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넷플릭스) [뷰어스=손예지 기자] “내 매력이요? 뭐라고 생각하시는데요?” 배우 주지훈에게 스스로 매력을 꼽아 달라고 요청하면 답 대신 질문이 되돌아온다. “나 혼자 떠들어봐야 보는 사람이 못 느끼면 소용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남의 의견이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유연하게 사고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주지훈의 매력이 무엇인지. 주지훈은 기자에게 누군가 좋아하는 배우를 물으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름이다. 그런 한편 그 이유를 한 마디로 설명하기 쉽지 않은 배우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우선 외적인 요소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모델 출신의 훤칠한 키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목구비는 그를 데뷔부터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했다. 모델 시절 단역으로 몇 번 TV에 얼굴을 비췄던 주지훈이 이름 석 자를 처음 알린 작품은 MBC ‘궁’(2006)이다. 대체 주지훈이 누구기에, 얼굴도 이름도 낯선 배우가 기대작의 주인공을 맡은 것인지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이에 주지훈이 직접 밝힌 뒷 이야기. 오디션을 따로 보지 않고 캐스팅됐다는 설명이다. “재밌는 얘기 해드릴게요. (모델 활동) 당시 매니저 형이 능글맞은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나한테 같이 갈 데가 있다는 거예요. (공식적인) 미팅은 아니라고 했지만 난 눈치가 빨랐거든요. ‘혹시 오디션이면 나도 준비해야하지 않겠냐’고 물었는데 ‘너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니까 그냥 가자’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니 열받네(웃음). 그렇게 만난 분이 카메라 감독님이었어요. 웃고 떠들다가 감독님이 ‘너 연기 한번 해봐’ 시키는 겁니다. 모델 하면서 연기 학원을 다니고 있던 때라 영화 ‘유령’(1999)의 우성이 형 대사를 기억하고 있었죠. 그 자리에서 막 했어요. (대사 중에) 언제 숨을 쉬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눈도 아파서 눈물이 줄줄 나는 채로요. 감독님이 왜 우냐고 물으시기에 창피해서 가만히 있었는데 감정을 갈무리한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웃음). 그렇게 ‘궁’에 캐스팅된 거예요. 나중에 들어보니 내가 MBC ‘한뼘드라마-옛사랑’(2005)에 나왔던 걸 감독님이 보셨다더라고요”  ‘궁’에서 주지훈이 연기한 황태자 이신은 요즘 말로 ‘츤데레’의 정석을 나타낸 캐릭터다. 시니컬한 외모의 주지훈을 만나니 시너지가 배가 됐다. 주지훈의 즉흥 연기에 카메라 감독이 반한 것처럼 ‘궁’의 시청자들이 그에게 빠져든 것도 순식간이었다. 반면 주지훈은 당시의 본인을 “연기도 못하고 촌스러웠다”고 떠올린다. “한동안은 쑥스러워서 재방송도 못 봤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때 내가 저랬지’ 내려놓고 봐요. 그러니까 ‘궁’ 속의 내가 귀엽고 풋풋하고 한편으로 애달프더라고요. 아무것도 모르고 현장에 뚝 떨어져서, 그때는 욕 먹으면서 배웠으니까요. 그렇게 혼자 힘들어했던 시간이 안쓰럽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얼굴에 잔주름이 하나도 없는 게 대단하게 느껴지더라고요. 하하. 그때는 나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애기인 거 있죠” (사진=KBS2 '마왕')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회 속에서 다소 험난한 과정을 거치며 다진 연기력은 바로 다음 작품에서 빛이 났다. ‘궁’을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주지훈은 차기작으로 KBS2 ‘마왕’을 선택했다. ‘마왕’은 사이코메트리와 연쇄살인이라는 생소하고도 묵직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다. 