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빅5의 한 해 순이익이 7조원에 육박한다. 5~6년 전 꾸역꾸역 2000억~3000억원 벌던 시대는 지났다. 각 사별 순익은 어느덧 1조원을 넘나든다. 금융그룹내 큰 형(은행)과 작은 형(보험)에 치이던 것도 옛 말이다. 수년내 훌쩍 커버린 증권사들. 지금같은 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선 이익의 구조를 봐야 한다. 뷰어스는 이익 상위 5개사의 성장전략, 이익구조, 거버넌스, 조직문화 틀로 경쟁력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1. 폭풍성장 진격의 '미래에셋'
2. 독 품은 반전의 '한투'
3. 변화한 아픈 손가락 '삼성'
4. 울타리 넘은 저력의 'NH'
5. 실리 또 실리의 '키움'
박현주 미래에셋증권 홍콩 회장 겸 글로벌경영전략고문(GISO)
당장은 돈이 되지만 투자철학과 맞지 않으면 과감히 버린다. 늘 새로운 시장, 상품을 좇는다. 참모들이 말려도 소용없다. 그러니 그의 비즈니스에는 늘 '업계 최초'가 붙는다. 성공도 실패도 그의 몫이다. 주특기는 역발상이다. 실무진의 기획안이 원점에서 재검토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표현도 직설적이다. 에둘러 말하는 법이 없다. 그를 모시는 이들은 그래서 항상 피곤하다. 정말 '까다로운' 오너다.
미래에셋의 폭풍 성장은 오너 박현주 회장 없이 설명이 어렵다. 상상을 뛰어넘는 전략과 도전으로 지금의 미래에셋을 일궈냈다. 박 회장은 1997년 자본금 100억원의 캐피탈에서 시작해 같은 해 자산운용을, 2년 뒤인 1999년 미래에셋증권을 설립했다. 그리고 22년여가 지난 지금, 미래에셋증권 자기자본은 10조원을 웃돈다. 증권업계내 최대 자본력이다. 계열사를 합치면 총 자기자본은 20조원에 이른다. 일본의 노무라, 다이와에 이어 아시아 톱3 반열이다.
■ 전 부문 고른 성장...이익 지속성 유효
증권업의 본격적인 성장에는 정부의 대형IB 육성 전략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2013년 자본시장법 개정안 통과로 자기자본 3조원 이상 증권사의 비즈니스 기반이 확대됐다. 2016년 '한국판 골드만삭스'라는 기치 아래 대형IB 육성방안이 나왔고, 증권사들의 성장 엔진에 불을 붙였다. 다양한 신규 비즈니스가 허용되면서 자금조달이 용이해졌다. 공격적인 영업이 가능해진 것이다. 우물안 증권사들이 우물 밖을 보게 된 시기다.
판은 정부가 깔아줬지만 물꼬는 미래에셋이 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정적으로 미래에셋은 2015년 말 대우증권 인수에 성공, 단번에 업계 4~5위권에서 1위로 올라섰다. 그렇게 안방싸움만 벌이던 자본시장의 판을 뒤흔들었고 대형사들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미래에셋증권의 연결 기준 순이익은 1조1872억원. 전년에 비해 고르면서도, 큰 폭의 성장세를 보여줬지만 한국투자증권의 반격에 순이익은 2위로 주춤했다. 그럼에도 2020년 국내 증권사 첫 영업이익 1조원 돌파에 이어 지난해 1조485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2년 연속 업계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미래에셋증권은 펀드와 수탁수수료 분야에서 전년에 이어 1,2위를 이어갔다. 해외주식 예탁자산은 25조원으로 업계 최대다. 이익의 질 역시 개선됐다. 위탁매매 수수료 비중이 30% 이하로 내려왔다. 운용손익, 이자손익, 금융상품판매, 기업금융 수수료 등 각 부문 고른 수익력이 정착됐다. 향후 시황이 꺾이더라도 이익의 지속성이 가능해 보인다.
다만 경쟁사들 대비 상대적으로 이익력이 떨어진 IB는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특히 부동산PF 중심의 채무보증부문이 약세였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아무래도 부동산에 대해선 리스크관리를 중시하다보니 보수적인 접근을 했고 아웃풋에도 영향을 줬다"는 입장이다.
■ 론 비즈니스에 소극적인 이유
돈 많이 벌면 장땡인 곳이 증권사다. 그럼에도 '앉아서 떼돈을 번다'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대해 미래에셋은 다른 증권사에 비해 적극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대형 증권사, 특히 IB 경쟁력을 갖춘 곳이라면 너도나도 달려드는 분야가 부동산PF다. 전 부문에서 업계내 1,2위를 달리는 미래에셋증권이 유독 채무보증부문 수익력이 떨어지는 건 다소 의아한 일이다. 지난해 미래에셋증권의 해당분야 수익은 경쟁사들의 1/5~1/10 수준에 불과했다.
