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대변하는 수식어 중 대표적인 말은 ‘열정’ ‘패기’와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요즘 청춘들은 열심히 사는 것보다 대충 살아야겠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젊은 세대들이 말하는 ‘대충’은 회피의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또 다른 방향의 제시와 같다. 과연 청춘들이 놓인 현실, 그리고 이들이 택한 삶의 방식은 어떤 모습일까? ‘대충 살자’라는 말의 탄생 배경과 현재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사진=하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책 커버)
[뷰어스=이소희 기자] 현재 2030세대에 만연한 ‘대충 살자’의 가치관은 자신이 바꿀 수 없는 현실에 좌절과 체념으로 만들어졌다. 어떻게 해도 위로 올라갈 수 없고 열정을 강요받는 사회에서 일종의 포기를 한 것이다. 그래서 ‘대충 살자’는 말은 ‘어차피 이룰 수 있는 게 없으니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허무주의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젊은 세대들이 추구하는 ‘대충 살자’의 방향은 그 탄생 배경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다. 이들이 말하는 ‘대충’은 오히려 사회의 틀에 억지로 자신을 끼워 맞추기보다 다른 삶의 방식을 추구해보자는 ‘재충전’의 뜻에 더 가깝다.
책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으로 인기를 끈 하완 작가는 프롤로그에서부터 더 이상 열심히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선언한다. 하완은 그 길로 프리랜서가 됐다. 그러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경쟁사회에서 벗어나자 불평불만이 없어졌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욕망이 모두 남들 눈에 좋아 보이기 위한 것들뿐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많은 것을 느낀 하완은 책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운이 좋은 시대를 사는 세대가 있는 반면, 지금처럼 운이 없는 시대에 태어난 세대가 있기 마련이다. 그들은 자신이 살아야 할 힘든 시대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애를 쓰며 살아 내고 있다. (중략) 그들 스스로 행복을 찾으며 살아가고 있으니 그들에게 맞는 희망이 바로 거기에 있다”
이처럼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은 현실 속 오히려 젊은 세대는 대충 살지 않기 위해 ‘대충 살자’고 말하고 있다
여행을 떠난 손고운 씨의 모습(사진=손고운 씨 제공)
■ “대충 살지 않기 위해 떠났어요, 지금은 꿈을 다시 찾았죠”
이를 실천하기 위해 틀에 박힌 회사생활을 벗어나 배낭여행을 떠났다는 손고운 씨(31.여)를 만났다. 손씨는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베트남, 라오스, 태국, 말레이시아, 미국, 멕시코, 쿠바, 아이슬란드, 스페인 등을 찾았다. 일부 우려의 시선도, 미래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여행 중에는 돈이 없어 빵 몇 조각으로 끼니를 때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발길이 닿는 대로, 자신의 뜻대로 세계 곳곳을 누빈 손씨는 그 경험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로 여기고 있었다. 그는 꼭 자신처럼 퇴사를 하고 여행을 해야만 소신껏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기준을 따라야하는지 깨닫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직장을 그만두고 배낭여행을 떠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여행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퇴사 전 여행상품을 판매하는 MD로 3년 반 정도 일했는데, 그 정도면 사진으로만 여행지를 구경하는 건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한 군데에서 오랜 시간 근무하시는 분들 보면 진심으로 존경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 분들과 별개로 내 자신이 여행을 떠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적어도 일한 기간 동안은 허투루 일하지 않았거든요. 생각해보니 직장을 다니기 전에도 푹 쉬어본 적이 거의 없더라고요. 대학생일 때는 등록금을 보태기 위해 공강인 날을 포함해서 방학 내내 아르바이트를 했고, 졸업과 동시에 바로 일했어요”
▲ 퇴사를 하기 전, 즉 여행을 행동으로 옮기기 전까지 현실적인 고민도 있었을 것 같아요. 결정을 망설이게 만들었던 고민은 없었나요?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많이 모아놓은 게 아니라서 걱정이 되긴 했어요. 하지만 생계를 걱정하기에는 아직 젊다고 생각했어요. 다시 돌아와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도 하고요. 만약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면 떠날 생각 자체를 못했을 것 같아요”
여행을 떠난 손고운 씨의 모습(사진=손고운 씨 제공)
▲ 누군가는 직장을 그만두면서까지 훌쩍 떠난 여행을 ‘철없는 행동’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20대에는 좋은 회사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30대는 미래를 준비해야 하고,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들이 있는 현실이잖아요
“누군가가 보기에는 결혼을 생각해야 하는 나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런 나이가 정해져 있는 게 맞는 지 의문이 생겨요. 누구랑 만나서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나요? 게다가 누군가에게는 대책 없이 대충 사는 것처럼 보여도 결코 대충 살기 위해 떠난 여행은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죠. 지금까지 바쁘게 살아온 날들이 힘들기는 했어도 헛된 시간들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시간들이잖아요. 그런 것처럼 이 여행 또한 나를 만든 날들의 연장선일 뿐이에요. 잘하거나 잘못했다고 평가할 만한 가치가 될 수는 없죠”
▲ 그렇게 현실을 벗어나 여행을 해도 비용 등과 같은 실질적인 문제도 고려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로 인해 후회를 하지는 않았나요?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가성비 계산을 많이 했어요. 최소한의 비용으로 욕심을 채워 줄 많은 도시를 다녀야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그 때 연연했던 것들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낯선 소음을 들으면서 잠에서 깨고 멍 때리면서 하루를 보냈던 나날들 자체가 큰 경험이었습니다”
▲ 무언가를 소신에 따라 내려놓았던 경험이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나 가치관에 있어 변화를 준 것 같다고 생각하나요?
“세계여행이라는 게 대단한 것도 아니고 나만 다녀온 게 아니어서 말씀드리기가 좀 민망하네요. 사실 떠나기 전에는 내 인생에서 베어낸 7개월의 시간이 나를 얼마나 변화시킬지 기대하지도 않았어요. 그전에 짧게 떠났던 여행에 긴 기간만 더해진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내 가치관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 하루 이틀 지내다보니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일기장에 적지 않고는 버티기 힘들 정도로 내면이 복잡해졌어요. 그렇게 수많은 고민의 밤을 거쳤고, 직종의 변화라는 큰 변화를 겪게 됐어요. 동화작가를 늘 꿈꿔왔는데 이 기회에 도전하기로 했죠. 현재는 동화구연 자격증을 취득했고, 작은 규모의 회사이지만 일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대충 사는 사람들] ①‘무민세대’의 새로운 탄생, “대충 살자”는 새로운 마음
[대충 사는 사람들] ②“나는 유노윤호다” 주문 뒤 숨겨진 현실
[대충 사는 사람들] ③대충 살아도 괜찮나요? 허무주의 vs 재충전 사이에 놓인 ‘대충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