지금에야 장르물이 사랑받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 이에 ‘마왕’은 시청률 싸움에서 힘을 쓰지 못한 대신 뛰어난 작품성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마니아 층을 확보했다. 특히 전작에서의 모습을 깨끗이 지우고 오직 주인공 ‘승하’로서 존재했던 주지훈이 호평 받았다.  ‘마왕’ 속 주지훈은 이제 겨우 두 번째 드라마에 출연한 신예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언제나 무덤덤한 얼굴 뒤로 유년 시절의 아픔을 숨겨야 했던 승하의 삶을 고스란히 그려낸 덕분이다. 기껏해야 조소가 감정 표현의 전부였던 승하의 얼굴 위로 때로는 설렘, 때로는 분노가 스칠 때의 변화를 섬세하게 묘사했다. 그 중에서도 잡채를 먹다가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갑자기 눈물을 쏟던 승하의 모습이 아직까지 선연하다. ‘마왕’은 주지훈이란 배우의 쓰임이 다양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낸 작품이다. 그러나 정작 주지훈은 데뷔 초의 시절에 대해 “생각없이 연기를 시작해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떠올렸다. “원래 영화를 챙겨보지 않는 편이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인터뷰하는데 창피함을 느꼈습니다. 기자님이, 예를 들면 ‘킹덤에 이창 같았어요’라고 하는데 안 봐서 모르겠는 거죠. 그때부터 DVD로 영화를 엄청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극장에 걸린 상업 영화부터 칸 수상작 같은 작품까지요. 그래서 한때는 취향이 그쪽으로만 쏠리기도 했어요. 너무 딥하게 들어가서 익사할 뻔했을 정도로. 지금은 다시 올라온 상태고요. 취향은 변할 수 있는 거긴 한데, 밸런스가 중요한 것 같아요” 이 같은 시행착오는 주지훈의 필모그래피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9)나 ‘키친’(2009)처럼 잔잔한 감성의 영화로 관객들을 만났다가도 ‘나는 왕이로소이다’(2012)와 같은 코미디 영화에서 거침없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SBS ‘다섯 손가락’(2012) ‘가면’(2015) 등 통속극부터 ‘좋은 친구들’(2014) ‘아수라’(2016) 등 느와르 영화까지 여러 장르를 두루 섭렵했다. 이에 재간둥이 저승차사(‘신과 함께’ 시리즈, 2017~2018)였다가 야심가(‘공작’, 2018)로, 또 연쇄살인마(‘암수살인’, 2018)로 맡는 캐릭터마다 상극의 모습을 보여주는 연기 스펙트럼 역시 주지훈이 가진 매력 중 하나다. 지금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에서 조선시대 세자 이창을 맡아 위엄을 뽐내는 동시에 MBC 월화드라마 ‘아이템’의 꼴통검사 강곤으로 화려한 액션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주지훈이다. “(쉬지 않고 활동하는 것이) 재밌어요. 너무 고맙고요. 행운이죠. 좋은 작품을 주는데 하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요. 예전에는 도전과 행동에 앞서 너무 많은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대본에서 남다른 느낌을 받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내 시간을 더 써요. 작품이 확정되기 전이어도 쉬는 날 감독님을 만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고민도 하죠. 그러다 인연이 안 돼서 못하면 다음을 기약하고요” 정우성과 황정민 등 선배들에게 배운 습관이라고 한다. 사람을 잘 믿는다는 주지훈은 “평소에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어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곤 한다. 나보다 많이 살았고 연기했으면 배울 게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달려 들었기 때문”이라며 웃음 지었다. 