"박 회장은 돈이 된다고 다 하진 않는다. 자산시장에 대한 본인의 철학이 있다. 론 비즈니스에는 큰 관심 없다.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형태인 부동산PF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외환위기를 거치며 경험했던 은행 부도 사태 등에 대한 기억이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싶다." 과거 박 회장과 미래에셋내 오랜기간 몸담았던 한 임원의 전언이다. 박 회장 투자철학에 맞지 않은 분야는 소극적이라는 얘기다.
사실 미래에셋에는 그 흔한 저축은행 하나 없다. 전 계열사의 덩치를 키우고 금융 영토를 확장해 왔음에도 론(loan) 비즈니스 분야는 상대적으로 미진하다. 이를 두고 "미래에셋은 블랙스완에도 망하지 않는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다"는 역평가도 있긴 하다.
발행어음 시장에 대한 스탠스도 그렇거니와 8조원 이상 자기자본을 갖추면 할 수 있는 IMA(종합금융투자계좌)에 대한 적극성도 떨어진다. IMA는 현재 국내서 미래에셋증권만 가능하다. 물론 금융당국의 최종 승인이 나와야 하는 것이지만 조건은 이미 갖췄다. 사업을 시작하면 연간 수백억원 이익이 보장된다. 그럼에도 시장 상황과 제도적 기반을 이유로 더딘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박 회장의 투자철학과 관련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 몰려드는 인재들...잦아든 오너 리스크
자본력을 키운 미래에셋 입지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금융업은 사람 장사라고들 한다. 우수 인재의 중요성이 어느 산업보다 높다. 타산업과 달리 각각의 전문분야 인재도 제한적이고 대체 인력도 많지 않다. 일개 과장급이 회사 CEO보다 높은 연봉을 받아갈 수 있는 몇 안되는 업권 중 하나가 증권이다.
우수 인력에 대한 영입 경쟁을 두고 미래에셋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거대해진 자본력을 갖춘 미래에셋. 야망있는, 성과를 내고 싶은 인재들이 모이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 타사와의 인재 영입 경쟁에서 종종 웃을 수 있었던 것도 압도적인 자본력 영향이다. 어느덧 미래에셋은 '인재 블랙홀'로 불린다. 증권사 트레이딩부문 한 임원은 "증권사의 자본력이 커질수록 자본을 얼마나 잘 운용하느냐가 중요해졌다. 결국 제한된 업계내 우수 인력을 적시에 영입하고 잘 유지하느냐가 향후 대형사간 순위 변동의 키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지금이야 인재 블랙홀로 불리지만 폭풍 성장의 이면에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돈 많이 벌어주면 '예쁜 내 자식', 반대의 경우엔 가차없이 내보내다 보니 떠나간 이들, 미래에셋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에는 시기와 질투가 끊이질 않았다. 그룹내 박 회장의 영향력 또한 절대적이다보니 그의 판단과 전략에 어깃장을 놓을 엄두도 못낸다. 그렇게 많은 창업공신과 실력자들이 떠난 것도 사실이다. 금융당국 출신 한 관계자는 "미래에셋은 오너 지배력이 너무 강하다. 성장기엔 몰라도 지금은 권한 위임을 통해 시스템으로 돌아가게 해야 하는 시기가 됐다. 규모에 맞는 세련된 경영방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안팎에서 지적돼 온 오너 리스크 우려에 대해 박 회장 역시 변화의 움직임을 보였다. 지난 2018년 박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미래에셋증권 홍콩 회장 겸 글로벌경영전략고문(GISO) 직함으로 해외시장에 매진한다. 굵직한 의사결정 외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는 게 안팎의 전언이다. 최근 세대교체와 전문 경영인 체제 선포와 함께 박 회장의 창업 동지 최현만 부회장이 미래에셋증권 회장에 선임된 것도 같은 맥락이란 해석이 나온다. 박 회장이 추후 미래에셋 경영 역시 자녀보단 전문경영인에 맡길 것이란 관측도 공공연한 현실이 되고 있다.
그 변곡점에 자신의 오랜 오른팔이자 또 하나의 샐러리맨 신화 최현만이 연초에 미래에셋증권 회장에 앉았다. 박 회장 외에 미래에셋내 첫 회장 직함이다. 이는 향후 미래에셋 성장과 거버넌스의 향방을 가늠케 하는 또 하나의 기준일듯 싶다.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