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겨레출판)
“과학 앞에 무력한 인간이 아니라
생로병사에 무조건 체념하는 인간이 아니라
서로서로를 구제해주는 인간.
과학을 현명하게 이용해 곁사람의 삶과 죽음을 함께 기억해주는 증인.
우리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
과학은 인간을 위한 도구여야 한다. ‘과학 위의 인간’을 지향하며 인간을 깊이 이해하기 위한 명철한 도구로서 과학을 대해온 과학저술가 정인경의 책 ‘내 생의 중력에 맞서’는 생로병사의 운명에 더 이상 무력감을 느낄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한다.
책은 1980년대에 출간된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비롯해서 최신 과학책 70여 권을 독파할 수 있게 해준다. 방대한 양의 책을 사용해 기술한 이 책을 한 권 읽고 나면 생로병사 앞에 더욱 지적으로 성숙하고 성장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 생의 충력에 맞서’ 1부는 ‘자존’에 대한 이야기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은 무엇이며, 존엄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타인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감정은 어떻게 변화하고 서로가 무엇을 기대하는지 등을 다룬다.
2부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포용, 이해, 양육, 성적 끌림과 자율성, 번식 등을 다룬다. 사랑이라고 불리는 모든 감정들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하는 파트다. 3부는 ‘행복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로, 일과 놀이를 통한 만족감, 행복이란 감정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 성격과 행복의 상관관계 등을 다룬다. 이 파트를 읽고 나면 실패와 불행을 두려워하지 않고, 인생에 호기롭게 나를 내맡기는 용기를 얻게 된다.
4부는 ‘건강과 노화’, 즉 자연과 시간 앞에서 인간에게 벌어지는 총체적인 일들을 다룬다. 시간과 기억, 망각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더욱 건강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 질병과 나이 듦을 받아들이는 방법 등을 말한다. 보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고통을 마주하게 하는 파트이다.
마지막으로 5부는 ‘생명과 죽음’을 다룬다. 특별히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위기 등을 언급하며, 인류와 환경의 공동체적 운명과 위기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 죽음 앞에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등을 설파한다. 과학이 “인간을 해방시키는 언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정인경 작가의 ‘내 생의 중력에 맞서’를 읽고 나면 더 이상 죽음과 노화, 고통이 발목을 잡는 굴레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 지속될 삶 속에서 우리는 기쁘게 도전하는 사람으로 변화할 것이다.
‘내 생의 중력에 맞서’는 ‘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에서 시작해 ‘죽음과 고통’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이색적인 책들로 마무리된다. 총 5부에 걸친 이 긴 이야기의 중요한 전제는 ‘너’와 함께하는 ‘나’이다. 즉, 탄생부터 죽음까지 정인경 작가는 ‘우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자신의 존엄함을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확인하며, 우리의 신경계, 뇌는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끔 진화했다. 우리의 감정 또한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 아니며 사회적 실재이자 문화적 공유물이다. 기쁨과 만족, 불안감과 모멸감 등을 느끼는 배경에는 외부의 영향(일의 결과나 타인의 반응 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개인에게 들이닥치는 죽음에 ‘우리’가 갖는 가치는 무엇일까? 저자는 ‘사람다운 죽음’ ‘뜻깊은 죽음’이란, 자신의 고통을 타인과 나눔으로써 ‘우연과 마주침, 받아들임’의 연속인 삶을 함께 철학하는 계기로 만드는 것, 내 곁의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 것, 나의 고통과 죽음이 의료 현실을 깨우치는 시작이 되어 새롭게 도전하게끔 만드는 것, 그렇게 타인의 생명에 기여하는 죽음이라고 이야기한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서로의 삶과 죽음을 목격하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 생의 모든 순간에, 죽음의 순간에 나 혼자 있지 않고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 그것만큼 인간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편안하게 해소해주는 진실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