그가 가르침을 얻는 이는 배우뿐만이 아니다. 제작진에게서도 깨닫는 게 있다. 대표적으로 ‘킹덤’의 김은희 작가와 김성훈 감독을 지목했다. (사진=넷플릭스) “김은희 작가님은 글이 되게 쉬워요.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엄청난 능력이죠. 플레이어(연기자)한테도 쉽고 보는 사람(시청자)에게도 쉬우니까요. (대본이) 전문적인 분야의 이야기도 문맥으로 다 이해가 되고, 그 감정마저 공유되는 글이라 신기했어요. 또 감독님은 우리 사이에서 ‘선비 양반’이라고 불려요. 조곤조곤 말씀하시는데 큰소리 내지 않고도 원하는 걸 다 이뤄내거든요(웃음). 감독님이 시키면 고생스러운 일도 더 잘 해내고 싶어져요. 묘한 마력 같은 게 있다니까요. 사람이 신기한 게, 여행길이 고되어도 좋아하는 사람과 가면 즐겁고, 반대로 초호화 여행도 나와 안 맞는 사람과 함께면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감독님은 모두를 즐겁게 만드는 분이에요. 인간적으로 따라해보고 싶습니다“ 주지훈이 ‘킹덤’을 선택한 데에도 작품을 바라보는 제작진의 관점이 크게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넷플릭스 국내 첫 오리지널이라거나 200억원의 제작비, 전 세계 190개국 동시 공개 등 우리가 ‘킹덤’을 대작(大作)이라고 평가하는, 숫자들에 대해선 크게 와닿은 게 없단다. 더욱이 평소 공포물을 즐기지 않는다는 주지훈이다. 좀비가 등장하는 작품도 챙겨본 게 몇 없다. 영화 ‘월드 워Z’ ‘웜 바디스’(2013) ‘좀비랜드’(2009)를 꼽고 “서정적인 좀비물을 좋아한다”고 했다. 때문에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좀비물 ‘킹덤’에 “이게 될까?”라는 고민을 했다고. 그리고 그 걱정을 깨준 게 ‘킹덤’에 담긴 제작진의 철학이었다. “‘킹덤’에서 제작진이 좀비 특유의 질감을 살리는 게 아니라 세세한 설정에 더 고심했다는 걸 느꼈습니다. 일례로 ‘킹덤’에는 잔인한 장면이 하나도 없어요. 좀비가 인간의 살갗을 물어뜯는다거나 하는 장면이요. 대신 정서적으로 공포감을 주는 게 있죠. 감독님이 직접적인 표현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작품에서 좀비가 공포스러운 동시에 불쌍한 존재이기 때문에 표현을 절제한 것 같아요. 자신의 의도로 그렇게 된 것도 아니고 먹을 게 없어서, 오죽하면… (‘킹덤’에서는 굶주린 백성들이 의도치 않게 인육을 먹고 역병에 걸린다는 설정이다) 작품은 연출가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관점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기거든요. 그래서 ‘킹덤’은 좀비를 괴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게 느껴져요. 대신 우리 이웃이고 부모이고, 불쌍한 사람이라는 거죠” ‘킹덤’에 대한 주지훈의 소감은 그가 극 중 맡은 캐릭터 이창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한다. “이창은 아직 왕은 아니지만 나의 백성들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나라를 잘 이끌어서 백성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만들고 싶었을 텐데, 우리도 잊고 지내던 친구나 친척이 나 모르는 사이에 힘든 일을 겪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잖나. 이창은 그와 비슷하면서도 더 큰 감정을 느꼈을 것”이라면서 “여태 세자 역할을 몇 번 맡아본 덕분에 공부를 했는데 세자는 궁 밖으로 나갈 일이 없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나라의 안 좋은 일들은 고위층까지 전달되지 않는다. 때문에 책으로 본 것과 넓지만 작은 궁 안에서의 세상이 전부였던 이창에게 백성들의 굶주림은 큰 충격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렇듯 캐릭터에 깊이 몰입한 그는 작품에 갖는 애정도 남달라 시청자 반응을 직접 찾아봤을 정도라고 했다.  (사진=넷플릭스) “SNS에 ‘킹덤’이라고 검색해 봤는데 많이들 좋아하는 것 같아요. ‘멋없는 모자쓴 애들은 목이 잘린다’거나 ‘이 사람들은 신발은 벗는데 모자는 벗지 않는다’는 반응들. ‘K-좀비’라는 말도 봤어요. 