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드림오브베스트 제공
“JTBC ‘슈가맨’이 아니었더라면 평범한 주부로 지내고 있었을 겁니다. 사실 ‘슈가맨’ 섭외요청 때 나가지 않으려 했어요. 지금으로도 충분히 좋았고, 18년 전 나에 대한 대중의 기억, 그 환상들을 굳이 깨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막상 출연하고 보니 있는 그대로, 지금의 나를 좋아해주셨어요. 더욱이 무대 위에서 내가 왜 가수였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지금껏 아이들 육아에 혼신을 다하다가 공연하는 것, 누구의 엄마가 아닌 내 이름으로 있는 순간들이 모두 새로운 에너지가 돼요”
스페이스A 원년보컬 김현정이 돌아왔다. 20년 만에 솔로로 나섰다. 전성기 시절 가장 예뻤고 가장 노래를 잘 하던 때의 자신을 대중이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출연을 고사하기도 했다는 그. 그러나 몸이 무대를 기억하고 있었고 심장이 노래하길 원하고 있었다. 그 감각을 따라 돌아온 김현정은 가수로,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갈 수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신곡 ‘헤어지는 날 비가 내리면’을 발표하고 대중 앞으로 돌아온 그를 지난 7일 만났다.
‘슈가맨’ 출연 당시에도 옛 멤버들의 연락 끝에 겨우 출연을 결정한 그다. 홀로 활동을 해왔던 것도 아니고 여타 팀처럼 불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함께가 아닌 솔로로 나온 이유가 더욱 궁금한 상황. 김현정은 “동생들과 같이 하고 싶었지만 다들 각자의 삶이 있어서 여의치 않았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솔로로 나선 이유 중 멤버들과 함께 활동하는 때를 고려한 것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그는 “내가 먼저 출격해서 활동하고 대중의 기억을 꺼내고 길을 열어두면 언젠가 동생들과 함께 활동 하는 때 조금 더 수월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있어요. 그리고 솔로 활동을 해도 공연하거나 하면 스페이스A 때 히트곡들을 부르게 돼서 제이슨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다른 래퍼와 무대에 서는 것보단 함께 한 멤버와 서는 게 더 좋기도 하고요”라고 설명했다.
오랜만의 무대가 여전히, 아주 많이 재미있다는 그다. 11살 아들, 8살 딸의 육아에 올인하던 자신의 삶이 가수 활동으로 확대됐기 때문. 두 가지 일을 하며 지치기보다 집에서도, 무대 위에서도 더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는 그가 솔로곡으로 선택한 곡은 ‘헤어지는 날 비가 내리면’이다. 이 곡은 먼데이키즈 이진성, 한상원 작곡가가 만든 곡으로 10여 개 곡 중 오직 김현정의 느낌으로 선택했다고 알려진다.
“‘헤어지는 날 비가 내리면’은 말 그대로 이별하는 날 비가 오는 풍경이에요. 비가 그치면 상대와 관계가 완전히 정리됐으면 하는 마음을 그린 곡이죠. 십여 곡 중 신중하게 결정했어요. 사실 제 느낌대로 골랐어요. 원래 남자키였던 곡인데 나와 잘 맞겠다 싶어서 여자키로 바꿔봤죠. ‘헤어지는 날 비가 내리면’을 만들어주신 분들도 여자키로 바꾼 곡을 듣더니 ‘이 곡이 이런 느낌이었구나’ 할 정도였어요. 창법도 나와 맞았어요. 무턱대고 내 노래와 상관없이 요즘 노래 유행으로 갈래요 하고 싶진 않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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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 응원 없었더라면…
심사숙고 끝에 선택한 곡을 내놓자 동료가수들 반응 역시 남다르다. 괜찮다며 여전히 노래를 잘한다는 말을 듣고 있다는 김현정이다. 이 신곡과 함께 화제가 된 곡 또한 김현정의 가창력을 다시 한 번 실감하도록 만든다. 수많은 실력파 보컬들이 커버한 박효신이 ‘굿바이’를 무려 5키나 높여 부른 것. 박효신 팬이기도 하다는 그는 MBC ‘복면가왕’을 비롯해 평소 자신이 좋아한 노래들이 모두 옛 곡으로 분류되는 것에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고. 그래서 내놓은 커버곡에 대중의 호응도 뜨겁다. 무엇보다 김현정의 가창력이 아직 ‘살아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에 대해 김현정은 20대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는 여전히 스페이스A 노래만큼은 언제 어느 때고 완벽하게 부를 수 있지만 자다가 일어나서도 아무 노래든지 불러 제꼈던 20대 때와 다른 목 상태를 느낀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현정은 공백기가 길었던 몇몇 가수들이 목이 망가져 대중을 실망시키는 것과 달리 감탄을 자아낸다. 이에 대해 그는 “어떤 분이 그동안 노래를 안해서 목이 냉동보관상태가 된 것 아니냐고 좋은 말씀을 해주시더라”면서 “비결은 딱히 없지만 목사님과 결혼해서 술을 안 마시는 게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라고 미소지었다.
무엇보다 이번 앨범은 스페이스A 첫 제작자인 드림오브베스트 이병두 대표가 함께 손잡고 제작한 것이기에 의미가 남다르다. ‘슈가맨’ 이후 공연에 목말라 개별 활동을 하기도 했다는 김현정은 이 대표가 업무 관계를 넘어 인간적인 관계로 자신을 아끼고 지원해줬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더욱이 스페이스A 활동 당시의 추억은 두 사람을 더욱 끈끈하게 이어주는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김현정은 “대표님 덕에 스페이스A가 잘 됐던 것”이라면서 당시 샵, 코요태, 스페이스A 중 가장 잘 나갔던 그룹으로 동료이기도 했던 그들에게 밥을 사주고 차비를 대줄 만큼 잘 나갔던 시절을 회상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잘 나가던 그룹을 홀연히 떠났을까. 그는 “스스로 자만했던 것”이라 솔직하게 밝혔다. 그룹 맏이로 동생들을 챙기는 것도 버거웠던 상황에서 활동이 바빠 학교생활도 여의치 못한 상황이 그를 일반인으로 돌아가고 싶게 만들었다. 먼 길을 돌아 뒤늦게야 자신의 할 일이 노래였다는 것을 알았다는 그는 ‘노래할 때 가장 행복했다’는 사실도 함께 체감했다.
그렇기에 멈춰 있던 발걸음을 뗀 지금 가장 고마운 존재는 가족, 그리고 팬들이다. 특히 팬들은 자신이 스페이스A 1집 활동 후 가수 생활을 그만뒀을 때에도 ‘현정이를 기다리는 돌하르방’이란 팬페이지까지 만들어 그를 향한 응원을 이어갔다. 그가 ‘슈가맨’에 출연했을 때 많은 이들이 “정말 돌하르방이 될 뻔했다”면서 그의 귀환을 환영했다. 앨범 발매가 늦어질 때에도 “18년을 기다렸는데 조금 더 못 기다리겠냐”며 그에게 힘을 북돋웠다. 묵묵한 응원, 활성화된 팬카페 등을 보며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는 그는 “내가 이렇게 대우를 받아도 되나 싶어요.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도 아닌데 잊지 않고 찾아와주는 것에 감사합니다”라면서 “덕분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노래할 수 있는 날까지 계속 노래하고 싶어요”라고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