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훈 삼성증권 사장이 차별화된 경영전략으로 3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사진=삼성증권)
1. 폭풍성장 진격의 '미래에셋'
2. 독 품은 반전의 '한투'
3. 변화한 아픈 손가락 '삼성'
4. 울타리 넘은 저력의 'NH'
5. 실리 또 실리의 '키움'
삼성의 성장전략은 빅4 경쟁사들과 사뭇 다르다. 오너가 있긴 하나 금융이 아닌 제조업 중심의 삼성그룹 계열사다보니 거버넌스와 조직문화에 차이가 있다. 비즈니스 역시 미래에셋, 한투, NH가 IB 중심의 이익 극대화 전략인데 반해 삼성은 고액자산가 중심의 리테일 전략을 펼쳐왔다. 모든 비즈니스가 '관리의' 삼성답게 안정 지향적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형사들의 삼성에 대한 관심은 상당했다. 어떤 전략을 구사하는지, 어떤 상품을 준비 중인지, 어떤 인재를 영입하는지 안테나를 바짝 세웠다. IB면 IB, WM이면 WM, 삼성의 전략은 타사들의 벤치마킹 대상이었다. 지금이야 미래에셋과 한투의 양강구도, 그 뒤를 바짝 추격하는 NH가 주도권 경쟁을 하지만 당시만 해도 대우와 어깨를 견주던 곳이 삼성이었다.
삼성은 증권분야에선 후발주자에 속한다. 1992년 국제증권을 인수해 중소형사로 본격 출발했다. 당시 삼성생명, 삼성화재가 업계 독보적 1위다보니 증권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그러다 1997년 외환위기, 2000년 카드사태 등을 거치면서 덩치와 위상을 조금씩 끌어올렸다. 이후 동양사태 등 한국 경제와 금융이 위기를 겪을때마다 부자들은 삼성으로 몰렸다. 브랜드, 인프라 모든 면에서 안정감을 주기에 삼성이란 브랜드는 충분했다. 여기에 캡티브마켓(계열사간 내부시장) 효과는 삼성의 강력한 성장 기반이 됐다.
그럼에도 삼성내 지배구조와 마켓쉐어 측면에서 증권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압도적 1위인 큰 형(생명)과 작은 형(화재)에 한참 뒤쳐져 있는데다 연간 2000억~3000억원의 순이익 규모는 그룹내 영향력을 발휘하기에 여전히 부족했다. 연간 수십조원을 버는 전자를 중심으로 한 삼성그룹 계열사 사장단 회의때 말석은 삼성증권 사장 자리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삼성증권의 '아픈 손가락' 얘기도 그래서 나왔다. 그랬던 삼성이 최근 변화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 단숨에 탈환한 영업이익 2위
지난해 삼성증권의 영업이익은 1조3087억원이다. 미래에셋에 이어 2위다. 전년(2020년)과 달리 NH와 키움, 메리츠를 밀어내고 단숨에 치고 올라왔다. 고객예탁자산이 크게 늘면서 리테일 강자의 위용도 다시금 드러냈다.
무엇보다 해외주식부문에서 성과가 두드러졌는데 서학개미가 급격히 불어난 영향이 컸다. 삼성의 해외주식수수료는 1503억원, 금융상품 판매수익은 4117억원으로 각각 20% 남짓 증가했다. 외화증권수탁 수익의 경우 전체 증권사 중 최대다. 작년 말 기준 고객자산도 317조원으로 역대 최대다.
빅4 가운데 상대적으로 약세였던 IB부문의 반전도 관심이다. 구조화금융과 ECM 실적이 대폭 늘면서 IB관련 수수료수익도 전년대비 58% 급증했다. IB부문 전체 수수료 수익은 여전히 증권사 중 6~7위 수준이지만 최근 상승 반전되는 추세임은 분명하다.