비슷한 장르의 성공을 거둔 작품을 몇 개 예로 들면서 ‘K-좀비가 넘어섰다’고. 감동적이었죠. 그 사실 여부를 떠나 누군가에게 그만큼의 감동을 줬다는 것 자체가 작품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또 다른 감동을 느꼈습니다. 또 시즌1이 공개되면서 시즌2가 결정됐다는 것도 고무적이에요. IMDB(Internet Movie Database) 등 해외 사이트에서 ‘킹덤’이 유수의 작품들을 씹어 제끼기도 했고요(웃음). 최고 11위까지 찍었거든요. 상위 100개 작품 중 아시아 것은 유일했죠. 자랑 같지만 이 정도면 자긍심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요?” 비단 ‘킹덤’뿐만이 아니라 주지훈은 출연하는 모든 작품에 대해 반응을 꼼꼼히 살펴본다고 했다. “내 생계와 관계됐기 때문”이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관객수나 시청률과 같은 숫자보다 대중의 평가에 초점을 맞추는 태도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발전하려는 의지가 엿보였다. “아직 너무 헷갈려요. 평은 좋은데 관객이 안 드는 작품이 있는 반면, 흥행은 했지만 혹평받는 작품도 있잖아요. 어떤 게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생각하는 건, 해외여행 가면 그림 잘 몰라도 미술관 꼭 가잖아요. 미술은 아무것도 모르는 나인데 수많은 작품 중에 분명히 내 발길을 잡아 끄는 게 있단 말이죠. 검색해 보면 여지 없이 명작이에요. 카페에 갔는데 내가 즐겨듣지 않는 장르의 음악이 들려요. 좋아서 검색해보면 역시 그 장르의 스테디셀러이고요. 좋게 느껴지는 데는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어떤 평가에도 변명하지 않고 받아들이려고 해요” 하지만 명작을 만드는 과정은 고되기 마련이다. 평소 ‘그냥 하는 거지, 뭐’란 말을 달고 살았다는 주지훈이지만 그 역시 스트레스에 괴로워 하기도 한다. “멘탈은 강해지지 않는다. 그저 나를 믿을 뿐”이라는 주지훈에게도 최근 무너질 뻔했던 순간이 찾아왔다. ‘킹덤’ 영신 역의 배우 김성규와 대화를 나눴을 때다. “성규가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무섭고 어렵다’기에 ‘싫든 좋든 선택해서 온 것인데 무섭다고 못 해낼 거냐. 고민하지 말라’고 답하는데 순간 현기증이 훅 오는 거예요. 평소에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그냥 하는 거지, 뭐’ 얘기해왔는데 그게 나를 보호하기 위한 막이었나봐요. (김성규에게 이야기하면서) 몇 년 만에 방어기제가 깨진 거죠. 이를 계기로 나 자신에 대한 A/S를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쉬는 날 감정 갈무리 잘 하고 나를 위해 시간을 쓰고, 현장에서도 더 솔직해지자고요” (사진=넷플릭스) 이렇게 말하면서 주지훈은 촬영할 때마다 감독의 ‘레디, 액션’ 사인이 슬로우 모션처럼 들린다고 고백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이 동작을 먼저 할까?’ ‘상대 배우를 먼저 쳐다볼까?’ 오만가지 계산이 머릿속을 스친다는 것. 연기를 시작한 지도 어언 13년, 매사 여유럽고 능청스러운 태도로 일관하는 듯 보였는데 그 이면에는 우리가 모르는 고충이 있었다. 한편으로 이만큼이나 연기를 어렵게 생각한다는 것은 주지훈이 오랜 경력에도 불구하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도 한다. 작품마다 치열한 고민 끝에 나오는 연기는 화면 너머 그대로 전해지기 마련, 이는 곧 대중이 배우 주지훈에게 끊임없이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된다. “사실 ‘궁’ 때는 (인기가) 버겁고 무겁고, 무서웠어요. 갑자기 관심을 받으니까 대처하는 방법 자체를 몰랐죠. 지금은 지금은 경력과 시간이 쌓이면서 상황에 맞게 고마움도 표현하고, 동시에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포인트도 찾았어요. 내가 원한다고 오는 것도, 또 가란다고 가는 것도 아닌 게 인기잖아요. 진심으로 고마울 뿐입니다. 언젠가는 사라질 거고 그러다 또 돌아올 것이라고, 희망적으로 생각해요. 선배들이 TV에 나와서 ‘인기에 연연하지 말고 본질에 집중하라’던 말이 피부에 와닿고 있습니다”

