 미묘하게 다르게 표현한 게 특징이다. 하지만 이를 내놓은 범고래 작가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아 수 억 연봉을 버는 스타 작가가 됐다.
서점가에서 역시 변화가 생겼다. 지난해 ‘이대로도 괜찮아’와 같은 위로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면, 요즘에는 더 나아가 ‘힘을 빼자’는 식으로 삶의 방향을 설정한 책들이 인기를 얻는 추세다.
김신회의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김수현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손힘찬의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 등은 꾸준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책들이다. 하완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는 출간 6개월 만에 14쇄를 찍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최근에는 윈터 에디션도 내놨다. 이 외에도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힘 빼기의 기술’ ‘빵 고르듯 살고 싶다’ ‘한 번 까불어보겠습니다’ 등 열띤 호응을 얻는 책들이 있다. 일부 서점에서는 아예 ‘대충 살자’를 키워드로 매대 진열을 해놓기도 한다.
(사진=tvN 화면 캡처)
■ 미디어에서도 드러나는 ‘대충 살자’ 트렌드
그런가 하면 대중문화업계에서는 “대충 살자”는 말의 매력을 파헤치거나 이를 소재로 삼는 움직임이 더욱 커지는 추세다.
앞서 언급된 ‘대충 살자’ 시리즈의 패러디부터 상당하다. 올레tv 모바일에서 공개되는 ‘아이돌에 미치고, 아미고 TV 시즌4’에서 워너원은 ‘대충 살자’ 챌린지를 진행했다. 여기에서 김재환은 “대충 살자, 다음 날 아침운동 한다고 야식 시키는 윤지성처럼”이라고 말했으며, 옹성우는 “나보다 대충 사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KBS2 ‘개그콘서트’에서 역시 개그맨 장기영이 해당 시리즈를 자신의 콘셉트로 삼았다.
여기에 ‘대충 살자’ 시리즈를 만들어낸 김동완도 있다. 김동완은 양말 디자인이 서로 다름에도 그저 색깔만 맞춰 신어 ‘대충 살자’ 짤로 웃음을 줬던 것에 대해 tvN 예능프로그램 ‘인생술집’에서 이렇게 부연설명을 했다. “한국 사람들은 대충 살 필요가 있다. 나도 대충 사는 건 아니지만 다들 너무 빡세게 산다. 긴장과 이완을 반복해야 하는데 계속 긴장만 하니까 문제다”
더 나아가 이런 가치관은 드라마 소재로도 등장한다. 웹드라마 ‘사랑병도 반환이 되나요?’는 세상의 부조리에 발끈하며 열정을 갖고 살아가는 먹방 BJ 발끈언니(AOA 혜정)과 의욕 없이 살아가는 대충살자TV 운영자 슈렉(류의현)을 다룬 작품이다. tvN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17’에서는 배우 박선호가 지난 시즌들에 이어 이번에도 ‘대충 살자’는 삶의 모토로 하는 캐릭터를 잇는다.
[대충 사는 사람들] ①‘무민세대’의 새로운 탄생, “대충 살자”는 새로운 마음
[대충 사는 사람들] ②“나는 유노윤호다” 주문 뒤 숨겨진 현실
[대충 사는 사람들] ③대충 살아도 괜찮나요? 허무주의 vs 재충전 사이에 놓인 ‘대충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