■ 잠재적 매각설, 지배구조 변화 가능성
금융그룹 중에선 여전히 덩치를 키우려는 곳들이 여럿 있다. 은행 중심이던 증권 중심이던 매한가지. 이 가운데 증권이 절실한 금융회사들이 공통적으로 향하는 타깃이 있다. 삼성이다. 지금껏 단 한번도 매각 가능성을 공식 언급한 적이 없음에도 시장에선 잊을만 하면 삼성 매각설을 꺼내든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와 상속 이슈가 수면 위로 부상할 때마다 외톨이 삼성증권에 대한 매각설이 흘러다닌다. 2018년 삼성증권의 유령주식 사태 역시 증권의 매각설을 부추겼던 이유 중 하나다. 계열사 중 유일하게 선두권에서 뒤쳐지고, 그룹내 비중이 적은, 더욱이 이따금 사고까지 치는 증권에 대한 아쉬움과 답답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
중소형사들로는 유안타 등 매물로 거론되는 곳이 일부 있지만 대형사 중에선 삼성 말고는 현실적으로 없다. 금융 격변기인 요즘 마음이 급한 금융그룹들로선 중소형사 인수에 한숨 짓는다. 인프라, 브랜드, 맨파워 모든 면에서 삼성이 최적의 선택지일 수 있다. 종종 '설'로만 나돌다 그침에도 삼성 매각설이 종종 도마에 오르는 이유다.
"딱히 전략과 의지가 없다.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증권사 빅4, 빅5 경쟁에서 삼성은 논외로 둬야 한다."
"불확실한 거버넌스가 과제다. 이것만 해결되면 잠재력은 상당하다."
수위권을 점하면서도 브랜드 파워와 잠재력 대비 더 치고나가지 못하는 삼성증권을 두고 나오는 금융권 안팎의 반응들이다. 물론 삼성의 증권 매각 가능성은 낮다. 삼성의 은행업에 대한 오랜 열망은 논외로 하더라도 자금이 급박하게 필요한 상황도, 적자가 날 정도로 증권이 어려운 시기도 아니다. 과거 호시탐탐 노렸던 은행과 그나마 유사한 금융업이 증권업이다. 주요 그룹사들이 원 없이 돈을 버는 상황에서 굳이 증권을 팔 이유가 사실 없다.
물론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그룹 경영 승계 과정에서 금융 계열사 일부 혹은 상당수가 이부진, 혹은 이서현 등으로 옮겨갈 여지는 있다. 경영승계 일정이 본격화되고 삼성생명과 화재, 카드, 증권, 운용 등 주요 금융 계열사 지분에 대한 교통정리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삼성증권의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 자산운용사 한 CEO는 "삼성의 금융 계열사들, 특히 증권과 카드의 경우 누구가 갖느냐에 따라 업의 미래가 확 바뀔 수 있다"며 "캡티브가 큰 삼성임을 감안하면 3남매 누구든 오너가 명확해진다면 아마도 레벨이 다른 성장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달라진 삼성금융 CEO 인사
최근 10여년 증권사의 장수 CEO 트렌드와는 무관하게 삼성증권 CEO의 임기는 유독 짧았다. 유석렬, 황영기, 배호원, 박준현, 김석, 윤용암, 구성훈 전 사장까지 최근 20년래 4년 넘게 자리를 지킨 이는 없다. 짧게는 넉달이고, 평균 임기는 2~3년이다.
최근 증권업계는 CEO 연임이 대세다. 한투, 메리츠, 키움, 교보, 신영 등 10년 안팎의 장수 CEO들이 줄줄이 나온다. 또 이런 증권사들이 탄탄한 실적을 바탕으로 꾸준하게 중장기 성장세를 이어간다.
이런 가운데 삼성의 금융 계열사 인사, 조직문화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배당사고 이후 구원 등판한 장석훈 사장이 위기관리 대응을 제대로 한 것도 있겠지만 각 부문 균형감을 잘 살리면서 탁월한 실적을 일궈내고 있다. 삼성 내부에서도 긍정의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재용 부회장이 실질적인 경영권을 갖으면서 나타나는 변화이기도 하다.
장석훈 사장은 2018년 7월 대표이사 직무대행으로 시작해 지난해 3년 연임이 확정됐다. 오늘(18일) 주총 역시 재신임이 예고됐다. 임기는 2024년 3월까지. 예정된 임기를 유지한다면 6년 가깝게 CEO를 맡는다. 삼성증권 역대 최장수 CEO다. 최근 순혈주의 관행을 깬 삼성자산운용 역시 이 같은 변화의 조짐이 엿보이는 사례 중 하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연합뉴스)