[마주보기] 주지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손예지 기자 승인 2019.02.26 09:49 | 최종 수정 2138.04.23 00:00 의견 0

 

(사진=넷플릭스)
(사진=넷플릭스)

[뷰어스=손예지 기자] “내 매력이요? 뭐라고 생각하시는데요?”

배우 주지훈에게 스스로 매력을 꼽아 달라고 요청하면 답 대신 질문이 되돌아온다. “나 혼자 떠들어봐야 보는 사람이 못 느끼면 소용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남의 의견이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유연하게 사고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주지훈의 매력이 무엇인지. 주지훈은 기자에게 누군가 좋아하는 배우를 물으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름이다. 그런 한편 그 이유를 한 마디로 설명하기 쉽지 않은 배우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우선 외적인 요소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다. 모델 출신의 훤칠한 키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목구비는 그를 데뷔부터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했다. 모델 시절 단역으로 몇 번 TV에 얼굴을 비췄던 주지훈이 이름 석 자를 처음 알린 작품은 MBC ‘궁’(2006)이다. 대체 주지훈이 누구기에, 얼굴도 이름도 낯선 배우가 기대작의 주인공을 맡은 것인지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이에 주지훈이 직접 밝힌 뒷 이야기. 오디션을 따로 보지 않고 캐스팅됐다는 설명이다.

“재밌는 얘기 해드릴게요. (모델 활동) 당시 매니저 형이 능글맞은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나한테 같이 갈 데가 있다는 거예요. (공식적인) 미팅은 아니라고 했지만 난 눈치가 빨랐거든요. ‘혹시 오디션이면 나도 준비해야하지 않겠냐’고 물었는데 ‘너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니까 그냥 가자’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니 열받네(웃음). 그렇게 만난 분이 카메라 감독님이었어요. 웃고 떠들다가 감독님이 ‘너 연기 한번 해봐’ 시키는 겁니다. 모델 하면서 연기 학원을 다니고 있던 때라 영화 ‘유령’(1999)의 우성이 형 대사를 기억하고 있었죠. 그 자리에서 막 했어요. (대사 중에) 언제 숨을 쉬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눈도 아파서 눈물이 줄줄 나는 채로요. 감독님이 왜 우냐고 물으시기에 창피해서 가만히 있었는데 감정을 갈무리한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웃음). 그렇게 ‘궁’에 캐스팅된 거예요. 나중에 들어보니 내가 MBC ‘한뼘드라마-옛사랑’(2005)에 나왔던 걸 감독님이 보셨다더라고요” 

‘궁’에서 주지훈이 연기한 황태자 이신은 요즘 말로 ‘츤데레’의 정석을 나타낸 캐릭터다. 시니컬한 외모의 주지훈을 만나니 시너지가 배가 됐다. 주지훈의 즉흥 연기에 카메라 감독이 반한 것처럼 ‘궁’의 시청자들이 그에게 빠져든 것도 순식간이었다. 반면 주지훈은 당시의 본인을 “연기도 못하고 촌스러웠다”고 떠올린다.

“한동안은 쑥스러워서 재방송도 못 봤어요. 하지만 이제는 ‘그때 내가 저랬지’ 내려놓고 봐요. 그러니까 ‘궁’ 속의 내가 귀엽고 풋풋하고 한편으로 애달프더라고요. 아무것도 모르고 현장에 뚝 떨어져서, 그때는 욕 먹으면서 배웠으니까요. 그렇게 혼자 힘들어했던 시간이 안쓰럽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얼굴에 잔주름이 하나도 없는 게 대단하게 느껴지더라고요. 하하. 그때는 나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애기인 거 있죠”

(사진=KBS2 '마왕')
(사진=KBS2 '마왕')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회 속에서 다소 험난한 과정을 거치며 다진 연기력은 바로 다음 작품에서 빛이 났다. ‘궁’을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주지훈은 차기작으로 KBS2 ‘마왕’을 선택했다. ‘마왕’은 사이코메트리와 연쇄살인이라는 생소하고도 묵직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다. 지금에야 장르물이 사랑받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 이에 ‘마왕’은 시청률 싸움에서 힘을 쓰지 못한 대신 뛰어난 작품성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마니아 층을 확보했다. 특히 전작에서의 모습을 깨끗이 지우고 오직 주인공 ‘승하’로서 존재했던 주지훈이 호평 받았다. 

