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폭풍성장 진격의 '미래에셋'
2. 독 품은 반전의 '한투'
3. 변화한 아픈 손가락 '삼성'
4. 울타리 넘은 저력의 'NH'
5. 실리 또 실리의 '키움'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대표이사 회장


2015년 12월. 꿈에 그리던 대우증권을 품은 것은 다크호스 미래에셋이었다. 이듬해 2016년 또 하나의 대어급 매물 현대증권은 KB금융으로 넘어간다. 대형화를 위해 혼신의 힘을 쏟던 한국투자증권은 그렇게 두 번 울었다.

증권업계의 지각변동을 두고 금융권 안팎에선 1등 회사 대우를 품은 미래에셋의 중장기 독주를 예상했다. 당시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단순히 대우증권이란 회사를 산 게 아니다. 한국 자본시장의 중심, 나아가 시장을 통째로 산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앞선 2005년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해 퀀텀점프의 경험을 해봤던 한국투자금융지주로선 앞선 두 번의 빅딜 실패로 의기소침했다. 더구나 대우를 인수한 미래에셋 박현주 사단의 핵심 멤버들은 과거 동원증권(현 한투)이 키워낸 인재들이다. 그들이 돌연 회사를 떠나면서 받았던 상처와 배신감은 컸다.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조차 자신의 평전에 당시 쓰라렸던 기억을 언급했을 정도다.

대형화의 필요조건이던 두 빅딜을 놓친 김남구 회장(당시 부회장)은 그러나 마음을 다잡았다.

이후 '반전의' 한투가 시작된다. 추락한 자존심을 되찾는 길은 오직 숫자. 미래에셋이 대우와의 합병과정 속에 겪었던 시행착오, KB금융이 현대증권을 품는데 썼던 에너지와 시간을 한투는 더 없는 기회로 삼았다. 그렇게 독을 품은 한투는 2016년부터 2021년까지 단 한차례(2020년) 빼곤 5년간 순이익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 전 부문 경쟁력 톱클라스...선명해진 IB 파워

한투는 지난해 연결기준 1조2889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미래에셋(1조4855억원)에 200억원 가량 모자른다. 다만 순이익은 1조4474억원으로 미래에셋을 제치고 1위 고지를 탈환했다. 증시 활황에 따른 위탁매매 분야에서 선방한 가운데 IB 전반의 도드라진 실적이 타사를 압도했다.

빅5사 중 한투와 미래에셋, NH는 확실하게 IB 중심 회사로 탈바꿈했다. 과거 시황에 따라 실적이 요동쳤던 위탁매매 부문 비중은 크게 줄었다. 순이익 1위인 한투의 수탁수수료 수익은 키움, 미래에셋, 삼성, NH, KB, 신한에 이어 7위. 바로 이것이 타사대비 향후 한투의 시황과 무관한 이익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요인이다.

누가 뭐래도 한투의 저력은 IB에서 나온다. 돈이 되는 건 다 한다. 지난해 한투의 IB 수익(인수주선, 매수 및 합병, 채무보증 등)은 전년대비 47% 늘어난 6116억원이다. 기업공개(IPO)와 회사채 발행, M&A, 부동산PF 등의 비즈니스로 일궈낸 수익이다. 여타 대형사 IB 수익이 2000억~4000억원대인데 비해 한투의 6000억원대. 군계일학이다.

주목할 점은 여타 대형사들의 IB관련 수익 절반 이상이 채무보증, 즉 부동산PF 수익이란 점에서 한투의 차별화는 도드라진다. 한투의 채무보증 수익은 1234억원에 불과하다. 경쟁사 대비 확연히 적다. 향후 부동산 시황에 대한 우려가 짙어지는 요즘 한투의 IB 경쟁력을 비교우위에 놓게 되는 이유 중 하나다.

■ 김남구의 용병술...안정된 거버넌스

한투의 성공 DNA는 어디서 나올까. 금융투자업계 안팎에선 한투의 거버넌스와 김남구 회장의 용병술에 후한 점수를 주는 편이다. 김남구 회장의 오너십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다. 박현주 회장이 미래에셋을 강력한 오너십으로 끌어왔다면 김남구 회장은 각 대표들에게 권한을 최대한 위임하는 스타일이다.

거버넌스는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주주, 경영진, 근로자 등의 이해 관계를 조정하고 규율하는 제도적 장치와 운영기구다. 기업이 의사결정을 해가는 과정에서 권한과 책임, 위험과 보상을 어떻게 배분하느냐의 잣대다. 김 부회장은 특히 대부분의 의사결정을 바텀업(Bottom-up)으로 해왔다. 실무자 의견을 먼저 듣고 방향을 묻는다. 빅 딜, 큰 결정은 그가 내리지만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에 실무진과 임원들의 의견이 그대로 녹아 있다. 누구는 이런 스타일을 '그림자 경영'이라 한다. 조정호 메리츠지주 회장의 경영 스타일과 유사점을 찾는 이들도 있다.

김 회장의 용병술과 인재 욕심도 종종 회자되는 부분이다. 창업주인 김재철 회장의 영향이기도 한데 사람, 인재에 대한 욕심이 과할 정도란 평가다. 한투 출신 임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인재라고 판단이 되면 일단 영입한다. 삼고초려는 할지언정 경쟁사 이상의 후한 연봉 등으로 설득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또한 맡길만한 마땅한 보직이 없는 경우라도 일단 데려온 뒤 당장 긴요한 일을 맡기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다. 물론 결국은 수년내 그를 크게 중용하는 스타일이라는 전언이다. 김주원 카카오뱅크 이사회 의장, 이용우 국회의원(전 한국카카오 공동대표, 한국카카오은행 공동 대표 등), 조홍래 한투운용 대표 등이 대표적이다. 한투에서 12년간 대표이사를 역임한 유상호 부회장 역시 증권업계 최장수 CEO로 알려져 있다.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