‘마왕’ 속 주지훈은 이제 겨우 두 번째 드라마에 출연한 신예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언제나 무덤덤한 얼굴 뒤로 유년 시절의 아픔을 숨겨야 했던 승하의 삶을 고스란히 그려낸 덕분이다. 기껏해야 조소가 감정 표현의 전부였던 승하의 얼굴 위로 때로는 설렘, 때로는 분노가 스칠 때의 변화를 섬세하게 묘사했다. 그 중에서도 잡채를 먹다가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갑자기 눈물을 쏟던 승하의 모습이 아직까지 선연하다. ‘마왕’은 주지훈이란 배우의 쓰임이 다양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낸 작품이다. 그러나 정작 주지훈은 데뷔 초의 시절에 대해 “생각없이 연기를 시작해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떠올렸다.

“원래 영화를 챙겨보지 않는 편이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인터뷰하는데 창피함을 느꼈습니다. 기자님이, 예를 들면 ‘킹덤에 이창 같았어요’라고 하는데 안 봐서 모르겠는 거죠. 그때부터 DVD로 영화를 엄청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극장에 걸린 상업 영화부터 칸 수상작 같은 작품까지요. 그래서 한때는 취향이 그쪽으로만 쏠리기도 했어요. 너무 딥하게 들어가서 익사할 뻔했을 정도로. 지금은 다시 올라온 상태고요. 취향은 변할 수 있는 거긴 한데, 밸런스가 중요한 것 같아요”

이 같은 시행착오는 주지훈의 필모그래피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9)나 ‘키친’(2009)처럼 잔잔한 감성의 영화로 관객들을 만났다가도 ‘나는 왕이로소이다’(2012)와 같은 코미디 영화에서 거침없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SBS ‘다섯 손가락’(2012) ‘가면’(2015) 등 통속극부터 ‘좋은 친구들’(2014) ‘아수라’(2016) 등 느와르 영화까지 여러 장르를 두루 섭렵했다. 이에 재간둥이 저승차사(‘신과 함께’ 시리즈, 2017~2018)였다가 야심가(‘공작’, 2018)로, 또 연쇄살인마(‘암수살인’, 2018)로 맡는 캐릭터마다 상극의 모습을 보여주는 연기 스펙트럼 역시 주지훈이 가진 매력 중 하나다. 지금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에서 조선시대 세자 이창을 맡아 위엄을 뽐내는 동시에 MBC 월화드라마 ‘아이템’의 꼴통검사 강곤으로 화려한 액션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주지훈이다.

“(쉬지 않고 활동하는 것이) 재밌어요. 너무 고맙고요. 행운이죠. 좋은 작품을 주는데 하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요. 예전에는 도전과 행동에 앞서 너무 많은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대본에서 남다른 느낌을 받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내 시간을 더 써요. 작품이 확정되기 전이어도 쉬는 날 감독님을 만나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고민도 하죠. 그러다 인연이 안 돼서 못하면 다음을 기약하고요”

정우성과 황정민 등 선배들에게 배운 습관이라고 한다. 사람을 잘 믿는다는 주지훈은 “평소에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어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곤 한다. 나보다 많이 살았고 연기했으면 배울 게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달려 들었기 때문”이라며 웃음 지었다. 그가 가르침을 얻는 이는 배우뿐만이 아니다. 제작진에게서도 깨닫는 게 있다. 대표적으로 ‘킹덤’의 김은희 작가와 김성훈 감독을 지목했다.

(사진=넷플릭스)
(사진=넷플릭스)

“김은희 작가님은 글이 되게 쉬워요.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엄청난 능력이죠. 플레이어(연기자)한테도 쉽고 보는 사람(시청자)에게도 쉬우니까요. (대본이) 전문적인 분야의 이야기도 문맥으로 다 이해가 되고, 그 감정마저 공유되는 글이라 신기했어요. 또 감독님은 우리 사이에서 ‘선비 양반’이라고 불려요. 조곤조곤 말씀하시는데 큰소리 내지 않고도 원하는 걸 다 이뤄내거든요(웃음). 감독님이 시키면 고생스러운 일도 더 잘 해내고 싶어져요. 묘한 마력 같은 게 있다니까요. 사람이 신기한 게, 여행길이 고되어도 좋아하는 사람과 가면 즐겁고, 반대로 초호화 여행도 나와 안 맞는 사람과 함께면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감독님은 모두를 즐겁게 만드는 분이에요. 인간적으로 따라해보고 싶습니다“

주지훈이 ‘킹덤’을 선택한 데에도 작품을 바라보는 제작진의 관점이 크게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넷플릭스 국내 첫 오리지널이라거나 200억원의 제작비, 전 세계 190개국 동시 공개 등 우리가 ‘킹덤’을 대작(大作)이라고 평가하는, 숫자들에 대해선 크게 와닿은 게 없단다. 더욱이 평소 공포물을 즐기지 않는다는 주지훈이다. 좀비가 등장하는 작품도 챙겨본 게 몇 없다. 영화 ‘월드 워Z’ ‘웜 바디스’(2013) ‘좀비랜드’(2009)를 꼽고 “서정적인 좀비물을 좋아한다”고 했다. 때문에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좀비물 ‘킹덤’에 “이게 될까?”라는 고민을 했다고. 그리고 그 걱정을 깨준 게 ‘킹덤’에 담긴 제작진의 철학이었다.

“‘킹덤’에서 제작진이 좀비 특유의 질감을 살리는 게 아니라 세세한 설정에 더 고심했다는 걸 느꼈습니다. 일례로 ‘킹덤’에는 잔인한 장면이 하나도 없어요. 좀비가 인간의 살갗을 물어뜯는다거나 하는 장면이요. 대신 정서적으로 공포감을 주는 게 있죠. 감독님이 직접적인 표현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작품에서 좀비가 공포스러운 동시에 불쌍한 존재이기 때문에 표현을 절제한 것 같아요. 자신의 의도로 그렇게 된 것도 아니고 먹을 게 없어서, 오죽하면… (‘킹덤’에서는 굶주린 백성들이 의도치 않게 인육을 먹고 역병에 걸린다는 설정이다) 작품은 연출가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관점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기거든요. 그래서 ‘킹덤’은 좀비를 괴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게 느껴져요. 대신 우리 이웃이고 부모이고, 불쌍한 사람이라는 거죠”

‘킹덤’에 대한 주지훈의 소감은 그가 극 중 맡은 캐릭터 이창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한다. “이창은 아직 왕은 아니지만 나의 백성들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나라를 잘 이끌어서 백성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만들고 싶었을 텐데, 우리도 잊고 지내던 친구나 친척이 나 모르는 사이에 힘든 일을 겪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잖나. 이창은 그와 비슷하면서도 더 큰 감정을 느꼈을 것”이라면서 “여태 세자 역할을 몇 번 맡아본 덕분에 공부를 했는데 세자는 궁 밖으로 나갈 일이 없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나라의 안 좋은 일들은 고위층까지 전달되지 않는다. 때문에 책으로 본 것과 넓지만 작은 궁 안에서의 세상이 전부였던 이창에게 백성들의 굶주림은 큰 충격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렇듯 캐릭터에 깊이 몰입한 그는 작품에 갖는 애정도 남달라 시청자 반응을 직접 찾아봤을 정도라고 했다. 

(사진=넷플릭스)
(사진=넷플릭스)

“SNS에 ‘킹덤’이라고 검색해 봤는데 많이들 좋아하는 것 같아요. ‘멋없는 모자쓴 애들은 목이 잘린다’거나 ‘이 사람들은 신발은 벗는데 모자는 벗지 않는다’는 반응들. ‘K-좀비’라는 말도 봤어요. 비슷한 장르의 성공을 거둔 작품을 몇 개 예로 들면서 ‘K-좀비가 넘어섰다’고. 감동적이었죠. 그 사실 여부를 떠나 누군가에게 그만큼의 감동을 줬다는 것 자체가 작품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또 다른 감동을 느꼈습니다. 또 시즌1이 공개되면서 시즌2가 결정됐다는 것도 고무적이에요. IMDB(Internet Movie Database) 등 해외 사이트에서 ‘킹덤’이 유수의 작품들을 씹어 제끼기도 했고요(웃음). 최고 11위까지 찍었거든요. 상위 100개 작품 중 아시아 것은 유일했죠. 자랑 같지만 이 정도면 자긍심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요?”

비단 ‘킹덤’뿐만이 아니라 주지훈은 출연하는 모든 작품에 대해 반응을 꼼꼼히 살펴본다고 했다. “내 생계와 관계됐기 때문”이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관객수나 시청률과 같은 숫자보다 대중의 평가에 초점을 맞추는 태도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발전하려는 의지가 엿보였다.

“아직 너무 헷갈려요. 평은 좋은데 관객이 안 드는 작품이 있는 반면, 흥행은 했지만 혹평받는 작품도 있잖아요. 어떤 게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생각하는 건, 해외여행 가면 그림 잘 몰라도 미술관 꼭 가잖아요. 미술은 아무것도 모르는 나인데 수많은 작품 중에 분명히 내 발길을 잡아 끄는 게 있단 말이죠. 검색해 보면 여지 없이 명작이에요. 카페에 갔는데 내가 즐겨듣지 않는 장르의 음악이 들려요. 좋아서 검색해보면 역시 그 장르의 스테디셀러이고요. 좋게 느껴지는 데는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어떤 평가에도 변명하지 않고 받아들이려고 해요”

하지만 명작을 만드는 과정은 고되기 마련이다. 평소 ‘그냥 하는 거지, 뭐’란 말을 달고 살았다는 주지훈이지만 그 역시 스트레스에 괴로워 하기도 한다. “멘탈은 강해지지 않는다. 그저 나를 믿을 뿐”이라는 주지훈에게도 최근 무너질 뻔했던 순간이 찾아왔다. ‘킹덤’ 영신 역의 배우 김성규와 대화를 나눴을 때다.

“성규가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무섭고 어렵다’기에 ‘싫든 좋든 선택해서 온 것인데 무섭다고 못 해낼 거냐. 고민하지 말라’고 답하는데 순간 현기증이 훅 오는 거예요. 평소에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그냥 하는 거지, 뭐’ 얘기해왔는데 그게 나를 보호하기 위한 막이었나봐요. (김성규에게 이야기하면서) 몇 년 만에 방어기제가 깨진 거죠. 이를 계기로 나 자신에 대한 A/S를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쉬는 날 감정 갈무리 잘 하고 나를 위해 시간을 쓰고, 현장에서도 더 솔직해지자고요”

(사진=넷플릭스)
(사진=넷플릭스)

이렇게 말하면서 주지훈은 촬영할 때마다 감독의 ‘레디, 액션’ 사인이 슬로우 모션처럼 들린다고 고백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이 동작을 먼저 할까?’ ‘상대 배우를 먼저 쳐다볼까?’ 오만가지 계산이 머릿속을 스친다는 것. 연기를 시작한 지도 어언 13년, 매사 여유럽고 능청스러운 태도로 일관하는 듯 보였는데 그 이면에는 우리가 모르는 고충이 있었다. 한편으로 이만큼이나 연기를 어렵게 생각한다는 것은 주지훈이 오랜 경력에도 불구하고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기도 한다. 작품마다 치열한 고민 끝에 나오는 연기는 화면 너머 그대로 전해지기 마련, 이는 곧 대중이 배우 주지훈에게 끊임없이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된다.

“사실 ‘궁’ 때는 (인기가) 버겁고 무겁고, 무서웠어요. 갑자기 관심을 받으니까 대처하는 방법 자체를 몰랐죠. 지금은 지금은 경력과 시간이 쌓이면서 상황에 맞게 고마움도 표현하고, 동시에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포인트도 찾았어요. 내가 원한다고 오는 것도, 또 가란다고 가는 것도 아닌 게 인기잖아요. 진심으로 고마울 뿐입니다. 언젠가는 사라질 거고 그러다 또 돌아올 것이라고, 희망적으로 생각해요. 선배들이 TV에 나와서 ‘인기에 연연하지 말고 본질에 집중하라’던 말이 피부에 와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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